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 경제위기 이후 노숙자 문제가 사회이슈로 떠오르면서 보건복지부는 '대도시 노숙자 특별보호사업'을 전개했다. 이 때의 노숙자정책은 가시적인 성과를 보였지만, 그야말로 임시적인 '특별보호'였으며 거리노숙자들을 수용하고 당시의 급한 상황을 땜질하는 임기응변식 단기조치라는 비판을 받았다. 또한 이러한 응급구호는 법적인 근거가 없는 것이었으며, 여론의 추이와 정부의 자의적 선택에 의해 변화가능한 행정프로그램이었다. 그리고 2년이 지난 지금, 노숙자정책은 여전히 제자리걸음을 면치 못하고 있다.
임기응변식 단기대응 급급
노숙자 문제에 대한 정부의 임기응변식 태도는 의료 문제에 있어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노숙자들은 감기, 결핵, 피부병, 간염 등의 유병률이 현저히 높을 뿐더러 이러한 질병은 대부분 만성이다. 오랜 질병은 노숙자들의 현재 삶을 해칠 뿐 아니라 노동력과 재활의지를 상실하게 만들어 그 후의 삶 자체를 파괴할 수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노숙자들의 의료문제는 일반인과는 다른 의미를 가진다.
그러나 노숙자를 위해 특화된 의료기관은 전혀 없고 인의협 등의 민간단체나 보건소에서 비상시적으로 기초적인 의료행위를 하고 있을 뿐이다. 보건소의 의료서비스는 질병을 호소하는 노숙자들에게 약을 조제해주는 수준에 불과하며, 체계적인 관리나 적극적인 진료 등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나마 일주일에 2번 정도 의사 한 명과 간호사 한 명이 파견되는 정도이다. 해당보건소에서만 담당할 뿐 보건의료체계에서 노숙자문제는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고 있어 앞으로도 노숙자 의료체계는 구축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물론, 노숙자들이 직접 의료기관을 찾을 수도 있고, '행려' 자격으로 진료를 받을 수도 있다. 그러나 국가로부터 급여를 받기 까다로워 응급치료 외에는 기피되고 있고, 만성질병의 통원치료나 가벼운 질병은 특히 그러하다. MRI 촬영과 같은 비급여 부분의 치료는 꿈도 꿀 수 없다. '의료보호'자격이 있어도 마찬가지다. 이기옥(햇살 보금자리 간사) 씨는 "간병인을 구해야 하는 등 현실적으로 어려운 자격조건이 있어서 '차라리 행려로 치료받는 게 낫다'는 소리가 절로 나온다"고 밝혔다.
결국 노숙자들의 의료는 제도로 정착되지 못한 채 서울시의 지침에 따른 행정프로그램에 머물러 있으며 노숙자들의 건강은 방치되고 있다. 1998년부터 1999년까지 세 차례에 걸친 노숙자 건강실태조사결과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서 만성질환이 증가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것이 쉼터나 보건소 이용 노숙자 대상의 조사임을 감안할 때, 거리노숙자들의 건강실태는 보다 심각할 것으로 쉽게 예측할 수 있다. 노숙환경의 질병 요인을 제거하고 예방지도를 철저히 하는 적극적인 국가의 의무 수행은 계획조차 없다.
의료·생활보장, 제도적 배제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은 '전국민의 최소한의 인간다운 생활보장'을 앞세운 이른바 '생산적 복지'의 핵심사업이며, 비현실적인 연령제한을 철폐하고 생활보장을 시혜가 아닌 권리로 명시했다는 점에서 기존 '생활보호법'보다 진일보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숙자들의 제도적 소외는 기초생활보장법에서도 나타난다. 수급대상이 전국민이 아닌 '주민등록지 거주자'에 한정된 것이다. 즉, 현재 거주하고 있는 곳에 주민등록이 되어있어야 수급자격이 주어지기 때문에 노숙자, 쪽방거주자, 철거민 등은 소득이나 재산의 정도와 상관없이 급여신청조차 할 수 없다. 주민등록을 하고 거주할 수조차 없는 사람들이야말로 누구보다도 생활보장이 시급하게 필요하지만, 정부의 빈곤대책은 도리어 이들을 배제시키는 모순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노숙자 껴안을 때
이에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를 중심으로 '수급권자 권리찾기운동'이 전개되고 있지만, 아직 개선의 조짐은 나타나지 않고 있다.
얼마전 캐나다 정부는 노숙자가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제도를 정비했다고 한다. 이제 우리의 제도도 노숙자들을 껴안을 때이다. IMF 이후의 응급구호가 정당성을 획득할 시기는 이미 지났다. 노숙자다시서기지원센터의 김해수 간사는 "노숙자대책이 초기보다는 나아졌지만 아직 초보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다. 더 특화되고 전문화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노숙은 IMF 이전부터도 그랬고 지금에 있어서도 장기적인 문제이다. 노숙자의 인간다운 생활을 보장할 수 있는 제도 역시 장기적으로 정착되어야 한다.
- 1760호
- 박효원
- 2000-1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