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
이 익숙하고 따스한 느낌의 말에 공개적으로 반대하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평화는 멀기만 하다. '주먹은 가깝고 법은 멀다'는 말처럼. 지구 위에 유일한 분단국가라고 할 수 있는 한국사회는 평화운동의 불모지에 가깝다. 분단과 폭력이 난무했고, 지금도 여전한데, 평화는 왜 이리 멀기만 한가. 통일운동 단체는 셀 수도 없을 만큼 많은데, 평화운동 단체는 왜 손가락으로 꼽아도 될 만큼 적은가.
"해야 할 일이 많은데 길이 보이지 않는다." 며칠 전 만난 한 통일운동가는 몹시 답답해 했다. '전통적 통일운동 방식'으로는 더 이상 활로를 모색하기가 어려운 것 같아 보인다는 얘기였다. 그러면서 그는 요즘 통일운동에 평화운동을 접목하는 문제를 집중적으로 고민하고 있다고 조심스레 말했다. 통일운동에 평화운동을 접목한다? 당연한 일 같지만, 이런 발상은 한국사회에서 그리 익숙한 게 아니다. 생각해볼 일이다.
통일운동과 평화운동 사이에 다리를 놓는 일은 어떻게 가능할까. 그것은 아마도 통일운동에 인권의 시각을 투영하는 것과 다르지 않으리라. 하지만 그게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한국사회에서 통일(운동)은 대체로 민족자주의 다른 이름이다. 그리하여 일상적으로 '매춘부'라 비난하던 한 한국여성이 미군에게 성폭행 당한 뒤 살해당하면 '순결한 우리의 누이'라 달리 부른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그 '매춘부'와 '순결한 우리의 누이'는 같은 사람이다. 그것이 정치적 수사라 하더라도 두 호칭 사이에는 한국사회의 '이중잣대'가 가로놓여 있다. '너'와 '나'는 다 같은 사람이라는 마음. 성별과 인종과 민족, 학력, 경제력의 차이를 뛰어넘어 누구나 '같은 사람' 이라는 보편적 인권의 시각으로 바라보고 실천하는 일, 그 지점에서 통일운동은 평화운동과 만날 수 있을 것 같다.
2000년은 '한국전쟁' 또는 '6·25 전쟁'이 일어난 지 꼭 반세기가 되는 해다. 유엔이 올해를 '평화문화의 해'라 정해서가 아니라 한반도의 인권과 민주주의의 신장, 민족분쟁 등 야만적 폭력에 시달리고 있는 지구촌 인류의 인권을 위해 이제는 정말 평화를 이야기할 때이다.
제2차 바티칸공회의 '현대 세계의 사목헌장'은 평화를 이렇게 규정하고 있다. "평화는 전쟁이 없는 상태만이 아니요 적대세력간의 균형유지만도 아니며, 전체적 지배의 결과도 아니다. 정확하게 말해서 평화는 정의의 실현이다. 더욱 완전한 정의를 갈망하는 인간들이 실현해야 할 그 질서의 현실화가 바로 평화이다."
이제훈(한겨레신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