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는 세탁소에 맡기지 못해 초여름까지 걸려있던 겨울 옷가지에서 푸른곰팡이가 자라더니, 올 봄에는 혹한에도 잘 자라던 작은 나무 3그루가 제 화분에서 죽었습니다. 인권영화제를 바삐 준비할 시기에는 제가 제 집에서 다른 생명체를 살렸다 죽였다 합니다. 어항에서 살던 '베타'물고기가 죽었던 적도 있어요. 죽은 나무 중에 가장 키가 컸던 치자나무는 제가 특별히 아끼던 나무였습니다. 지난 가을에는 가위 끝에 애정을 담아 독하게 '가지치기'도 해주었어요. 그 꽃향기를 싫어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저는 백색의 치자 꽃향기를 많이 좋아합니다. 단 한 송이라도 그 꽃잎은 튼튼하게 오래가며 향기가 짙어 당당해 보이니 볼수록 힘이 납니다. 치자 꽃이 펴 있으면 술도 덜 먹고 집에 일찍 들어가기도 했었어요. 그런데, 세상에, 물을 안 줘서 제가 치자나무를 죽이다니요. 저는 매일 아침저녁이면 치자나무 옆에 놓인 거울 앞에서 옷을 갈아입었어요. 그런데 치자나무가 바짝 말라 죽어가는 것도 못 봤고, 결국 살릴 때도 놓쳤습니다. 한 달이 지난 지금 그 화분을 현관 밖 작은 옥상에 내놓고 아침저녁으로 바라봅니다. 제가 죽인 치자 꽃이 마치 한눈팔다 놓칠지 모를 제 꿈일 수도 있겠다 싶었어요. 무서워 온 몸에 소름이 돋았습니다. 치자나무는 죽어서도 제게 힘을 주어요. 그래서 그 화분을 치우지 못하고 모셔두고 있습니다. 저는 요즘 곧 개막할 15회 인권영화제 준비로 고민도 많지만, 죽은 치자나무를 어떻게 할지 계속 생각합니다. 제 꿈은 어떻게 되어 가고 있는지 살피고 있습니다. |
활동가의 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