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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정치적 공세'라는 오명 벗지 못한 결의안

유엔인권위, 대북인권결의안 채택

[편집자주] 대북인권결의안 한글번역판은 인권운동사랑방 홈페이지 자료실에서 내려받을 수 있다.
(http://sarangbang.jinbo.net/bbs/view.php?board=data&id=232&page=1)

제61차 유엔인권위원회가 대북인권결의안을 현지 시각 14일 오후 채택했다. 결의안 표결에는 모두 53개국의 위원들이 참여해 찬성 30표, 반대 9표, 기권 14표를 던졌다.

3년째 계속되고 있는 대북결의안은 전반적으로 작년과 별 차이가 없지만, 북 정부가 특별보고관의 임무를 불인정하고 활동에 비협조적인 점과 북 인권 상황에 대한 강도 높은 비판이 추가됐다. 추가된 내용은 △굶주림으로부터 자유로울 권리 △국제적 인권기준, 민주적 다원주의와 법치 존중 △아동의 영양 결핍으로 인한 육체적 정신적 성장 우려 △납치자의 즉각 귀환 등이다.

북 정부는 이미 대표부의 발언을 통해 결의안을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뜻을 강하게 표시해 왔다. 북 정부 뿐 아니라 한국인권단체들도 유엔인권위 참여자들에게 보내는 의견서를 통해 결의안에 대한 우려를 전달했다. 이들은 북의 인권 증진이 필요하다는 것에 대해서는 동감하지만 이 같은 결의안은 인권을 빌미로 한 정치적 공세일 뿐이라고 비판했다. "북 인민의 인권을 생각한다는 정치적 행위자들의 개입과 준동을 막아내려는 노력도 없이 북을 거칠게 추궁한다면, 북 당국뿐 아니라 인민들의 반발만을 불러 일으킬 것"이라고 결의안의 부당성을 지적했다. 북 정부가 "인권의 보호와 증진을 위해 대화와 협력보다 좋은 것은 없지만 고립과 대결, 더 나아가 정권 교체를 추구하는 유럽연합과 협력하려는 국가는 없다"고 결의안을 주도한 유럽연합에 비난하고 나섰기 때문에 이러한 우려는 사실로 드러나고 있다.

이번 결의안 역시 지난해처럼 '정치적으로 오염되어 있고 편향적'이라는 지적도 여전하다. '굶주림으로부터 자유로울 권리'를 말하고 있지만 북을 가난과 기아에 허덕이게 만드는 주요 원인 중 하나인 대북 경제 제재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고 있다. 생명권을 위협하는 미국과의 군사대결 역시 모르쇠하기는 마찬가지이다. 또한 '영아살해', '강제 수용 노동'과 같은 자극적인 표현으로 자유권의 심각한 후퇴를 이야기 하고 있지만 이 또한 치밀한 사실확인에 근거했다고 볼 수 없다.

'민주적 다원주의', '법치의 부재'라는 표현도 면밀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 구체적 맥락은 적시되어 있지 않지만 '민주적 다원주의'라는 주장이 '자유 민주주의'를 지칭하는 것이라면 북에게는 체제 위협이 될 수 있으며, 동시에 인권적 권고로 적절하지 않다. 자유 민주주의 체제이든 사회주의 체제이든 인권을 완벽하게 보장하는 체제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체제를 바꾼다고 인권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인민의 자주성을 무시하는 외부의 개입은 그 사회 인민에게 재앙임을 역사는 보여주고 있다. '법치의 부재' 역시 북 정부가 최근 죄형법정주의를 골간으로 형법을 개정하는 등 국제 기준을 준수하려는 노력을 전혀 긍정적으로 평가하지 않은 부분이다.

또한 일본인 납치피해자 문제를 더 부각시키고 있는 것도 이 결의안이 정치적 공세라는 오명을 벗기 힘들게 만든다. 2002년 북일 정상회담 이후 납치피해자 문제가 어느 정도 진전되어 있는 것을 고려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평화네트워크는 지난 14일 성명을 통해 "어렵게 성사되었던 납치문제 실무회담의 전면중단을 초래한 요코타메구미씨 '가짜유골' 파문의 경우도 일본 측의 감정 결과에 대해 국내외 언론과 전문가들로부터 의문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라고 지적하고 "이러한 사실들을 공정하게 반영하지 않는 결의안은 그 의미가 퇴색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결의안은 북 정부가 특별보고관에게 협조하지 않아 인권상황에 진전이 없을 경우 유엔 총회가 이 사안을 다룰 것을 촉구하고 있다. 앞으로 유엔인권위 차원에서 머물지 않으리라는 것이다. 일부 NGO들이 안보리 회부와 무력사용을 들먹이는 등 평화를 위협하는 움직임은 유엔인권위에서 심심치 않게 일어났다. 대화와 협력이 위축되고 대결과 으름장 놓기만 반복하고 있는 유엔이 과연 북인민들의 실질적 인권 증진을 이룰 수 있을지, 이번 결의안이 가져다 줄 파장은 어둡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