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트 티모르는 인도네시아 군도 동쪽 끝에 있는 섬으로서 크기는 제주도의 약 3배, 인구는 60-70만 명이다. 티모르 섬은 오랫동안 네덜란드와 포르투갈의 식민지였다. 섬의 서쪽 웨스트 티모르는 1653년부터 네덜란드의 식민지였다가 1949년에 인도네시아가 네덜란드에서 독립하면서 인도네시아 령이 되었다.
이스트 티모르는 역시 17세기 중반부터 400년 이상 포르투갈의 식민지였다가 1974년 포르투갈의 민주 혁명으로 독립을 추진하였다. 그러나 인도네시아는 1975년부터 이스트 티모르에 군사 진공을 시작 1976년에 완전 ‘병합’을 선언했다.
약소국인 이스트 티모르는 인도네시아 군으로부터 온갖 만행을 당하면서도 국제적인 관심을 끌지 못하다가 사실상 이스트 티모르 민중을 대표하는 FRETILIN이 주도한 게릴라전을 포함하는 17년간의 민족해방 운동과 효과적인 외교활동의 결과, 국제사회에서 점차 주목을 받으면서 중요한 국제적 이슈로 떠올랐다.
특히, 1991년 평화적 독립 시위에 인도네시아 군이 계획적으로 발포하여 200명 이상의 민간인을 학살한 산타크루즈 사건은 영국 요크셔 방송국의 목숨을 건 취재로 전 세계에 알려져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다.
지금까지 인도네시아의 군사행동으로 말미암아 인구의 3분의 1일에 해당하는 약 20만 명이 사망하는 고난을 겪었으나(Amnesty International 보고) 안타깝게도 이스트 티모르 문제는 한국에서 전혀 알려지지 않고 있으며 언론도 거의 다루지 않는다.
마리 빈 아무드 알카티리(Mari Bin Amude Alkatiri)씨
마리 빈 아무드 알카티리 씨는 1949년 이스트 티모르 디리(Dili)에서 출생하여 현재 모잠비크를 본거지로 이스트티모르 독립을 위하여 활동하고 있는 변호사이다.
그의 경력은
△ 흐레티린(Fretilin;이스트 티모르 독립을 위한 혁명전선) 창설자 중 한사람이며 같은 단체 정치 위원(1975-77)
△ 이스트 티모르 공화국 정무장관(1975-77)
△ 이스트 티모르 외무장관 (1977-86)
△ 흐레티닌(Fretilin) 외교부장(1977-85, 1989-현재) 등을 지냄
그의 활동은
△ 1976년 2월, 이스트 티모르 문제에 관한 유엔 안전 보장 이사회 토의 참가
△ 1976-82년, 유엔 총회 토론 참가
△ 1988년, ACP(African, Caribbean, Pacific(Associables))-ECC 총회 참가
△ 기타 비동맹 외상 회의 등 여러 국제 회의 참석
△ ‘이스트 티모르를 위한 국제 법률가 강령’ (International Platform of Jurists for East Timor)의 멤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