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일 씨의 죽음으로 온 나라가 슬픔과 충격에 휩싸였다. 무고한 한 생명이 처참하게 살해당했다는 사실은 입으로 옮기기조차 고통스럽다. 언론에 비치는 고인의 사진을 보며 또 고인의 부모를 보며 그 누가 가슴이 저미지 않겠는가. '한국군이 철수해야 한다'고 그렇게 절규했던 김선일 씨를 외면하고 "변함없는 파병 원칙"만을 외친 노무현 대통령과 정부가 김선일 씨를 죽인 것이다.
이라크의 평화와 재건을 위한다는 정부의 위선은 이미 벗겨진 지 오래다. 아무도 정부가 이라크 파병을 결정하면서 내건 거짓말을 귀담아 듣지 않는다. 또 이를 앵무새처럼 따라하는 보수언론의 격려는 '위선의 절정', '가증스런 본색'일 뿐이다. 노무현 정권과 보수언론이 서로 '일치단결'해 우리의 "슬픔과 분노"를 이라크 저항세력에 대한 "보복과 응징"으로 선동하는 이유, 그것은 "파병"을 위한 치졸한 술책에 불과하다. 애초부터 김선일 씨 죽음에 대한 '슬픔과 분노'는 정부를 향한 '우리들의 분노'이지, 김선일 씨가 어찌되든 파병은 해야된다고 주장했던 정부와 보수언론, '너희들의 분노'가 아니다. 슬픔도 분노도 없는 집단들이 '보복과 응징'을 말하고 있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다.
게다가 그들이 말하는 "보복과 응징"이 얼마나 엄청난 피의 보복을 반복하는 것인지 정녕 모른단 말인가. 이라크를 보라. 미국에 의한 이라크 침략전쟁이 시작되고 '무고한' 사람들이 1만명 이상 죽었다. 김선일 씨 피살에 대한 미국의 보복공격으로 또 다시 이라크인들이 죽어갔고, 끝나지 않은 침략으로 이라크 전역에서 오늘도 계속 죽어가고 있다. 9.11 이후 '보복'에 쌍심지를 켠 미국과 함께, 침략군의 일원이 되어 이라크로 파병하겠다는 한국에 대해 어떤 이라크인이 '선의'를 가질 수 있단 말인가. 고립되어 가는 미국에게 끝까지 동맹군으로 남겠다는 한국에게 이라크인들이 대체 뭘 고마워해야 하는가. 바로 파병이 보복과 응징을 불러오고 있는 것이다. 의료병이든 공병대든 다 마찬가지다. 게다가 전투병을 보낸다면서 '평화, 재건'이라고 포장하고 있는 한국이 이라크인들에게 어떻게 보일지는 두말할 필요가 없다.
정부는 외국군 주둔이 이라크에 혼란을 조장하고 있다는 아랍연맹의 말을 귀담아 들어야 할 것이다. 전쟁의 종결선언이 '진짜 전쟁의 시작'이라는 아랍인들의 경고를 증명하는 지난 1년 동안 이라크 상황을 상기한다면 당장 미국의 침략 전쟁에서 손을 떼야 한다. 추가파병을 철회하는 것은 물론 서희·제마 부대 역시 철수시켜야 한다. 정부가 진정 이라크의 평화와 재건을 위한다면 모든 점령군의 철군을 주장해야 한다. 정부는 정신 차리고 현실을 직시하라.
- 2602호
- 2004-06-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