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9월 30일 오전 10시 광화문 광장에서, 국정원 중심 공안정국을 공개적으로 비판하는 인권단체 공동기자회견을 열었습니다. 이날 기자회견문에는 △국민 앞에 비밀기관 필요 없다 국정원 국내 수사권 폐지하라 △피의자들에 대한 인권침해 중단하라 △양심과 사상의 자유, 저항의 권리가 더욱 확대되어야 한다 △공포와 혐오행동이 중단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담겼습니다.
비밀정보기관이 주도하는 공포와 혐오의 정치를 중단하라
사상과 양심의 자유는 더 확대되어야 한다
국정원 발 뉴스들이 정국을 장악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 들어 주요한 소식들은 모두 국정원에서 출발하고 있다. 대통령 선거의 불법 개입과 NLL논란, 소위 ‘내란음모’사건, 심지어 채동욱 검찰총장 사의와 관련된 일련의 사건에서 조차 강한 의구심이 제기되고 있다. 모두 특정 개인, 혹은 집단에 대한 ‘낙인찍기’를 통하여 사회 전체에 공포와 혐오를 확산시키는 데 일조한 사건들이었다. 여기 모인 우리는 국민 앞에 드러난 비밀정보기관의 공안정치가 한국사회 민주주의와 인권을 뿌리째 흔들고 있음을 우려한다. 국회와 정당, 심지어 검찰까지 현재 국정원을 견제할 세력이란 도무지 보이지가 않는다. 이것은 정치의 문제인가? 정치 문제이자 인권의 문제이다. 국가정보기관은 국민 개개인의 자유를 통제하여 권력을 확보하고 정치를 장악한다. 국민의 ‘인권 침해’를 담보하는 방식으로 정치에 개입하려는 국가 기관을 더는 두고 볼 수 없다. 이것이 인권 단체들이 ‘정치적으로 보이는’ 국정원의 일련의 행태에 분노하고 나선 이유다.
국민 앞에 비밀기관 필요 없다 국정원 국내 수사권 폐지하라
소위 내란음모 사건에서 국정원이 무차별적인 불법 도감청을 장기간 지속적으로 진행했음이 드러났다. 다수 시민이 이용하는 공중전화를 1년 넘게 감청했고 휴대전화를 감청했다는 언론 보도 내용은 충격적이다. 국정감사에 의하면 2005년 하반기부터 휴대전화 감청 건수는 0로 집계 되어왔다. 이런 마당에 국정원에 의한 지속적인 감청이 언론에 보도되고 있는 것을 볼 때 비밀정보기관에 의한 국민 감시는 비밀스럽고 은밀하게, 어떻게 이뤄지는지 조차 알 수 없이 광범위하게 진행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국회조차 알 수 없이, 국민을 대상으로 한 사찰과 감시행위가 국정원에 의해 이뤄지고 있다. 국민 앞에 비밀기관 필요 없다.
피의자들에 대한 인권침해 중단하라
소위 ‘내란음모’사건으로 인해 확인되지 않은 피의사실이 언론에 유포되고, 형이 확정될 때까지 무죄 추정 받을 권리는 무너졌다. 국정원에서 제공했음이 분명한 사실이 언론에 공개됨으로 사건 당사자들은 법정에 서기 전 여론재판의 희생양이 되었다. 가족들은 ‘간첩’가족이라는 혐오행동에 노출되었고 직장에서 쫓겨났다. 피의자들은 변호인 접견권이 침해되고 가족들의 접견이 제한되는 인권침해를 겪고 있다. 심지어 내란음모의 확실한 증거물이라는 ‘녹취록’조차 피의자들이 조사받는 과정에서 “언론에서 제공한 녹취록”이라 불리고 있다. 충격적 사건의 소문은 요란했지만 결론적으로 증거가 사라지고 있다. 소위 ‘내란음모’사건은 법정에서 다뤄질 일이지 여론의 재판위에 설 문제가 아니다. 그마저도 ‘내란음모’란 죄명이 법정에 마지막으로 등장한 것은 30년 전이란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양심과 사상의 자유, 저항의 권리가 더욱 확대되어야 한다.
