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성명>
북한주민의 인도적 지원 및 인권증진에 관한 법률안에 반대한다
지난 6월 27일 한나라당 황진하 의원이 대표 발의하고 97명의 국회의원이 서명한 ‘북한주민의 인도적 지원 및 인권증진에 관한 법률안’이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회에 회부되었다. 이 법안은 “식량·의약품 등의 부족과 인권유린으로 인하여 어려움에 처하여 있는 북한주민에 대한 인도적 지원과 이들의 인권보호에 필요한 사항을 규정함으로써 이들의 기본적 생존권을 확보하고 인권의 증진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법안은 이러한 명분이 무색할 정도로 인도적 지원에 대한 과도한 조건을 부과하고 있다. 또한 인권증진을 이유로 통일부 산하에 북한주민지원·인권증진위원회를 설치하는 등 주권국에 대한 일방적 개입을 명시하고 있다. 우리 인권·평화·지원·통일 단체들은 미국의 북한인권법처럼 인권을 앞세운 정치공세일 뿐인 이 법안에 대해 경계의 뜻을 분명히 하지 않을 수 없다.
먼저 법안은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을 활성화”라고 제안 이유를 밝히고 있다. 하지만 구체적 내용을 명시하고 있는 제9조를 살펴보면 법안의 의도가 무엇인지 의아스럽기만 하다. 분배의 투명성 보장 뿐 아니라, 지원 받는 북인민이 제공자를 알 수 있도록 하며, 정치·군사적 용도로 이용되지 않는 것이 보장되어야 하고, 지원규모가 대통령령이 정하는 규모 이상인 경우 국회 동의까지 명시하고 있다. 90년대 후반부터 꾸준한 지원활동으로 식량난을 돕고 있는 비정부기구들은 결코 이러한 조건을 내걸고 지원을 약속하지 않는다. 법안은 또한 이와 같은 ‘조건 있는’ 인도적 지원을 정부 뿐 아니라 민간단체에까지 적용시켜 민간 차원의 지원과 교류에 재를 뿌리려는 저의까지 드러내고 있다. 만성적 식량난을 겪고 있는 북인민을 생각한다면 결과적으로 인도적 지원을 저해하는 이러한 법안은 인권의 이름으로 결코 용인할 수 없다.
또다른 문제는 북의 인권증진을 목적으로 하고 있지만 해당국인 북정부를 협력과 실천의 파트너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법안은 북한주민지원·인권증진위원회와 북한인권대사가 북인권증진을 위한 외국정부·국제기구·국제단체 등과의 협력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지만 북정부를 그 대상에 포함시키지 않았다. 이에 더해 제13조는 통일부 장관이 북의 인권실태를 파악할 시 인권탄압 관련자 명단을 포함해 정확하고 객관적인 정보를 수집·분석하고 체계화하도록 하고 있다. 이러한 일방적 개입이 인권증진에 실효성이 있는지도 의문일 뿐만 아니라 남과 북이 한반도 평화와 공존의 실체적 동반자가 되기 위한 발걸음에도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 폭력적 발상이다. 상호 주권 인정 속에 평화로운 통일을 모색하고 있는 지금, 이 같은 법안은 평화를 방훼할 뿐이며 인권증진에도 실효성이 없음을 법안에 서명한 의원들은 똑똑히 알아야 할 것이다.
인권 증진을 목적으로 한다면 상호 이해와 협력에 기반해야 한다. 일방적인 법령의 제정은 북의 반발과 더불어 북을 고립시키는 폭력적인 개입이라는 것이 이미 미국의 북한인권법에서 밝혀졌다. 진정으로 북의 인권증진을 원한다면, 북의 주권을 인정하며 인민들의 자결권을 보장해야 한다. 미국이 주도하고 있는 이와 같은 개입은 결국 해당국의 인민들을 대상화시키는 오류를 범해 정당성과 실효성을 잃어버리고 있다. 인권의 증진은 상호의 의무이며 이는 전 세계 모든 국가에게 예외없이 적용되어야 한다. 따라서 북인권의 증진 역시 남북이 함께 협력하여 상호증진하지 않는다면 ‘인권 증진’은 허울좋은 수사에 불과할 것이다. 북이 겪고 있는 식량난의 위협은 한반도의 반평화 상황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 이에 대한 좋은 예가 될 수 있다. 전쟁 위협과 오랜 경제재제 속에서 북의 식량난은 더욱 심화되고 있다. 남북이 평화 체제를 공고히 하고 전쟁위협을 막아낼 때만 북의 식량난도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남북이 상호 인권증진을 위해 노력해야 함은 경제협력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북의 싼 노동력과 남의 자본과 기술을 결합해 진행되고 있는 개성공단에서도 인권의 상호불가분성을 찾아볼 수 있다. 우리는 과거 개발독재시절 경제 개발이라는 황금의 탑을 쌓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동자들이 기본권을 포기한 채 신음해야 했는지 잘 알고 있다. 이러한 부끄러운 인권의 역사가 남북 경제협력이라는 명분 속에서 되풀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남과 북이 인권의 원칙을 상호 존중하고 그것을 지키려는 약속이 있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인권문제를 더 이상 정치적 공세로 사용하지 말 것을 황진하 의원을 비롯한 97명의 법안 발의자들에게 엄중히 경고한다. 이미 미국의 북한인권법이 명분도 실효성도 없고 북을 자극하고 압박하기만 할 뿐이라는 것은 국제적으로도 인지된 사실이다. 이번에 제출된 이 법안 역시 북 정부는 물론이고 인민들까지 대상화시키며, 인도적 지원에 족쇄를 채우고 , 남과 북의 평화와 공존을 가로막는 악법이 될 것임에 분명하다. 남과 북은 역사·지리적으로 공동체의 성격을 띄고 있고 인권증진 역시 함께 협력하지 않으면 안될 상호 불가분성을 강하게 지니고 있다. 우리 인권·평화·지원·통일 단체들은 인권의 원칙에 어긋나는 이와 같은 악법의 제정을 강하게 규탄하며 법안에 서명한 97명의 의원들에게 지금 당장 법안을 취소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
2005년 7월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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