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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주의 인권이야기] 일터에서 일어나는 일

장애인 샐러리맨의 일상

이제 결혼도 하고 애도 낳고 부모님께 효도 해야지?
너를 원래 우리 부서에서 안 받으려고 했어.


회사에서 내가 6개월 동안 들은 이야기들이다. 나에게는 이번이 ‘정식’ 첫 직장이기에 적지 않게 당황했다. 한국의 대부분의 회사들은 군대식 문화가 있다더라, 회사는 살만한 곳이 아니다, 등등의 이야기를 들어본 적은 있다. 하지만 일하는 것, 이건 정말 쉬운 것이 아니었다. 네가 다니는 회사는 그런 분위기가 더 하다더라, ‘신입’이어서 그렇다, 등의 주변사람들의 이야기도 있었다. 그런데 무엇인가 힘들었다. 내가 이상한 것인가. 다른 사람도 다 견디는데 나만 못할 건 없지 않은가? (사실 이렇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단지 살아남아야하는 상황에서 하는 생각이다.)

2010년 현재 장애인 경제활동참가율은 38.5%(2010년 장애인 경제활동 실태조사, 한국장애인고용공단 고용개발원)로 전체 인구의 경제활동참가율 61.9%보다 약 23%p 정도 낮으며, 장애인 고용율은 36%로 전체인구 고용율 60%보다 24%p 낮은 상황에서, 취업한 장애인인 나는 운이 좋은 편이라고 할 수 있다. 게다가 나는 공채로 입사 했으니 ‘비장애인’들과 ‘엇비슷한 임금을 받고’ ‘일을 할 수 있는’ 행운을 누리게 된 것이다. 이것은 냉정하게 말해 ‘굉장한’ 일이다. ‘비장애인’들과 함께 일한다는 것은 그들이 만들어 놓은 세상을 함께 경험할 수 있고, ‘동일임금을 받는다’는 것은 적어도 외형적으로는 그들과 같게 능력을 ‘인정’받으며 일정 부분 ‘경제적 안정성’도 가지고 ‘돈을 통한 권리’도 행사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며, ‘일을 한다는 것’은 현대사회에서 ‘가치’가 있는 ‘사람’임을 인정받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들은 한국사회 장애인들의 보편적 현실로부터의 탈출을 의미한다.

[그림: 윤필]

▲ [그림: 윤필]


나, 구원받았니?

특히 최근 10년간의 한국 사회에서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의 의미는 ‘삶을 영위하는 측면에서’ 중요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회사에서는 나에게 이것을 항상 이야기 한다. 말 하지 않아도 중요하다는 것을 나도 아는데 나에게 항상 이야기 한다. 알고 있는 것을 계속 반복해 말하면 화난다.

너는 열심히 해야 한다. 왜냐하면….
너는 이 일에서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왜냐하면’의 뒤에는 ‘장애인인데 너를 뽑았잖아’라는 말이 ‘암묵적으로’ 뒤따른다. ‘장애인’을, 그것도 취업난이 극심한 현실에서, 너를 ‘구원’해 줬다는 것이다. 아! 나는 구원받았구나. 젠장.

모든 조직은 그 조직을 유지하기 위한 지원업무가 존재한다. 지원업무를 수행하기 위한 별도조직이 존재하는 경우는 상관없지만 상황이 그렇지 않은 경우 이 업무는 ‘막내’에게 할당된다. 앞서 언급한 일종의 군대식 문화의 연장선이다. 업무파악을 위해서라는 명분이 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이것은 대부분의 조직이 비용을 줄이기 위해 택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나는 이 업무에서 제외되었다. 이것을 회사 및 기존 구성원이 나에게 ‘베푼 것’이라는 것을 그들은 ‘은연중’ 이야기 한다. 이에 더해.

너는 회사에서 떠나는 봉사활동에서 제외되었다.
너는 부서원들이 순차적으로 참여하는 간부와의 산행에서 제외되었다.
너는 출장에서 대부분 제외 된다.
…… 대신 너는 열심히 해야 한다.


이렇게 너를 구해주고 배려해줬으니 너는 이 사실을 감사하게 받아들이고 특별히 열심히 일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나도 공채로 입사를 했는데, 이렇게 특정 업무에서 제외되는 건 싫고 특별히 업무를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이 맡는 것도 싫다. 업무가 똑같이 주어지는 상황에서 못하는 것이라면 하지 않고, 그에 대한 보상을 받지 않으면 되는 것 아니겠는가? (여기서 보상은 다양한 형태로 일어난다. 대표적인 것이 진급과 배치이다.) 하지만 회사 그리고 부서에서는 특정 업무에서 나를 먼저 배려 해주면서 다른 업무에서 내가 더 해주기를 바란다. 비극은 여기서 시작된다.

‘배려’라는 이름의 비극

장애인은 비장애인과 함께 일할 수 있는가? 어쩌면 이런 질문을 던지는 것 자체가 이상하게 느껴진다. 말장난 같지만, 함께 일 할 수 있으나, 함께 일 할 수 없다. 사람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장애인이라고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건 아니다. 따라서 장애인과 비장애인은 함께 일할 수 있다. 하지만 적어도 현재와 같은 한국의 상황에서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은 함께 일할 수 없다. 현재와 같은 한국의 상황이라 함은 무엇을 의미 하는가? 매년 성장해야 하고, 발을 한번 내딛은 분야에서는 일등 해야 하고, 산업들은 모두 다단계와 하도급, 하청으로 연결되어있고, 노동력보다 돈이 우선시되어 사람은 자본이 설립한 회사의 부속품에 불과한 상황. 매년 목표를 항상 전년대비 상향해서 잡고 그 목표를 위해 매진하는 상황. 여기에 재벌 독점적 산업구조로 이윤이 소수에 독점되는 상황까지 더해지면 완벽해진다. 이러한 경제적 흐름이 전 사회를 지배하는 상황에서는 누구든지 주위를 돌아보지 않고 오직 자신만의 생존을 위해 투쟁하게 된다. 이것은 대부분의 ‘기업’ 및 ‘국가조직’에 적용 된다. (대부분 국가조직은 전년도보다 예산을 아껴 쓰거나 동일하게 쓰는 것이 하나의 목표로 설정된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신체적으로 열악한 상황에 있는 장애인들이 비장애인과 같이 일 하기는 사실상 어렵다. 배제되거나 뒤처진다. 일을 하더라도 먼저 몸이 상해 버려 중단해야 하는 경우를 맞이하기 쉽다. 요즘은 비장애인들도 기업에서 일하다 몸이 상하는 일이 비일비재 하니 더 이상 장애인들만의 이야기라고도 할 수 없게 되었다. 또한 최근 비장애인들도 많은 경우 ‘돈을 벌수 있는가?’가 지대한 관심사로 자리 잡게 되었고 그렇지 못할 경우 인생이 심각해지곤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장애인들은 아주 오래전부터 심각했다. 이러한 불안의 끈을 잘라낼 수 있는 방법이 있을지 함께 생각해볼 일이다.
덧붙임

세주 님은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