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인 주>
세상에 너무나 크고 작은 일들이 넘쳐나지요. 그 일들을 보며 우리가 벼려야 할 인권의 가치, 인권이 보장되는 사회 질서와 관계는 무엇인지 생각하는게 필요한 시대입니다. 넘쳐나는 '인권' 속에서 진짜 인권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고 나누기 위해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들이 하나의 주제에 대해 매주 논의하고 글을 쓰기로 했습니다. 인권감수성을 건드리는 소박한 글들이 여러분의 마음에 때로는 촉촉하게, 때로는 날카롭게 다가가기를 기대합니다
우리가 쉽게 잊고 있는 숫자가 있다. 1, 2, 4, 7. 이것은 한반도를 둘러싼 5개국의 전 세계 군사비 지출 순위이다. 미국이 1위, 중국이 2위, 러시아가 4위, 일본이 7위, 그리고 한국이 10위로 모두 전 세계 군사대국이다.(영국 국제전략문제연구소가 2015년 발표한 국방비 지출순위) 이러한 환경에서 우리는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2016년 들어 한반도를 둘러싼 긴장이 다시 심해지고 있다. 1월 북한의 핵실험, 2월 북한의 장거리 비행체 발사를 계기로 박근혜 정부는 개성 공단 운영 중단, 싸드 배치 협의 카드를 꺼내들고 있다. 그리고 국민 단합을 강조하며 비판조차 거부하고 있고, 테러방지법 제정의 구실로 삼고 있다. 정말 박근혜 정부가 바라는 것은 무엇일까?
싸드 배치 협의가 의미하는 것
지난 7일 박근혜 정부는 미국과 싸드(THAAD, 고고도미사일방어 체계) 배치에 대한 공식 협의를 시작하겠다고 발표하였다. 그러나 북한이 만약 가까운 거리의 한국을 공격하려면 저고도로 미사일을 발사하기 때문에 싸드는 무용지물이라는 2013년에 미국 의회 조사국의 발표에서 알 수 있듯이 실효성도 의심된다. 결국 싸드는 고고도 미사일로 공격받을 수 있는 일본과 미국을 방어하는 수단인 동시에 중국을 감시할 수 있는 레이더망의 구축을 의미한다. 게다가 싸드 1포대를 운용하는데 2조에 가깝게 들 뿐만 아니라 이를 위한 군사 부지마저 별도로 마련해야 하는 등 엄청난 비용이 든다. 그럼에도 우리 정부는 미국과 일본을 위한 방어수단이자 이들이 중국과 러시아를 견제하는 도구로 쓰일 수 있는 미국 중심의 미사일 방어 체제에 공간을 내어주고 우리에게 전쟁의 위험을 안기는 싸드 배치를 받아들이겠다고 나섰다.
이는 대외적으로는 한국이 동북아 정세 속에서 갈등하는 중국‧러시아와 미국‧일본 사이에서 중재자이가 균형자의 역할을 하기보다 미‧일 중심의 동맹에 부수적 파트너가 되고 싶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반면 북한 문제를 함께 해결할 당사자로 정부가 늘 거론하던 중국과 러시아를 긴장 완화의 파트너로 끌어들일 대안은 전혀 내놓고 있지 못하다. 결과적으로 박근혜 정부가 한 일이라고는 동북아 갈등 관계를 더욱 조장한 것뿐이다.
개성 공단 운영 중단이 보여준 우리 외교의 한계
간단한 사실부터 생각해보자. 북한이 경제적 여유가 있어서 핵무기를 개발하고 있는 것이 아님은 분명하다. 오랜 기간 미국 주도로 이어진 국제 사회의 경제 제제 속에 북한의 경제적 궁핍은 지속되고 있다. 그럼에도 북한은 핵과 장거리 비행체 개발 기술을 대외적으로 과시하면서 ‘우린 너희 미국과 동등한 수준이니 함부로 위협하지 마라’는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결국 북한이 끌어들이고 싶은 협상 주체는 미국이다. 그런데 2월 10일 박근혜 정부는 갑작스레 개성 공단 운영 중단 카드를 꺼내들었다가 다음날 북한이 도리어 개성공단 폐쇄로 나가자 허둥지둥 대는 모양새를 보였다. 오히려 북한은 미사일 발사체 개발에 20억이 달러가 드는 상황에서 개성 공단이 만들어내는 1억 달러도 안 되는 수입은 필요 없다고 코웃음치고 있다. 그렇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개성공단이 아니라 미국이 그들을 인정하게 하는 것이다. 결국 정부는 북한의 태도 변화를 이끌어내지 못하는 감정적 대응으로 갈등을 더욱 심화시키기만 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북한과의 대화 채널 단절이다. 박근혜 정부는 그동안 ‘통일대박론’을 이야기하며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구축하겠다고 했지만 민간 교류는 철저히 차단해왔다. 이런 상황에서 개성 공단은 실질적으로 북한과의 소통 채널의 주요한 구실을 하였다. 그런데 밑도 끝도 없이 화풀이 하듯 그 채널을 차버리고 어떤 대화시도도 하고 있지 않다. 오히려 박근혜 대통령은 국회연설을 통해 북한 정권의 붕괴가 선의 실현인 것처럼 이야기하며 북한을 자극하고만 있다. 결국 동북아 갈등 해결의 주체로서 기능할 수단마저 우리는 잃어버렸다. 정말 문제를 해결하길 원한다면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대화 창구의 복원이다.
동북아 긴장 관계 완화의 주체로서 우리가 함께 나설 때
박근혜 정부는 감정적인 분풀이로 의심될 정도의 대응만을 보임으로써 동북아 관계를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 이미 우리가 잃었거나 잃을 것으로 예상되는 것은 너무 많다. 중국‧러시아와의 관계 악화, 천문학적인 군사비용, 북한과 직접적으로 소통할 채널 축소, 그리고 침묵의 강요. 실타래가 엉키면 엉킬수록 그것을 다시 되돌리려면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한다. 이제라도 실타래를 풀기 위한 노력들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한‧미‧일 동맹이라고 불리기도 우스운 미국과 일본에 끌려 다니는 외교 관계는 재고되어야 한다. 더 이상 신뢰할 수 없는 박근혜 정부의 대북 정책에 맞서 우리는 지금부터라도 의지를 모아 대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국민 단합을 내세워 비판을 차단하고, 테러방지법까지 밀어붙이는 정부에게 우리의 미래를 맡길 수는 없다.
덧붙임
초코파이 님은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