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의 외교 행보가 연일 언론을 장식하고 있다. 대통령의 외신 인터뷰는 숱한 국내외 논란을 불러왔고, 급기야 중국과 러시아의 강력한 항의까지 이어졌다. 정부 출범 1년 사이에, 한미 정상회담과 한일 정상회담을 각각 2차례씩 진행하면서 한미일 안보협력에 모든 것을 쏟아붓고 있다. 남북관계는 전쟁 말고는 더 나빠질 것도 없을 정도로 악화됐다. “확전을 각오하고 무인기를 침투시키라”거나 “평화를 얻기 위해 압도적으로 우월한 전쟁 준비를 해야”한다는 발언을 대통령이 직접 쏟아냈다. 정부는 지난 한미정상회담 이후 발표한 한미 ‘핵협의그룹’을 미국과의 사실상 핵공유라며 최대 안보성과임을 강조하고 있다.
한반도 평화와 비핵화, 일본의 식민지배 사과와 배상, 최대 교역국 중국과의 호혜적인 외교관계 지향이라는 지난 30년간 대외정책의 원칙과도 같은 방향들이 윤석열 정부의 등장과 함께 순식간에 무너지고 있다. 하지만 이는 착시효과다. 윤석열 정부는 나름 진심이지만, 1년 만에 동아시아 국제질서를 바꿀 만큼 막강하거나 유능하진 않다. 국제질서의 변화는 윤석열 정부 이전에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문제는 그 변화가 ‘평화와 호혜’와는 거리가 멀고, 한반도를 ‘전쟁과 적대’라는 국제 안보위기의 한복판으로 밀어넣는다는 것이다.
제국주의적 적대 구조의 산물, 우크라이나 전쟁
2022년 2월부터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 전쟁은 두 가지 점에서 지난 수십 년 동안 벌어진 전쟁들과는 다르다. 내전이 아닌 주권 국가를 침략한 국가 간 전쟁, 강대국 러시아가 자국 경계에서 벌이는 전쟁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이는 기존 국제질서의 근본적 변화를 반영하는 것인데, 우크라이나 전쟁이 이러한 변화를 더욱 가속화하고 있다. 기존 질서는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겪으며 탄생한 유엔체제이며 이는 냉전-탈냉전을 경과하면서도 작동해온 지구적 국제질서였다. 즉 2차 대전 전승국인 미국, 소련(러시아), 영국, 프랑스, 중국이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으로서 ‘국제 평화와 안보’에 대한 국제적 합의와 결정을 해 온 것이다. 강대국들의 이해가 투영된 수많은 지역적 분쟁들이 남반구에서 빈발했지만, 그들 사이에서는 서로의 세력권을 인정하면서 국제질서를 ‘관리’해왔던 것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이러한 국제질서가 더이상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미국이 주도하는 나토의 동진과 과거 러시아 세력권의 확보라는 제국주의적 적대의 산물이 우크라이나 전쟁이다.
그런데 이러한 국제질서 변화의 핵심 축은 미국과 러시아 관계가 아니라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이다. 탈냉전 이후 지구적 질서는 신자유주의를 통해 구성되었다. 미국은 중국을 핵심 파트너로 신자유주의적 국제 분업 체계를 작동시켰다. 이 시스템 속에서 미국은 금융화를 통해 지구적 부가가치를 흡수하고 부채에 기반한 과잉소비를 지속했다. 중국은 세계의 공장으로 제조업 거점이 되었고, 숙련된 노동력과 산업생산설비를 갖추고 막대한 무역흑자를 축적한다. 하지만 신자유주의는 2008년 금융위기를 경과하며 기존 시스템을 작동시킬 힘을 잃게 된다. 그 이후 오바마 정부는 중국을 위협적인 ‘잠재적 경쟁자’로 규정하고 ‘아시아 회귀 전략’을 선언한다. 이는 트럼프 정부를 거치면서 미국이 신자유주의적 지구화라는 국제질서를 관리하기보다 중국을 봉쇄하며 자국의 이익을 노골적으로 추구하는 형태로 드러났다.
