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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녹화사업 자료, 대통령도 못 본다고?”

기무사 억지춘향…당시 보안사 담당자, “자료목록 영구보존”


80년대 초 강제징집·녹화사업과 관련, 가해기관 중 하나인 기무사는 21일 '관련 문서를 확인하겠다'는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위원장 한상범, 아래 의문사위)의 실지조사를 거부했다. 의문사위가 이날 확인하려 한 자료는 보안사(현 기무사) 및 보안사 예하부대와 관련된 사망사건 11건에 관한 것들로, △전체 문서 관리지침을 알 수 있는 '기무사 문서관리 기준표 및 규정집' △녹화사업과 관련해 '당시 보안사가 생산한 자료' △각 사건과 관련해 '사령부 또는 해당 보안대 예하부대에서 생산한 자료들'이다.

지난해 12월 기무사는 의문사위가 요청한 자료에 대해 '녹화사업 관련 자료들은 사령관의 지시로 90년 소각하였고, 소각량도 라면박스 5∼6개 분량이었다'며 '관련 자료들이 폐기되었음'을 공문으로 회신한 바 있다. 또한 문서규정집과 같은 기본적인 자료조차 '기밀사항'이라며 자료 협조를 거부해 왔다.

하지만 당시 녹화사업을 주관했던 보안사 담당자는 최근 의문사위에 출두해, "녹화사업 심사자 1천여 명, 전체 관련자 5천여 명의 존안 자료를 생산했고, 이는 철제 캐비넷 17개 분량이었으며, 이를 인수인계 했다"라고 증언했다. 또한 "인수인계 목록은 영구보존문서로 분류되어 기무사에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진술해, 최소한 관련 자료목록은 보관되어 있음을 전했다.

이에 의문사위는 '관련 자료가 없다'는 기무사의 답변에 대해 "문서고를 직접 열고 녹화사업 관련 자료 등이 없다는 점을 확인해 공표하면 국민들이 믿을 수 있을 것"이라며 거듭 협조를 요청했다. 그러나 기무사는 "대통령이 와도 보여 줄 수 없다", "대한민국이 거꾸러져도 안 된다"라고 억지를 부리며 의문사위의 협조 요청을 일축해 버린 것이다.

의문사위는 "기무사가 협조를 한다고 말로만 하면서 실제로는 문서 열람은커녕 목록조차 검색하지 못하게 한다"라며, "이를 어떻게 협조한다고 할 수 있느냐"라고 반문했다. 이어 "이젠 기무사가 의문사 진상규명 활동에 협조하지 않았음을 공표하고, 기무사령관에 과태료 부과를 검토하겠다"라고 밝혔다.

한편, 이날 오전 11시 박형규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 오종렬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 상임의장 등 9명의 자문위원들은 의문사위의 기간연장과 권한강화 및 반인도적 국가범죄에 대한 공소시효 배제 등을 대통령과 여야에 건의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대해 박 이사장은 "시민단체에서 법개정을 위한 노력을 하고 있는 만큼 우리 자문위원들도 함께 노력해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라며 취지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