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집어 들었던 대파, 양파, 배추와 같은 채소부터 배, 오렌지, 바나나와 같은 과일까지 수많은 농산물의 가격이 급등했다. 특히 사과는 전년에 비해 70% 이상 가격이 오르며 뉴스를 도배했다. 가격 상승의 근본 원인으로 지목되는 건 기후위기다. 이상기온, 병충해 등으로 생산량이 줄었기 때문이다. 정부는 농산물 가격을 잡겠다며 수입을 확대하는 한편, 사과처럼 수입이 막혀있는 경우 다른 품목의 수입을 늘려 대응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기후변화 등이 심할 때 생산자 보호를 위해 지금 같은 정책을 계속할지, 수입을 통해 근본적으로 해결할지" 고민이 필요하다는 한국은행 총재의 말은 농산물 수입 확대 논쟁에 불을 붙였다. 과연 수입은 물가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있을까? 나아가 물가만이 문제의 전부일까?
수입으로 먹거리 공급을 해소하려는 정부
정부의 농산물 수입 확대 정책은 단지 물가를 잡기 위한 일시적인 대응에 그치지 않는다. 자유무역 활성화를 목표로 하는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 협정(GATT)' 체제 아래, 1990년대 우루과이라운드(UR) 협상 타결을 계기로 쌀과 병충해 등에 민감한 품목을 제외한 거의 모든 농산물에 대한 수입제한이 철폐됐다. 정부에 의한 관세 감축률이 해를 거듭할수록 올라가며 수입량은 늘어났고, 수입품목과 수입국 또한 다양해지고 있다.
먹거리 공급을 수입으로 해결하려는 정부 정책은 결국 국내 농업을 먹거리 공급의 역할에서 분리되도록 만든다. 한국의 곡물자급률(쌀, 밀, 옥수수, 콩 등)은 20%를 밑도는데, 이조차도 85~95%인 쌀에 기댄 수치이며 나머지는 한 자릿수에 불과하다. 4대 양념채소(건고추, 대파, 마늘, 양파)의 자급률은 계속해서 떨어져왔고, 그중에서도 건고추는 2002년 106%였던 자급률이 올해 40%까지 떨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여기에 수입이 어려운 신선과일도 2000년대 80% 후반의 자급률을 유지하다 2016년 이후 70% 초반까지 하락한 상황이다.
품목을 가리지 않고 먹거리 자급률이 낮아지는 상황에서 정부는 보다 적극적으로 해외 유통망 확보 대책을 강구하고 있다. 국가 간 비축물량을 사전에 비축하여 비상시 활용하는 ‘아세안+3 비상 쌀 비축제(APTERR)’의 범위를 밀 등 다른 곡물까지 확대하는 방향을 추진하거나, 민간기업이 해외에서 곡물 유통시설을 운영하는 걸 적극적으로 장려하는 식으로 말이다. 여기에 가입을 추진 중인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과 같은 '메가 자유무역협정(FTA)'은 지금보다 더 많은 국가로부터 농산물 수입을 추진할 가능성과도 연결된다.
농업과 먹거리의 분리 : 생산자도 소비자도 실패하는 이유
정부는 수입 확대에서 그치지 않고 디지털육종, 스마트팜, 그리고 이에 응용되는 바이오 기술 등 이윤을 중심으로 하는 사업에 힘을 실어주며 농업의 체질 전환을 강요하고 있다. 한국 사회라는 공동체에 돈이 안되는 먹거리를 공급하는 농민은 살아남지 못하고 오직 이윤을 내는 농민에게만 자리를 내어주는 상황이 펼쳐진 것이다. 농업과 먹거리가 분리되도록 만드는 정책은 결국 생산의 안정성도 농산물의 품질도 보장하기 힘든 구조를 만들어왔다. 2004년 한·칠레 FTA로 칠레산 포도가 수입되기 시작했다. 수많은 포도 농가는 값싼 수입 포도와의 출혈경쟁을 이겨내지 못하고 포도 농사를 포기했고, 생산량은 반토막이 났다. 이에 기존 포도 품종의 3~4배 가격으로 팔 수 있는 '고부가가치' 상품인 샤인머스캣에 남은 포도 농가들이 몰려들었다. 초기에 이윤을 내던 것에 비해 2020년 이후부터는 품종의 희귀성이 거의 사라지며 샤인머스캣도 국내에서 단독유통채널을 확보하기 어려워졌다. 농민들은 이미 수입포도가 전반적인 가격을 끌어내린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품질 하락을 감수하고서라도 더 많이 더 빨리 더 자주 생산해서 내다 파는 '생존법'을 택하게 된다. 샤인머스캣 생산으로 포도 생산의 강국이 되었다고 경제지에서 호들갑을 떨지만 과잉생산이 이어지며 품질도 가격도 유지하기 어려워진 농민이 ‘울며 겨자 먹기’로 농사를 이어가는 현실을 토로하는 이유다. 포도만이 아니다. 블루베리, 아로니아 등 정부가 고부가가치 농산물이라며 생산을 권유하는 품목에 뛰어들었지만 수입품과의 경쟁, 과잉생산 등으로 마찬가지 어려움을 벗어나지 못했다. 돈되는 상품을 생산하라고 하지만 수입을 동시에 확대하는 정부 정책 앞에서 농민도 소비자도 반복되는 악순환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한다.
