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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특별기고> 단죄 받아야 할 자 누구인가?

미국정부가 단순히 이라크인 포로에 대한 학대를 방임한 게 아니라 조직적으로 고문과 학대를 지시했음이 드러나고 있다. 이미 쿠바 관타나모에서 미 국방부와 법무부가 사전협의 아래 알카에다 포로들에 대해 20여가지 고문방식을 직접 시달하며 고문을 주도했으며, 이같은 방침이 이라크 수용소에도 그대로 전달되었다는 게 언론을 통해 밝혀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같은 고문과 학대가 이번에 문제가 된 아브 그라이브 수용소에서만 벌어진 일이 아니라 이라크 전역의 수용소에서 광범위하게 자행되었다는 사실 또한 분명해지고 있다.


학대와 고문…점령의 수단으로

그러나 이토록 분명한 사실과 증거가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미국정부는 이번 사건이 미국의 정책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고 강변하면서, 몇몇 관련 병사를 처벌하는 선에서 얼버무리려 하고 있다. 심지어 "이라크 인들이 민주주의 사회라고 해도 모든 것이 완벽한 것은 아니고 실수도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며 "민주주의"에 대해 훈수까지 하고 나섰다.

이들의 논리대로라면, 이번 사건에 분개하고 전쟁의 참혹함에 슬퍼하는 모든 이라크 인들이 아무래도 뭔가 모르는 작자들이라는 식이다. 점령을 위한 적극적인 수단으로 학대와 고문을 지시한 당사자들이 몇몇 관련 병사들과 이라크인 들에게 책임을 떠넘기면서 자신의 죄만을 묻지 말라는 식이다.

'미국식 가치'를 내세우면서 인권과 민주주의를 자신의 입맛대로 가공했던 장면이 비단 오늘만의 일은 아닐 것이다. 평범한 사람들에 대해 저지른 범죄조차 '인도주의'로 포장하고, 그래서 '범죄에서 미국정부는 자유롭다'라는 스스로의 확신을 부단히도 공인 받기 위해 노력한 게 미국 정부였다.


미국의 범죄, 반인도적 범죄로 단죄해야

아마 몇 해 전 국제형사재판소의 기능을 무력화하고자 했던 미국의 여러 시도들을 기억할 수 있을 것이다. 모두가 알듯이 국제형사재판소는 전쟁범죄와 반인도적 범죄 등을 저지른 개인을 법정에 기소하여 심판 할 수 있는 세계 최초의 상설국제재판소이다. 국제형사재판소 설립을 많은 이들이 반겼던 이유도 이처럼 전범을 단죄할 수 있는 최소한의 국제적 기준이 만들어졌다는 점에 있었다.

그러나 미국은 정반대의 길을 걸었다. 미국정부는 "미국인에 대한 국제형사재판소의 기소를 면책하는 특권"을 주장하기도 했고, "미국인을 국제형사재판소에 인도하지 못하게 하는 불처벌협정"을 각국 정부에 요구하기도 했다. 국제형사재판소에 대한 로마규정에 서명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 의회의 비준을 내내 미뤄오다가 급기야 서명자체를 철회하면서 국제형사재판소에 대한 불참을 선언하기도 했었다. 이로써 로마규정이 명시하고 있는 집단살해죄, 전쟁범죄, 반인도적 범죄 등의 여러 항목에, 미국이 전쟁을 일으키고 1년여간 이라크를 점령하면서 저지른 여러 범죄들이 해당됨에도 책임자 및 관련 미군을 기소하기 힘든 상황이다. 단죄 받을 범죄는 분명히 존재하고 그 피해자는 수만을 헤아리는 데, 정작 단죄 받아야할 당사자가 없는 기이한 현실.....


고문과 학대로 상처받은 이라크인의 고통은 어디에?

이런 생각 때문일까? 나는 이번 일을 두고 미국 대선 구도를 살피면서 럼스펠드의 경질가능성을 점치는 기사들을 볼 때마다, 혹은 "또 어떤 사진이 있을까?"라는 식으로 자꾸 궁금증을 유발하는 기사를 볼 때마다, 마음이 화끈거리곤 한다. 왜냐하면 사람의 생명과 존엄함이 걸린 일을 한낱 정치공학으로 치환시켜버리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설정에서는 고문과 학대로 상처받은 사람들과 이를 멍든 가슴으로 지켜봐야 하는 이라크인의 설 자리가 없어진다. 단적인 예로, 그 많은 신문과 방송들이 '수개월 전' 일어났던 고문사실을 경쟁적으로 보도하고 있지만, "그렇다면, 문제가 된 그 수용소에서 포로들은 지금 어떤 상황에 놓여있는지", 혹은 "이번 일로 인해 이라크 사람들이 얼마만큼 상처받았는지" 진지하게 물어오는 기사는 아무리 눈을 씻고 봐도 찾을 수 없다.

지난해 이라크에서 한국을 찾았던 수하드와의 만남이 떠오른다. 그때, 수하드는 비록 어려운 상황일지라도 한 줌 희망에 기대어 굳게 일어서고자 하는 이라크 사람들의 이야기를 해주고 싶어했다. 그 때 본 비디오에서 일군의 젊은이들이 전쟁의 와중에도 희망을 잃지 않는 이라크인들의 이야기를 연극으로 만들던 장면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나는 이들의 희망과 몸부림이 여전히 꺽이지 않고 무럭무럭 자라고 있기를 진심으로 기도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미국이 저지른 전쟁범죄를 단죄하는 일에 우리가 가진 지혜와 노력을 아끼지 않는 일이 최선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