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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그대다그대

내 인생의 '민중가요'

정록

민중가요라는 말은 민중이라는 말이 잘 안쓰이거나 어색해지면서 같이 멀어진 느낌이다. 많은 이들이 좋아하는 꽃다지의 <내가 왜?>는 민중가요일까? 싸우는 사람들을 위로하는 노래라는 것은 분명한데....

어쓰

정록이 예시로 든 꽃다지의 <내가 왜?>. 2011년 겨울에 이 노래가 막 나왔을 무렵, 나와 청소년운동 동료 활동가들은 서울학생인권조례 주민발의 성사를 위해 매일매일 하루도 빠지지 않고 아침부터 밤까지 거리 가판대에서 서명을 받는 중이었다. 함께 책임지자고 결의했던 큰 단체들을 잘 보이지가 않고, 10만 명이라는 목표에 비해 손에 쥔 서명지는 터무니없이 적으며, 아무도 성공하리라는 자신이나 낙담을 보이기 어려웠지만 실패의 후폭풍은 더더욱 상상하기도 감당하기도 어려웠을 때... 덜덜 떨면서도 목이 쉬어라 서명을 모으고 사무실로 돌아온 밤, "찬 바람 부는 날 거리에서 잠들 땐 너무 춥더라 인생도 시리고"라는 노래를 다 같이 들으며 그날 모은 서명을 집계하고 분류했던 기억. "도와주는 사람, 함께 하는 사람은 있지만 정말 추운 건 어쩔 수 없더라"는 가사처럼, 그 해 겨울은 정말 어쩔 수 없도록 추웠다. 지나고 나니 비로소 살폿 웃으며 들을 수 있는 노래.

다슬

민중가요를 들어보기는 했지만.. 민중가요는 낯설기만 했었다. 소녀시대<다시 만난 세계>가 집회에서 불리기 전 까지는 말이다. 그 이후로 등장한 곡은... 이랑<늑대가 나타났다>아닐까요..?

미류

언젠가부터 '임을 위한 행진곡'이 없는 집회에 함께 하게 되는 일이 잦아졌다. 가끔 불안했다. 그건 역사를 잇는 형식이었으니까. 비슷한 시기 '다시 만난 세계'를 떼창으로 부르는 집회에도 익숙해졌다. 가끔 불안했다. 다른 방향의 요구를 가진 사람들도 모여서 부르는 노래니까. 두 노래가 같이 있는 게 어색하지 않은 차별금지법제정운동을 하면서 더이상 불안하지 않았다. 해방의 열망은 형식을 넘나들며 제 역사를 찾아갈 거다.

해미

민중가요 하면 동료와 한마음으로 함께 목소리와 동작을 맞췄던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가령... 반복되는 가사 덕에 떼창이 수월했던 ‘연영석’의 <간절히>와 ‘한받(야마가타 트윅스터)’의 <돈만 아는 저질>, ‘꽃다지’의 <주문>. 그리고 제각각의 몸짓으로 서로에게 힘을 주었던 ‘우리나라’의 <우리 하나되어>와 ‘꽃다지’의 <바위처럼>. 민중가요를 만나서 깨닫게 된 중요한 사실. 투쟁이 즐거워야 더 오래 함께 싸울 수 있더라.

민선

과방에 기타와 함께 민중가요 모음집 <우리시대의 노래>가 있었다. ㄱ부터 ㅎ까지 제목 순으로 된 책을 한장 한장 넘겨가며 누군가 기타를 치면서 부르기 시작하면 어느새 하나둘 모여 같이 부르곤 했는데... 그러다 알게 된 <청계천8가>로 민중가요는 집회 때 부르는 특별한 노래만이 아니라 평범한 삶을 위로하는 일상의 노래라는 것을 배웠다

대용

2020년 발매된 정밀아의 청파소나타라는 앨범 중에서 '오래된 동네'라는 노래가 수록되어 있다. 나는 정밀아씨를 잘 모르지만 아무래도 민중가요풍으로 만든 게 틀림없다고 생각한다. 가사부터 리듬까지 왠지 팔뚝질이 잘 어울리는 노래랄까.

회의 때 어쩌다가 성차별에 대한 격렬한 토로가 이루어지고 나면 갑자기 일어나 팔뚝을 들고 <딸들아 일어나라>를 부르던 친구가 있어서 다들 웃었던 기억이 난다. 물론 "왜 아직도 딸이냐", "모성보호가 왜 고귀하냐", "이제 이 가사는 바뀔 때도 됐다" 딴지 거는 친구들도 있었고, 그래서 계속 웃을 수 있었다.

가원

가사를 따라부를만큼 익숙한 민중가요가 없는데, 과연 내게도 그런 노래가 생기는 날이 올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