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보법 56년, 폐지 결의 56명 삭발
국가보안법이 제정된 지 꼭 56년째 되는 날인 12월 1일, 더이상 이날을 눈물과 한숨으로 맞이할 수 없다는 외침이 서울 여의도 하늘 아래 울려 퍼졌다.
이날 여의도 국회 앞에서는 '국가보안법 완전폐지 총력투쟁 결의대회'가 400여 명의 학생, 시민들이 모인 가운데 열렸다. 결의대회는 어느덧 30일째를 맞이한 단식농성자 8명의 인사와 편지 낭독으로 시작됐다. "56년에 비하면 30일이라는 단식기간은 짧다"며 말문을 연 이들은 "민중들의 인권을 짓밟고 자란 국가보안법에 이제 힘차게 도끼질을 해야 할 때"라고 주장했다. 또한 단식농성에 함께 하고 있는 한국청년단체협의회 송현섭 정책위원장은 단식투쟁기간 동안의 심경을 나타낸 편지글 낭독을 통해 자신의 세 살짜리 딸 아이를 생각하면, 아이의 상상력까지도 옥죄고 있는 국가보안법은 폐지되어야 한다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힘주어 말했다.
이어 사회단체 활동가, 민주노동당 당원, 학생, 시민 등 각계 각층 56인의 삭발식이 진행되었다. 국가보안법 폐지를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굳은 의지를 자신의 머리카락을 잘라냄으로써 표현한 것. 삭발식은 애초 국가보안법의 나이와 같은 56명이 참가하기로 되어있었지만 즉석에서 자발적으로 10여명이 더 참여해 약 1시간에 걸쳐 삭발식이 진행됐다. 일부 삭발자와 집회 참가자들은 복받치는 감정을 참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으며, 머리를 깎은 이들은 서로 악수와 포옹을 하기도 하였다. 삭발식에 참여한 민주노동당 유선희 최고위원은 "삭발 전에는 결코 눈물을 흘리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나서서 머리를 자를 수밖에 없는 현실 때문에 눈물이 난다"고 전했다. 삭발식 과정을 내내 일어서서 지켜보고 있었던 대학생 김경희 씨는 "앞에서 삭발을 하면서까지 결의를 보여주는 모습을 보니 정치·사상의 자유뿐 아니라 우리 일상까지 억압해 온 국가보안법에 대해 너무 안이하게 생각했었던 것 같다"며 국보법이 폐지되는 순간까지 열심 싸울 것이라고 다짐했다.
결의대회에 앞서 '민족의 화해와 국가보안법 폐지 기독교 운동본부'에서는 '국가보안법 폐지 기독인 금식기도회'를 열었으며, 국가보안법 폐지 국민연대에서는 30만 명 이상이 참여한 '국가보안법 폐지 청원서'를 국회에 제출했다. 또 부산에서는 '국가보안법 폐지 부산연대'에서 열린우리당 부산시당을 점거해 농성에 들어가는 등 전국 곳곳에서 국가보안법 폐지의 함성을 드높였다.
한편, 이날 국회 법사위에서는 민주노동당 노회찬 의원이 국가보안법 완전폐지안에 대한 의사일정 변경 동의를 구했고, 열린우리당 이은영 의원의 재청으로 법안이 기습적으로 상정됐다. 그러나 법사위원장인 한나라당 최연희 의원이 정회를 선포하고 회의장을 빠져나가 최초로 국회에 상정된 국가보안법 폐지안은 더이상의 논의조차 이루어지지 못한 채 폐기됐다. 이에 열린우리당은 오는 3일, 형법보완을 전제로 한 국가보안법 폐지안 상정을 추진하기로 해 앞으로의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