바이든 정부는 중국을 ‘유일한 경쟁자’로 규정하고 대중국 봉쇄를 목적으로 국제질서를 전면 재편하고 있다. 2021년 중국 견제를 위해 미국, 영국, 호주의 군사기술동맹인 오커스(AUKUS)를 출범시키고, 인도, 일본, 호주, 미국으로 구성된 4자 안보협의체인 쿼드(Quad)의 위상을 격상시켰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나토의 전략목표에 ‘중국의 위협’을 적시하면서 나토를 러시아와 중국에 맞서는 군사동맹으로 재정립했다. 동시에 자국의 첨단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 반도체, 배터리를 중심으로 중국을 배제한 국제 공급망으로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 ‘칩4동맹’(미국, 대만, 일본, 한국)을 조직했다. 이에 중국은 ‘사회주의 현대화 강국 건설’을 표방하며 대응한다. 특히 2049년까지 대만과 통일한다는 일정표를 드러내며, 평화통일을 추구하되 무력 사용을 포기하지는 않을 것임을 밝혔다. 미국의 대중국 봉쇄 전략과 중국의 핵심국익인 ‘하나의 중국’ 원칙이 정면 충돌하는 양상이 되고 있는 것이다.
한반도를 둘러싼 동아시아 질서, 2019년과 2023년의 차이
2017년까지 대륙간탄도미사일, 6차 핵실험을 이어가며 핵무장을 완성한 북한은 2018년부터 미국, 한국과 본격적인 협상에 뛰어들었다. 북한의 목표는 평화협정 체결과 비핵화를 통한 국제사회 복귀였다. 미국의 안보위협에서 벗어나고 경제제재 해제를 통한 경제성장을, 핵보유국으로서 비핵화 협상을 통해 이뤄내겠다는 것이었다.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관심사는 핵무기 비확산이었고 이는 중국과 러시아도 마찬가지였다. 이러한 기본 구도는 ‘한반도 평화와 비핵화’로 표현되었고 한국의 역대 정권들은 서로 강조점이 달랐을지라도 이 틀 내에서 대북정책을 펼쳤다.
2018년~19년, 남북정상회담과 사상 초유의 북미정상회담이 각각 3차례, 2차례 열리고 남북미 정상의 판문점 회동까지 있었지만, 협상은 실패했다. 북미대화는 2019년 10월을 끝으로 열리지 않고 있다. 지난 30년 동안 미국과의 관계 정상화를 목표로 했던 북한에게 이제 남은 것은 30년 동안 개발한 핵무기이다. 2022년부터 북한은 거의 모든 종류의 탄도미사일 발사시험을 이어가고 있다. 평화협정을 통한 국제사회 복귀가 불가능해진 북한에게 이제 안보는 핵무기를 통해서만 가능한게 된 것이다. 북한은 핵을 ‘국체’로 선언한 ‘핵정책법령’을 발표하고 ‘절대로 먼저 비핵화는 없다’고 밝혔다.
그런데 북한의 핵무기 개발에 한목소리로 반대했던 국제사회의 기류가 바뀌고 있다. 앞서 살펴본 국제질서의 재편이 한반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2017년까지도 중국과 러시아는 북한의 핵실험이나 미사일 발사를 규탄하면서 유엔 대북제재에 동참했다. 그러나 2020년 이후에는 북한의 거듭된 안보리 결의 위반에도 추가 제재에 반대하면서 미국의 책임을 거론하고 있다. 이에 화답하듯 북한은 대만 문제에 있어 중국을 강력 지지하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도 옹호하고 있다. ‘북중러 vs 한미일’이라는 구도가 한반도 평화협상의 실패와 국제질서 재편과 맞물리면서 현실이 되고 있는 것이다.