그런데 이번에도 정부는 똑같은 장면을 되풀이하겠다고 말하고 있다. 지난 4월 「과수산업 경쟁력 제고 대책」를 발표하는 자리에서 농식품부는 사과의 수입을 검토 중이라 밝히며, 국내 사과에 비해 가격 경쟁력이 있는 수입 사과가 들어올 경우를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2024 사과 안심 프로젝트>는 사람들이 기후위기로 생산량이 감소하는 국내 사과를 부담 없이 소비할 수 있도록 하는 게 목표라며 운을 떼었지만, 결국엔 기존 사과 공급을 책임지던 과수 농사에 대한 대책 대신 시장에 잘 팔릴 신품종 개발과 관련 특화단지 조성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수입을 확대하고 ‘상품성’이 있는 품종만 적극적으로 재배하겠다는 정부의 계획은 부담 없는 가격에 질 좋은 먹거리를 공급하는 것이 아니라, 무리한 경쟁 속에서 품질은 하락하고 농민은 쓰러지는 현실을 또다시 마주하도록 강요하는 것이다.
필요가 아닌 이윤을 위해, 지구를 한계로 밀어붙이는 글로벌 농업 체계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정부는 국내 농사 작황의 어려움의 원인으로 기후위기를 지목하며 수입 확대를 말하지만, 수입 중심의 먹거리 공급 체계 자체가 기후위기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먹거리를 필요에 따라서가 아니라 이윤을 중심으로 생산하기 때문이다. 해외 농산물을 국내 농산물보다 값싸게 공급하기 위해서는 대규모 농업을 통해 자연을 착취하는 방식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특히 탄소흡수원인 토지는 막대한 양의 화학비료·농약의 투입, 과한 경운으로 오히려 탄소를 배출하는 장소가 된다. 팜유 플랜테이션의 경우 열대우림을 밀어내는 전환 과정에서만 1ha당 174t의 탄소가 배출되고, 나아가 농사 과정에서 화학물질과 오폐수를 배출하며 인근 지역 주민의 생존을 위협하는 문제가 알려진 지는 오래되었다.
이윤 중심의 자본주의적 농업을 주도하는 초국적 기업은 단순히 농업 생산물에 대한 통제력만이 아니라 농업의 모든 과정을 통제하며 문제를 심화시키고 있다. 곡물 메이저라 불리는 아처-대니얼스-미들랜드, 벙기, 카길, 루이 드뤠피스와 같은 곡물 유통 기업들은 이미 곡물의 80%가량을 점유하며 유통을 통제해왔고, 이제는 비료와 농약을 생산하는 화학 분야, 종자 분야로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생산의 기초인 종자가 먹거리로 만들어지기까지, 생산-유통-소비 전 과정을 수직계열화하며 전 세계 농민들의 권리를 통째로 빼앗는 것이다. 또한 농산물, 종자, 농 투입재 등 농업과 관련한 모든 것들이 국경을 넘나드는 과정은 그 자체로 기후위기를 가속한다. 농산물 포장 및 원거리 운송에는 농산물 생산에 맞먹는 양의 에너지가 소모된다. 이윤 중심의 글로벌 농업 체계가 농업도 기후도 망쳐온 과정이면서 동시에 국내 농업이 통제력을 잃어온 과정이다.
생태적이고 정의로운 먹거리를 실현할 농업 대책이 필요하다
기후위기 시대의 농업 문제는 정부가 이야기하는 농산물 수입 확대로는 해결할 수 없다. 정부의 과제는 어떻게 하면 국내 농업이 기후위기를 심화시키는 글로벌 농업 체계에서 벗어나 상품이 아닌 먹거리를 생산-공급하는 역할을 자임할 수 있을지 그 방법을 찾는 데 있다. 이때 먹거리를 기본권으로 접근하는 관점이 필요하다. 농산물을 생산하는 과정은 그저 이윤을 남기기 위한 상품 생산의 과정이 아니라 인간 생존에 필수적인 먹거리 생산의 과정이다. 이러한 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해 자급, 즉 영토 내에서 스스로 생산-유통-소비할 수 있기 위한 지원 정책이 필요하다. 이는 먹거리와 농업에 관한 정책을 자국 사회가 스스로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는 식량 주권에 입각한 관점이자 농민 권리의 선언이다. 이런 관점 없이 농산물 수입 확대를 언급하며 식량 안보를 지키겠다는 구상은 글로벌 기업들에게 먹거리 기본권을 내다바치는 것에 불과하다.
더불어 농사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기후가 매년 예측불가능하게 변화하는 상황에서, 수입 확대 재고는 물론이고 농업정책의 방향도 함께 달라져야 한다. 무엇을 재배하고 어떻게 수확하며 얼마에 팔지를 그저 농사짓는 개인과 시장 상인들이 판단하고 스스로 책임지는 방식으로는 한계에 다다랐음을 인정해야 한다. 또 스마트팜처럼 더 많은 전기/에너지를 사용하며 궁극적으로 기후위기를 가속하는 농업 역시 근본적인 해법이 될 수 없다. 농민이 생태적으로 지속가능한 농사를 통해 먹거리를 안정적으로 생산-공급할 수 있도록 계획적인 농업정책이 필요하다. 기후위기 시대에 먹거리라는 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한 국가의 역할과 책임을 분명히 하는 게 더욱 중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