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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선미의 인권이야기

'미래의 주역'과 오늘의 고통

오늘도 6시에 졸린 눈을 겨우 뜨고 학교로 향한다. 아침밥은 10분의 단잠과 기꺼이 바꾼 지 오래이다. 수시 1학기에 합격한 아이들이 빠져나간 교실 안으로 들어서면, 남은 30명 남짓한 수능 전사들이 이제는 별로 새로울 것도 없는 하루하루를 관성의 힘으로 버티고 있다.

이런 우리에게도 꿈 많던 시절이 있었다. 각자의 빛깔과 향기를 간직한 다양한 그 꿈들을 함께 나누었었건만, 이제는 모두들 그 꿈들을 잠시 접은 채 오로지 수능이라는 한 가지 목표만을 위해 정진하고 있다. 각자 다양한 꿈을 실현하기 위해 획일적인 수능을 거쳐야 한다는 입시제도에 문제가 있음을 우리들 모두는 알고 있지만, 어찌할 수 없는 현실 속에서 살아남아야 하겠기에 문제집을 편다.

이런 우리가 신세타령이라도 할라치면 어른들은 그래도 교복 입을 때가 제일 좋은 거라고,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고 우리를 위로한다. 고3의 양면성이 드러나는 순간이다. 학생들이 학습노동에 시달리고 있다면 가장 강도 높은 노동을 강요받는 것은 고3이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조금만 있으면 그 고통도 끝나게 된다. 그야말로 파이날(final)인 것이다. 그 마지막 순간을 멋지게 장식하기 위해 조금만 더 버티라는 말은 꽤나 설득력을 갖는다.

하지만 잠시만 생각해보자. 우리는 무엇을 위해서 달리고 있는가? 대부분은 자기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라고 말할 것이다. 그렇다면 미래에 꿈을 이루기 위해서 현재 우리가 누려야 할 것들은 포기해도 좋은 것일까?

예전에는 "청소년은 미래의 주역입니다"라고 하면 사회로부터 대우받는 듯한 기분도 들었고 명분상이나마 사회가 청소년에게 가치를 부여하고 있다고 생각하며 안도했다. 하지만 왜 '미래의 주역'들의 현실에 대해서는 사회가 관심을 갖지 않는 것일까를 고민하다 이 말이 표현과 반대로 작용하고 있음을 발견했다. '미래의 주역' 이라는 말은 "너희는 미래의 주역이니 오늘의 고통쯤은 참아야 한다. 우리는 단지 너희가 성인이 될 미래에 관심이 있을 뿐이다"라는 사회의 외침인 것이다.

청소년은 미래의 주역일 뿐 아니라 현재의 인간이다. 그러므로 인간에게 주어진 기본적인 권리들은 청소년에게도 지금 마땅히 보장되어야 한다. 하지만 사회는 우리에게 미래에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지금의 고통은 참으라고 요구한다. 이제는 이러한 요구에 반기를 들어야 한다. 지금까지 어른들은 우리들이 처한 문제를 실질적으로 해결하기보다는 미래에 대한 환상을 심어주며 현실의 고통을 망각하게 했다. 우리 청소년들도 미래에 대한 장밋빛 환상으로 현재의 나의 권리에 대해서 무관심했던 것이 사실이다. 이럴수록 청소년 인권은 한 걸음씩 멀어져 간다.

노동해방이 되고 통일이 되어도 여성운동은 계속된다는 말이 있다. 이제 그 문장은 노동해방이 되고 통일이 되고 여성이 해방된 이후에도 청소년 운동은 계속되어야 한다는 말로 바뀌어야 한다. 청소년의 인권현실을 사회가 계속 외면하는 한.

(선미 님은 청소년의 힘 회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