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네팔, 스리랑카, 버마, 방글라데시,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 캄보디아의 독립영화제작자들이 보내온 189편 가운데 선별된 44편의 다큐멘터리와 영화들이 상영되는 6일 내내 영화관은 붐볐다. 또한 영화 상영 후 뿐만 아니라 쉬는 짬마다 관객들의 질문에 성실히 답변하는 제작자들의 진지한 태도로 영화제는 열린 시네포럼이었으며 표현의 자유와 검열에 관한 토론회, 다큐멘터리 제작기금과 마케팅에 관한 강의와 사전 검열에 반대하는 공동 성명서 작업들이 병행된 학습장이자 토론장이었다.
뭐니뭐니해도 영화제를 돋보이게 한 것은 다양한 주제의 질 높은 영화들이었다. 카스트와 노예제도, 종교와 갈등, 전쟁과 아동, 소수민족과 억압, 고통과 평화, 빈곤과 이주 그리고 여성과 성인신매매등 다양한 정치·사회·문화·종교적인 맥락의 기록물들이 상영되는 동안 영화관은 한숨과 침묵이 흘렀으며 때로는 흐느낌도 있었다. 특히 네팔 산악 지대의 여아들이 인도 뭄바이의 성매매현장에 매매되는 과정을 생생하게 그린 <나의 신이 죽던 날>의 상영시간에는 표를 구하지 못한 네팔 청년들이 복도 가득 서서 입석 입장을 기다렸다. 이들이 흩어지지 않자 진행자들은 서둘러 재상영을 약속하고 해산시키는 순발력을 발휘해야 했다. 차례를 기다리는 청년에게 "이 영화에 관심을 갖는 이유가 무엇인가?"라고 묻자 "우리의 현실에 대하여 알고 싶다. 실제로 여성들에게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우리는 잘 모르고 있다"며 관심을 갖는 것은 당연하다 했다. 영화제 기획자들은 이 영화의 주인공들인 생존 여성들과 그 가족들을 초대했으며 어둠 속에서 입장하는 이들에게 관객들은 큰 박수로 격려를 보냈다.
상영중지 압력에 장소변경
영화제에는 또한 국가간의 미묘한 갈등과 긴장도 있었다. 치타공숲속의 소수민족이며 티벳불자들인 줌마족들의 삶을 그린 영화 <카르나풀리의 눈물>은 방글라데시 정부로부터 반출 금지된 영화라고 했다. 이 영화는 공공장소라고 '그들'이 말하는 쿠마리시네마를 피해 러시아 문화관 소회의실의 스크린에 조용히 펼쳐져야만 했다. 그러나 방글라데시 대사관은 끝내 갸넨드라왕 정부에 항의를 했고 네팔 외무부는 기획자들에게 압력을 가해 영화제 내내 묘한 긴장이 흘렀다. 제작자들과 참가자들은 <카르나풀리의 눈물> 시사회를 마친 후 같은 장소에서 연이어 '표현의 자유와 사전 검열'에 관한 토론회를 가졌다. "독립영화제작자들에게 사전 검열이 다 무엇인가? 무시하고 만들면 된다"라는 원칙적인 주장과 "사전 검열로 신생 다큐 제작자들의 동기가 약화된다. 그러므로 제도적으로 자유는 보장되어야 한다"는 현실지향의 주장이 오고갔다. 토론의 결론은 성명서를 작성해 서명을 받아 정부와의 대화에서 압력수단으로 활용하자는 것으로 끝났다.
토론회를 비롯한 행사의 공식 언어는 영어였다. 90개의 채널이 있다는 남아시아 지역의 소통은 영어로 한다지만 네팔에서 열리는 영화제에 영어 자막과 해설로 네팔어와 힌디사용자들을 차별하였다는 혹평을 기획자들은 들어야만 했다. 또한 이왕 열리는 영화제인데 시민사회단체들의 참여를 독려하고 그들의 활동을 홍보하며 네팔의 민주화를 위한 투쟁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 알려 낼 수 있는 기회를 상실했다는 한국 활동가들의 비판을 기획자들에게 전하며 영화제 이후의 계획을 들었다.
릴레이 세계일주여행으로 세계 관객들 만난다
상영된 44편의 영화 가운데 15편을 엄선해 꾸러미로 만들어 2006년부터 세계일주여행을 보낸다고 한다. 주로 유럽, 미주, 일본과 인도지역에서 요청이 많으며 히말 사무실에서 첫 상영지로 보내주면 그곳에서 다음 상영지로 송달을 하는 마라톤 릴레이 형식의 세계일주인 것이다. 주로 대학과 시민사회영역에서 요청이 많다는 남아시아 다큐세계일주는 아직 한국에 간 적이 없다고 한다. 그러나 꾸러미로 한국에서 다음지역으로 가기에는 언어문제가 걸렸다.
또한 영화제는 올해의 영화를 선정해 '람바하두르' 트로피를 수여한다. 네팔의 다큐멘터리 대부인 람 바하두르(Ram Bahadur)의 이름을 딴 트로피의 2005년 수상자는 '끝없는 여행'으로 정해졌다. 13세부터 카메라를 들기 시작한 인도인 알리 카지미(Ali Kazimi)가 만든 '끝없는 여행'은 1914년 영국식민지하 인도 펀잡지역 시크들의 이주와 차별에 얽힌 기록물이다. 이 영화는 모든 것을 털어 이주에 나선 시크들이 캐나다 항구에 정박하지도 못한 채 일본인 소유의 '코마가타 마루'라는 이름의 배위에서 겪은 2개월간의 살인적인 삶을 되돌려 식민지하의 인도인들이 영국과 캐나다로부터 받은 불평등에 관한 보고서이다.
굶주림과 목마름으로 살인적인 조건하에서 어린이를 동반한 인도 이주민들의 버려짐은 오늘날 신자유주의 세계화로 끝없이 떠도는 이주노동자들의 차별적인 삶을 연상시킨다. 새로운 삶을 찾아 끝없는 여행이 계속되는 가운데 그때와 지금이 차이가 있다면 '디지털 혁명, 다큐멘터리로'로 의식의 혁명을 생각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점이었다. 그러나 6일간 쿠마리시네마를 찾은 단골 관객들이 영어사용 특수층들이어서 대중들의 접근권이 강구되지 않는 한 일부 지식인들의 축제로 이어지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을 남긴 채 막을 내렸다.
덧붙임
이금연 님은 이주여성인권연대 공동대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