분단체제와 빈곤의 양극화라는 양 날개는 한국사회를 살고 있는 시민들에게 천형의 무게다. 사회를 비판하는 모든 이들에게는 ‘종북’이라는 빨간 딱지가 붙는다. 해고와 빈곤으로 집을 잃고 직장을 빼앗긴 이들이 권리를 찾고 나서도 ‘종북’이라는 빨간 딱지가 붙는다. 자신의 생각과 존재를 드러내기 위한 사상과 생각, 양심의 자유는 위협받는다. 저항의 행동은 불순하게 치부된다. 이러한 사회에서는 평화와 통일을 위해 일할 수 없다. 이러한 사회에서는 자기 권리를 찾기 위해 권력과 자본에 저항할 수 없다. “책을 태우는 자는 인간을 태울 수 있다.”는 시인 하이네의 말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는 사람의 생각과 사상과 양심의 자유를 ‘종북’이라는 말로 가두는 사회를 우려한다. (소위 ‘종북’에 대한 혐오에는 두 가지 문제가 있다. 첫째, 북한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음으로써 그 사회에 대한 이해를 원천봉쇄한다는 점이다. 북한 인권을 이야기한다면 북한의 체제에 대해서도 이야기할 수 있다. 차라리 ‘북한’이 어떤 사회인지, ‘종북’이 무엇인지 터놓고 이야기한다면 ‘무작정 혐오’보다는 질적으로 나은 비판이 가능할 것이다. 둘째, 종북에 대한 혐오가 너무나 거대해서 모든 불편한 사상이 종북 담론으로 수렴된다는 점이다. 점점 더 많은 사람이 ‘종북’의 이름으로 차별받고 배제되며 소외될 것이다. 체제를 전복하겠다는 사상이 학문으로 자유롭게 연구되는 사회에서 유독 북한과 주체사상에 대한 금기가 사회를 혼돈에 빠뜨리고 있다. ‘종북’의 실질적 위험성보다 ‘종북’을 이용하여 사상과 저항의 권리를 원천 봉쇄하려는 사회가 더욱 위험하다. 지금 우리 사회가 그렇다. ‘종북’이라는 말이 모든 담론을 막고 마녀사냥의 칼이 되고 있다. 사람의 생각을 가둘 때 사회는 거대한 감옥이 됨을 잊어서는 안 된다. 저항을 꿈꾸고 말할 자유를 보장하는 사회가 민주주의 사회이다.
공포와 혐오행동이 중단되어야 한다.
매카시 시대는 공포스러웠다. 확인되지 않은 공산주의자의 유령이 미국사회를 지배했다. 지금 우리 사회가 그렇다. 의견이 다른 친구를 국정원에 신고하고, 대학 강단에서 강사도 신고당했다. 소위 ‘내란음모’ 사건의 가족들은 간첩가족이라는 혐오행동에 노출되고 있다. 매카시 시대에 동성애자들은 소위 ‘연분홍 공포’라 불리는 혐오에 인권침해를 당하게 된다. “동성애자들은 자신의 정체성이 드러날 것이 두려워 공산주의자들에게 쉽게 포섭된다.”는 논리로 수많은 동성애자들이 직장을 잃고 폭력을 당하는 것이 합리화되었다. 말도 안 되는 일들이 매카시 시대에는 가능했다. 다른 생각, 다른 존재, 이성과 합리의 소통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우리는 지금 우리 사회를 휩쓰는 마녀사냥이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폭력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경고한다. 공포와 혐오행동은 한묶음이다. 그래서 지금 당장 비밀정보기관의 음모를 저지하지 않으면, 우리 사회에 민주주의와 인권은 사라질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금 요구한다. 지금 당장 비밀정보기관이 주도하는 공포와 혐오의 정치를 중단하라. 양심과 사상의 자유는 더 확대되어야 한다.
2013년 9월 30일
경계를 넘어,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다산인권센터, 동성애자인권연대, 문화연대,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 민족민주열사희생자추모(기념)단체연대회의,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민주주의법학연구회, 불교인권위원회, 빈곤과차별에저항하는인권운동연대, 사회진보연대, 새사회연대, 서울인권영화제, 울산인권운동연대, 원불교인권위원회, 인권교육센터‘들’, 인권교육 온다(준), 인권중심사람, 인권과평화를위한국제민주연대, 인권연구소창, 인권운동사랑방, 인천인권영화제,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장애물없는생활환경시민연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전북평화와인권연대, 제주평화인권센터, 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 진보네트워크센터, 천주교인권위원회,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인권단체연석회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