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인권사회단체 등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혀 국회에서 테러방지법안 심의가 중단되었을 때 한나라당 소속의 국회 정보위원장인 김덕규 의원은 월드컵 이후에라도 이 법을 꼭 만들어야 한다는 의지를 피력한 바 있다. 그런 그의 불타는 의지가 1년여만에 테러방지법의 재추진으로 나타나고 있다.
우리는 "전 세계적인 테러방지 움직임에 동참하고 외국과의 원활한 정보협력 등을 위해 테러방지법은 꼭 필요하다"는 김 의원의 주장을 인정할 수 없다. 아울러 국정원이 추진했던 법안과는 달리, 인권침해 소지가 전혀 없는 법안을 만들겠다는 그의 공언도 믿을 수 없다.
9.11 테러를 계기로 만들어진 패트리어트법에 따라 정보기관에 강력한 수사권을 부여한 미국 사회에서는 그후 기본권 침해가 끊이지 않고 있으며, 일상적인 감시체제가 강화되어 보수적인 단체들마저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뿐만 아니라 훨씬 이전부터 테러방지법을 운영해온 아일랜드나 인도에서도 테러 용의자의 1%만이 기소되어 사실상은 이 법이 국민감시체제의 강화에 목적이 있었다는 비난을 받고 있는 실정이다.
이처럼 테러방지법은 그 외양을 어떻게 치장하든 필연적으로 국가권력의 강화와 인권침해의 일상화를 낳게 된다. 더욱이 전 국민적인 저항에 의해 무산된 법률을 재추진하는 것인 만큼, 법안 성안 과정에서부터 공개적으로 의견을 수렴하는 것이 마땅할 터이다. 그런데도 국회 정보위가 공개적 의견 수렴 과정 없이 다시 법 제정을 추진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 법률의 졸속 통과를 의심하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또 이 법 없이도 월드컵을 무사히 치러낸 나라에서 테러방지법을 또다시 추진해야 할 그 어떤 새로운 이유도 찾아볼 수 없다.
그러잖아도 국가보안법을 비롯한 과거 독재시대의 법률들이 국민의 기본권을 지나치게 제한하고 국가권력의 무제한적 남용을 낳고 있어 정비가 절실한 시점이다. 그런데도 이들 법률을 국제인권기준에 맞게 정비하는 일에는 신경을 쓰지 않은 채 테러방지법부터 만들려는 김 의원의 저의를 우리는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어떤 명분으로도 테러방지법의 재추진은 절대 용납될 수 없다.
- 2403호
- 2003-08-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