98년 이후 7년간 끌어온 주5일제 협상이 노동자들에게 불리한 방향으로 마무리될 전망이어서 노동계의 극심한 반발이 예상된다. 지난 12일부터 14일까지 국회에서 열렸던 주5일제 도입 노사정 협의회가 휴가일수·도입시기 등의 문제에 대한 이견으로 결렬되고 재계가 그 동안의 태도와는 달리 정부안을 지지하고 나서자, 여야 3당 총무들이 18∼19일 국회 환경노동위와 20일 국회 본회의에서 정부안을 강행 처리하기로 한 것.
정부안의 골자는 △사용자의 연월차 사용 촉구에도 불구하고 휴가 미사용시 사용자의 보상의무 면제 △생리휴가 무급화 △15일∼25일 한도로 연월차 유급휴가 통합 △연장·야간·휴일근로 시 임금대신 휴가를 부여할 수 있는 선택적 보상 휴가제 도입 △기존 단협 및 취업규칙 갱신노력 의무 명시 등 주당 노동시간을 4시간 줄이는 대신 노동조건을 대폭 개악하는 내용으로 채워졌다.
정부안, 노동조건 대폭 개악
이에 대해 민주노총 김태연 정책실장은 "한국은 연간 노동시간이 2500시간에 이르러 OECD 최장이라는 오명을 안고 있다"며 "주5일제 도입은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면서도 경제성장에 헌신해 온 노동자들의 삶의 질을 개선하자는 것이므로 휴일과 임금을 줄이면 그 취지가 훼손된다"고 말했다.
또 정부안이 "법 시행으로 인해 기존 임금 수준과 통상임금이 저하되지 않도록 한다"는 선언을 부칙에 추가하도록 한 데 대해 김 정책실장은 "기존 근로시간 단축분은 기본급으로 보전하고 단축되는 연월차 휴가일수에 대한 수당을 퇴직까지 매년 총액 임금 기준으로 보전하도록 명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조직 노동자들 더 큰 악화 우려
김 정책실장은 또 "새롭게 도입되는 선택적 보상휴가제 역시 노사간 합의를 필요로 한다는 내용을 삽입한다고는 하지만, 교섭력이 없는 미조직 중소영세 사업장 노동자들에게는 강제적 변형근로제 역할을 해 노동조건 악화를 불러올 것"이라고 우려했다.
여성노동자 임금 하락폭 더 심해
한편 공휴일 축소와 연월차 휴가 축소로 인해 실제 늘어나는 휴일은 남성의 경우 12일이지만, 여성의 경우는 생리휴가 무급화까지 감안하면 시행 전과 똑같다는 것이 민주노총의 계산이다. 이에 대해 불안정노동철폐연대 구미영 정책부장은 "주5일제 도입이 아니라 근로기준법 개악"이라고 혹평했다. 상대적으로 임금 수준이 낮은 여성의 임금을 보전해온 생리휴가가 무급화된 데다가 초과 근로 할증율마저 25%로 하락해 여성 노동자의 임금 하락이 예상된다는 것.
또 구 정책부장은 "도입 시기가 사업장 규모에 따라 6단계로 나눠지면서 20인 미만 사업장은 2010년에야 주5일제가 도입되는데, 실제로 지켜질지는 아무도 모른다"고 전망했다. 현행 근로기준법의 경우도 89년 적용 범위가 5인 이상 사업장으로 제한되었는데, 4인 이하 사업장의 경우에는 끊임없는 전면 적용 요구에도 불구하고 지금껏 사소한 몇 개 조항만을 적용받고 있을 뿐이다. 이에 따라 4인 이하 사업장 노동자들은 아직도 해고제한, 퇴직금, 시간외·야간수당, 연월차, 생리휴가 관련 규정을 적용받지 못하고 있다.
이미 도입된 사업장 조건마저 후퇴할 수도
또 정부안은 근로기준법 부칙에 '기존 단협과 취업규칙을 개정될 법 수준으로 갱신하도록 노력할 의무'를 명시하도록 하고 있다. 이에 대해 민주노총 법률원 강문대 변호사는 "이렇게 되면 단협을 통해 주5일제를 쟁취한 사무금융노련, 현대자동차, 금속노조 등의 단협 효력이 무력화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근로기준법 제2조는 '이 법에서 정한 근로기준은 최저기준이므로…이 기준을 이유로 근로조건을 저하시킬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정부안은 그 취지를 정면으로 거스르고 있다"고 비판했다. 김 정책실장도 "역사적으로 노동시간은 투쟁을 통해 단축되어 왔는데, 이 조항은 이런 시도 자체를 봉쇄하려는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에 따라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은 18일 공동기자회견을 통해 △정부안의 졸속 처리 반대와 전면 수정 △당사자간 지속적인 재논의 통한 합의 후 처리 입장을 밝혔다. 또 양대 노총은 이날부터 국회 앞 노숙농성에 돌입, 오는 20일까지 1만 명 규모의 농성투쟁을 이어나갈 계획이다. 또 19일 오전에는 한국노총이, 오후에는 민주노총이 시한부 총파업을 벌여 정부안의 국회 통과를 저지하고, 정부안이 강행 처리되더라도 이와 관계없이 사업장 단위 임단협을 통해 '임금·노동조건 후퇴 없는 주5일 노동제'를 관철시킬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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