바로 이런 달라진 구도 위에서 윤석열 정권이 출범했다. 동해상에서 한미일 군사훈련이 처음 이루어졌고 한미연합군사훈련은 역대 최장기간 동안 사단급 규모로 진행되었다. 한일군사비밀정보협정이 재개되고,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와 칩4동맹에 한국은 적극 참여했다. 북핵에 맞서야 한다며 한국의 핵무장, 미국의 전술핵 배치 요구가 정부여당에서 비등했고, 윤석열 정부는 ‘한미 핵협의그룹’을 성과로 내세웠다. 문재인 정부가 말과 행동의 불일치로 한반도 평화협상에 실패했다면, 윤석열 정부는 전쟁불사를 몸소 실천하면서 그 어느 때보다 한반도 전쟁위기를 극대화하고 있다.
반전평화, 적대와 폭력의 구조에 맞서야
‘한반도 전쟁위기’는 우리에겐 너무 익숙한 ‘말’이다. 하지만 전쟁을 실제 무력충돌과 인명살상이라는 좁은 의미를 넘어, 군사적 적대와 전쟁수행을 위한 사회시스템의 작동으로 넓혀본다면 정전협정 이후 지난 70년 동안 우리는 사실상 ‘전쟁 상황’에서 살아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바로 그 넓은 전쟁 스펙트럼에서 2023년은 어디쯤 있을까? 지난 30년 동안 한반도 위기를 규정했던 구조가 근본적으로 변화했다는 점을 염두에 둔다면, 적어도 무력충돌을 향한 중요한 문턱을 넘은 상태인 것은 분명하다. 이제 북한은 비핵화를 통한 미국과의 평화협상을 염두에 두지 않으며, 국제사회는 핵 비확산이 아닌 제국주의적 적대와 경쟁에 돌입하고 있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적대 진영으로 대립하면서 자신들의 이데올로기를 정당화하고 강화하는 것이다. 미국은 ‘인권, 자유, 민주주의’를 향한 가치동맹을 표방하며 독재 권위주의 세력인 중국과 러시아, 북한에 맞설 것을 선동한다. 윤석열 정권은 바로 그 열렬한 가치 동맹을 자처하고 있다. 다른 한쪽에선 중국, 러시아, 북한을 미국의 제국주의적 패권에 맞선 정당한 세력인 것처럼 호도한다. 더구나 적대 구조를 실제 전쟁으로 작동시키는 이러한 이데올로기를 사회운동 일각에서도 반복하고 있다. 러시아의 침략행위, 북한의 핵무기 개발, 중국의 무력시위를 묵인하고 넘어가서는 더 큰 대가를 치르게 된다는 것이다. 왜 제국주의적 적대와 전쟁으로 치닫는 지배세력의 폭력 구조와 세력관계 자체를 문제 삼지 않고, 특정 세력의 ‘무력에 의한 현상변경’만을 문제 삼는 것일까? 이는 러시아, 중국, 북한의 행위를 묵인하는 것만큼이나 현재의 적대 구조를 강화하고 재생산할 뿐이다.
한반도 분단과 한국 전쟁도, 우크라이나 전쟁처럼 잔인한 국제질서의 산물이었다. 우리는 언제나 북한의 도발이 한반도 전쟁위험을 높인다고 생각하지만, 지금 한반도는 미국과 중국의 패권이 격돌하는 최전선 중 하나이다. 김정은과 윤석열을 넘어, 미국과 중국의 제국주의적 적대와 폭력 구조를 비판하고 ‘평화와 호혜’에 기반한 국제질서를 강력히 요구해야 한다. 누군가에겐 힘없는 양비론일 수 있다. 하지만 제국주의적 적대와 폭력 구조를 비판하고 이를 넘어서자는 주장은 이러한 적대 구조를 문제 삼지 않는 이들에게 양비론일 뿐이다. 우리에게 지금 가장 긴요한 것은 바로 이를 강력한 양비론으로 만들어내기 위한 실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