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간의 교전을 거듭하던 4차 6자회담이 지난 19일 6개국의 공동성명으로 타결되었다.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를 확인하는 이번 회담은 한반도 평화의 디딤돌이 되었다는 의미에서 낭보였음에 분명하다. 북은 “모든 현존하는 핵계획을 포기할 것과, 조속한 시일 내에 핵무기비확산조약(NPT)과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안전조치에 복귀할 것을 공약”했고 미국은 “한반도에 핵무기를 갖고 있지 않으며, 핵무기 또는 재래식 무기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공격 또는 침공할 의사가 없다는 것을 확인”했다. 남한 정부 역시 핵무기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확인하면서, “1992년도 '한반도 비핵화에 관한 남 ․ 북 공동선언'에 따라, 핵무기를 접수 또는 배비하지 않겠다는 공약을 재확인”했다. 이로써 한반도를 무대로 치열하게 오고 갔던 북미간 외교 ‘핵전쟁’은 ‘비핵화’의 단계로 들어선 셈이다. 또한 북미는 상호 주권을 존중하고 평화적으로 공존하겠다는 것을 약속했다. 한반도에 전쟁의 먹구름을 걷어내고 평화를 정착시키는, 즉 ‘평화협정’의 길목으로 들어선 셈이다.
그러나 이번 회담 결과로 한반도의 평화를 낙관하는 이들은 아무도 없다. 성명에서도 적시하고 있듯이 행동 대 행동이 시작되어야 한다. 북정부가 약속 이행의 책임이 있다면, 미국과 남한 정부 역시 남한 핵무기 관련 의혹을 일소해야 한다. 이미 미국은 1957년 핵무기의 존재를 공식적으로 밝혔고, 이후 남한의 핵무기 배치에 대한 의혹은 끊이지 않고 계속되고 있는데 “없다”는 한마디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또한 이번 성명이 평화협정의 디딤돌이 되기 위해서는 전쟁 위협적인 한미합동군사훈련, 군사시설의 확대 및 전략적 재배치, 무기 증강 등은 즉각 중단되어야 한다. 더불어 공동성명이 지닌 평화의 의미는 한반도에 국한되지 않는다. 중국의 군사력 증강과 함께 일본의 우익들은 평화헌법을 개정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등 동북아의 평화를 위협하는 상황들은 시시각각 전개되고 있다. 당사국 모두가 이번 회담의 정신을 실천하려는 공동의 노력이 필요하다.
이번 회담에서 북은 그토록 원하던 ‘핵에너지의 평화적 이용에 관한 권리’를 존중받았으며 ‘경수로 제공 문제’까지 의제화시켰다. 이와 더불어 6자회담에 참가한 당사국들은 “에너지, 교역 및 투자 분야에서의 경제협력”을 증진시킬 것을 약속하며 북에 에너지를 지원할 용의가 있음을 표명하기도 했다. 북의 에너지난은 생존권을 위협하는 요인이다. 중화학 공업 중심으로 편성되어 있는 북의 경제구조뿐 아니라 생존의 동맥과도 같은 철도 역시 전기를 동력으로 하고 있다. 8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에너지 부족 현상은 지속적인 하향 곡선을 그리고 있다. 정부 통계에 따르면 2002년 현재 1인당 에너지 소비량이 남한에 비해 14배 차이가 난다. 북정부는 이른바 ‘고난의 행군 시기’에 중소 발전소 건설, 물길공사 등 에너지 자립을 위해 노력해왔다. 하지만 북의 에너지 문제는 노후한 기계를 교체하고, 원유 부족을 해결하지 않는다면 정상화되기 힘들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우리는 먼저 미국에 북에 대한 경제제재의 빗장을 하루 빨리 걷어낼 것을 촉구한다. 미국은 지난 50년간 전략물자 반출 제한 등의 조치로 북 인민의 생존권을 옥죄어왔다. 공동성명의 이행은 남한 등 6자회담 당사국들이 신속히 북에 에너지를 지원하는 것과 함께 미국이 쌓아온 경제 봉쇄의 벽을 허무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핵에너지에 대한 평화적 이용 권리’가 공공연화되는 것에 대한 우려를 빠뜨릴 수 없다. 우리는 에너지에 대한 자주적 권리에 대해서 결코 반대하지 않는다. 에너지 권리가 인간의 생존권과 연관되어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북 정부가 에너지난을 타결하기 위한 한 방편으로 풍부한 전력량을 보장해주는 핵에너지를 대안으로 삼는 것은 지구상의 많은 나라들과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이미 ‘핵’에너지가 가지고 있는 군사적, 환경적 위협은 ‘대안적’ 에너지가 될 수 없음을 증명하고 있다. 언제 어디서든 환한 전기불의 혜택을 누릴 수 있는 우리가 칠흑 같은 밤을 보내야 하는 북 인민들에게 인류의 환경을 생각하라고 독려하는 것은 사치를 넘어 폭력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에너지의 자주적 권리 주장에 지지를 보낸다. 하지만 ‘핵’에너지는 에너지 자주권을 실현하기 위한 유일한 방편은 아니다. 더욱이 이미 인류와 공존하기 힘든, 실패한 에너지인 핵이 대안이 될 수는 없다. ‘핵’에너지를 극복하는 일은 이미 이를 사용하고 있는 지구상의 수많은 나라들과 함께 북정부도 책임져야 할 ‘인류 공동의 미래’이다.
남한 정부는 6자회담 직후부터 경수로 지원에 국제금융기구 자본을 이용할 수 있다, 북을 이번 아펙 정상회담에 참가시키겠다는 등 위험스러운 발언을 서슴지 않고 있다. 북이 경수로를 얻기 위해 국제금융자본에 편제된다면 이는 결국 북 인민들의 생존권을 후퇴시키는 결과를 얻게 될 것이다. 6자회담은 당사국 정치행위자들의 외교무대만이 아니며 그 성과 역시 그들이 독식해서는 안된다. 그 성과는 북의 인민을 비롯해 동북아 모든 민중들의 삶의 현장에서 ‘살아 숨쉬는 평화’로 실현되어야 한다.
- 2900호
- 평화,논평
- 인권운동사랑방
- 2005-09-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