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단지 생각이 달라서일까
인권영화제 슬로건 ‘당신이 다른 생각을 가졌기 때문이다’라는 문구를 보면서 우와~ 카피 멋있는데, 그래 난 좀 다르기 때문이 이렇게 사는 거지... 하는 생각에, 뭔가 내 삶에 약간의 위안이 되는 카피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석연치 않음이 내 속에 남아 있다. 난 단지 다른 사람들과 생각이 다른 것뿐일까? 생각이 달라도 다 비슷하게 살아가는데, 난 정말 비슷하게도 살아가지도 행동하지도 않는다는 생각이 들더군.
99명이 찬성하는 일에 한명의 반대자가 되어 버렸던 경험. 대학교 시절 첫 가출을 감행 했던 일, 딸랑 8만원 들고 서울에 와서 다양한 주거 빈곤의 현실 속에 헤엄치다가 현재 쪽방에서 살아가고 있는 상황, 사회 부적응에 추가로 사회운동에서도 잘 적응하지 못하고 뭔가 불편해하는 일들까지. 이런 나를 단지 다른 사람과 생각이 달라서라고 말하기에는 조금 설명이 부족한 것 같다. 오히려 지금까지 나를 지탱하게 하는 것은 내 속에 있는 첨예하고 날카로운 ‘각’들, 각진 맘들 때문이 아닐까. 다른 말로는 삐딱한 거, 예민한 거.
근데 ‘각’진 맘은 나쁜 걸까? 그럼 ‘각’진 게 많은 나는 나쁜 사람인 건가? 쳇, 나를 ‘각’지게 만드는 건 착한 거고? (에헴... 또 ‘각’져서 죄송) 하지만 난 정말 다른 사람과 생각만 다른 게 아니라 정말 다르게 행동하고 싶고 어떤 때는 적대적으로 행동하고 싶어지는 내 안의 예민한 ‘각’들을 속일 수 없는걸. 나이가 들면 인생의 경험으로 이 각들도 깎여서 둥글둥글해지고 남들도 불편하지 않은 사람이 된다고 하는데, 그게 사람이 되어 가는 거라고도 하는데. 왜 나의 각은 아직도 뾰족한 걸까? 쩝. (솔직히 난 정말 각진 맘들 때문에 욕도 많이 듣고 실수도 제법 한다. 혹시 나의 각진 맘 때문에 힘들어하는 사랑방 상근자가 있다면 이 자리를 빌어 사과한다. 꾸벅. 물론 또 다시 꼬장(?)부릴지도...;;)
썩지 않고 흐르는 물처럼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이 ‘각’들을 많은 사람들이 싫어하고 욕할지라도 내가 끝내 지키고 싶은 맘이 드는 것은 이것이 나의 존재를 내 스스로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증거이기 때문이다. ‘나, 이런 사람이야’ 라는 방식의 ‘가오’를 잡겠다는 뜻이 아니라, 내 속에 있는 각들을 깎여 나가지 않게 함으로써 내가 혹시라도 내 삶을 스스로 부정할 수 있을 순간들에 타협하지 않겠다는 발버둥의 표현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회운동 초기에 사람들과 술자리에서 나눈 얘기가 생각난다. 처음에는 누구나가 뜨겁게 운동을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어느새 차가워지고 기계적이 되면서 언젠가는 운동에 오히려 방해되는 사람이 되기 쉽다는 얘기. 물이 고이면 금세 썩어 버리기 때문에 물은 계속 흘러야 하듯이, 우리도 고이지 말고 끊임없이 역동적으로 변하며 살아가자는 얘기. 이런 얘기는 식상한 얘기일 수도 있지만, 원래 평범한 얘기들이 오히려 내 속의 파열음이 크듯, 이런 생각들이 내 맘을 오랫동안 지키게 하고 여전히 나의 각들을 뾰족하게 만드는 것 같다.
만국의 ‘각’진 이여! 더욱 ‘각’자 날카로워져라!
그러니 나는 이 ‘각’들을 갈아 없앨 사포가 필요 없다. 그리고 내가 여기에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인권운동사랑방에도 혹 자신이 각졌다는 이유로 반성하거나 힘들어하는 이가 있다면, 또는 그 사람을 쉽게 비난하는 이가 있다면, 혹시 이 삐딱함은 ‘내가 살아있다’는 증거가 아닐까 혹은 (오버라 할지 모르지만) 인권감수성과 연결된 어떤 것이 아닐까. 그래서 사랑방에야말로 이렇게 각진 사람들이 꼭 필요하다고 말하고 싶어서이기도 하다.
어쨌든 이렇게 ‘각’진 결과로 현재 실업급여를 받으며 ‘막바지 청년’ 실업자로 근근이 생계를 꾸려가고 있는 나지만, 그래서 ‘아직도 놀아?’ 하는 물음에 급 움찔할 때도 있지만, 난 나의 이런 각진 맘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더욱더 날카로워지려고 노력할 생각이다.
활동가의 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