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록
누군가 나에게 “상추튀김 어떠냐”고 물었다. 뭘 묻는 건지 몰랐다. 상추를 튀기는 음식이 있는 줄 알았다. 그 사람이 물었던 상추튀김이라는 게 시장에서 상추에 싸먹었던 오징어튀김이라는 걸 나중에 알았다. 생각해보니 오징어튀김을 간장에 찍어 상추를 싸먹는 걸 다른 곳에서 본적이 없다. 누군가에겐 너무 자연스러운 행동이나 식습관에 다른 이들이 이름을 붙이니 갑자기 낯설어지더라.
아해
고등학교를 지나 꽤 클 때까지도, 명절에 외할머니댁에 가면 소머리수육이 있었다. 내가 즐기기엔 너무 쫀쫀했다는 느낌이긴 한데, 최근 어머니한테서 놀라운 얘기를 들었다. 그 소머리수육을 외할머니께서 직접 해 오셨다는 것을!!
명절이 가까워지면, 시장에서 소머리(말 그대로 진짜 소머리를!)를 사서 가마솥에 푸우욱 끓여서 뼈를 건지고 나무틀에 넣어서 무거운 다듬이돌로 며칠 동안 눌러서, 그 소머리수육을 만들어두신다는 것이다. 헉.
영화 '리틀포레스트'(일본영화든 한국영화든)를 볼 때와 비슷한 느낌이 확 들었다. 이미 지난 계절부터 하나씩 차곡차곡 준비된 재료들과 마음들이 만나서 지금 이 순간의 음식이 되어 뱃속에 들어오는 과정.
당연히 아는 집에서 사 오신 것이라 생각하고,
이미 한참 전부터 준비하신 것인 줄도 모르고,
그 결과만 쏙쏙 골라먹으면서,
쫀쫀하니 마니 평가질이나 했던 것이,
얼마 전에 수육 누르는 도구들을 버리셔서 아쉬워하시는, 외할머니에게 미안하다.
가원
고향의 맛에 자신이 없다. 다들 부산 음식은 맛이 없다고들 한다. 나 역시 막상 떠오르는 대표 음식도 없다. 생선회나 해산물 정도 되려나.
민선
서울에서 태어난 나는 '고향'이 따로 없다고 생각해서 '고향음식'이라고 떠오르는 게 없다. 그래도 써야 한다면 '가지찜'이 떠오른다. 북한 음식이라는 가지찜을 우리 집은 자주 해먹는데, 이북이 고향인 친가에서 엄마가 할머니께 배운 거라고 한다. 토막낸 가지를 갈라서 그 사이에 버섯, 양파, 고기 등을 다진 된장 양념을 넣고 감자 위에 올려서 쪄낸 것이다. 예전에 사무실에서 한 번 했을 때 반응이 괜찮았는데, 번거로워서 그 이후 안했다. 생각난 김에 다음 밥당번일 때 해봐야겠다.
미류
단연 빙떡. 애정하는 음식이다. 육지에서 먹는 메밀전병과 비슷한데, 메밀반죽을 얇게 부친 후 무채나물을 넣는 것이 다르다. 제주의 겨울 무는 특히나 맛있어, 쪽파를 조금 넣고 소금 간만 하면 단물이 입안에 맴돈다. 그걸 감싸주는 메밀 맛이 '츤데레' 같달까. 시무룩한 듯하지만 푸근하다. 직접 만들어볼 생각은 못해봤는데, 도전해보고 싶네...
디요
수년 전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나누시던 대화가 떠오른다.
할아버지 : 서울 가면 이런 거 못 먹는다.
할머니 : 노량진 가고, 가락시장 가면 다 있다. 당신이 서울에서 못 먹어 본걸 가지고...
고향 음식이란 무엇인가.
어쓰
고향의 음식은 아니지만 나의 소울 푸드. 흔히 ‘닭 한마리’라고 부르는, 닭과 여러 야채를 함께 삶은 뒤 육수에 칼국수 사리를 풀어서 먹는 음식. 정작 닭고기와 감자를 건져 먹은 뒤 풀어먹는 면은 언제나 라면사리였는데도 불구하고 우리 집에서는 그 음식을 늘 '닭칼국수'라고 불렀다. 칼국수 대신 라면사리를 넣은 게 입맛에 맞아서 혼자 살게 된 뒤로도 종종 해먹었는데, 고춧가루와 간장과 다진 마늘을 섞은 양념장은 아무리 해도 예전에 집에서 먹던 그 맛이 잘 안 나오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