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란음모죄 등으로 기소된 통합진보당 이석기 국회의원 등 7명에 대한 2심 선고가 지난 8월 11일 있었다. 서울고등법원 형사9부(재판장 이민걸 부장판사)는 1심과 달리 실체가 불분명한 RO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으면서 내란음모에 대해 무죄라 판단했지만, 내란선동죄와 국가보안법 위반을 들어 여전히 무거운 양형을 선고했다.
내란을 꾀했던 자리로 지목되어온 RO회합, 항소심 판결로 RO는 국정원의 조작이란 게 드러났다. 재판부는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합의가 없다는 이유로 내란음모에 대해 무죄라고 판단했다. RO회합으로 알려진 2013년 5월 모임, 당시는 한반도를 둘러싼 지정학적 긴장이 고조되었던 때였다. 분단체제라는 조건에서 언제든 증폭될 수 있는 긴장감, 그런 상황에서 평화와 인권을 실현하는 방법을 고민하는 것은 이 사회를, 이 세계를 살아가는 모두의 몫이기도 했다. 그러나 모임에서 나눈 이러한 고민은 국정원에 의해 내란음모로 바뀌었다.
내란음모 조작사건이라는 카드
일 년 전 이맘때 국정원이 한창 쓰기 바빴을 내란음모 조작사건 시나리오는 1980년 이후 33년 만에 다시 내란음모라는 단어를 등장시키며, 그것이 얼마나 무시무시한 책동인지 보여주려는 듯 압수수색, 녹취록 공개, 체포 및 구속, 정당해산 청구 등이 착착 이루어졌다. 이 모든 과정에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드는 언론의 절대적이고도 맹목적인 동조로 도마 위에 오른 그들은 ‘뿔 달린 도깨비’가 되었다.
내란음모 조작사건이 터졌던 때는 국정원의 대선 개입 정황이 드러나면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요구가 높아지던 시기였다. 코너로 몰렸던 박근혜 정부와 국정원에 내란음모 조작사건은 국면을 전환할 수 있는 훌륭한 카드였다. 왜곡된 녹취록 일부가 공개되면서 대선 개입 논란은 수그러들었고, 의도된 오기를 다시 오기하여 해석하고 진단하는 반응만 들끓었다. 한때 선거연대로 공조했던 이들은 더 적극적으로 선 긋기에 나섰다.
지난 2월 내란음모 조작사건의 피해자들에 대한 인권침해 보고회가 열렸다. 발행된 보고서의 제목은 이러했다. “아무도 우리 이야기를 듣지 않았다.” 내란음모를 꾀했다는 중요 증거인 2013년 5월 12일 모임의 녹취록은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수도 없이 수정되었다. 사건 초기 특종보도라며 왜곡되어 공개된 녹취록 일부를 놓고 이석기 의원 등 통합진보당 인사들은 위험천만한 불순분자가 되기도 했고, 세상 물정 모르는 바보가 되기도 했다. 악의적으로 오기된 녹취록이 부분적으로 인용되면서 이들은 ‘결전 성지’(모임 장소였던 절두산 성지를 지칭했던 것)에서, ‘성전’(반전평화를 호소하는 선전활동을 지칭했던 것) 수행을 촉구하고, ‘폭력적인 대응’(통일적인 대응을 지칭했던 것)으로 ‘전쟁을 준비’(구체적 준비를 지칭했던 것)하는 내란음모 세력이 된 것이다.
내란음모 세력이 되어버린 이들의 목소리는 감춰졌고, 절차와 권리는 무시되고 무너졌다. 그렇게 내란음모 조작사건이 등장한 그 순간부터 이들을 철저히 배제하면서 이루어진 마녀사냥에 진보언론도 합세했다. 사건 초기 국정원이 흘린 것이 분명한 왜곡된 녹취록에 기대면서 내란음모가 사실인지, RO는 존재하는지, 이석기는 누구인지에만 관심이 집중되었다. 2년 전 경선 부정사건의 사실이 제대로 밝혀지기도 전에 덧씌워졌던 오명에 내란음모 사건이 더해지면서 통합진보당은 종북당이라는 낙인이 확실히 새겨졌다. 문제를 제기하거나 의구심을 품으면 “너도 종북이냐?”는 날 선 질문이 되돌아왔다. 국정원발 공안탄압의 광풍에 함께 널뛰며 진보운동 또한 조롱 혹은 침묵으로 동조했다. 지난 1년여의 시간 동안 국정원의 시나리오는 그대로 현실에서 연출됐다. 이것은 우리가 결국 적극적 동조부터 침묵까지, 저들의 ‘입’만 바라봤기 때문이 아닐까? 그렇게 내란음모 조작사건에 동참한 결과, 통합진보당은 운동사회에서 철저히 배제되고 고립되는 대상이 되었다. 진보운동 진영은 분열되고, 야권연대는 무너졌다. 진보정당과 운동에 대해 많은 사람이 불신하고 등을 돌렸다.
특정 정당, 특정 조직이 아닌 한국 사회운동이 무엇을 빼앗기고 잃었는지 직시해야
경선부정부터 내란음모까지 통합진보당을 둘러싸고 일어났던 숱한 사건들을 지나오면서 많은 이들이 진보정당 운동의 파산을 이야기했다. 2004년 10명의 국회의원을 배출하면서 화려하게 시작된 진보정당의 제도권 진입이 통합진보당 사태를 겪으면서 일단락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주요 책임을 통합진보당 주도세력에 돌렸다. 그러나 당내 경쟁 세력에 의해 자행된 경선부정사태, 국정원-검찰-경찰-사법부까지 국가권력기관이 총동원되어 진행하고 있는 종북주의 정당의 내란선동이라는 한 편의 드라마를 보고 있노라면, 통합진보당 주도세력에 책임을 묻는다는 게 과연 무엇인지 되물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진보정당 운동의 파산을 운운하는 지금, 진보정당의 지리멸렬을 단지 선거에서 얼마나 득표하고 몇 석을 얻을 수 있는지로 평가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노동자, 농민, 철거민, 노점상, 여성, 장애인 등등 다양한 사회경제적 위치와 정체성 속에서 조직되고 아래로부터 사회적 힘을 만들어왔던 운동이 각자의 울타리를 넘어 보편적인 정치적 실천을 위해 결집해 온 게 진보정당의 역사이기도 하다. 통합진보당 운동에 대한 동의 여부와는 무관하게 적어도 통합진보당은 그런 역사와 실천이 쌓여 만들어왔던 조직이었다. 지난 2년여 동안 진행된 것은 바로 조직된 대중의 힘에 대한 체계적인 공격이자 무력화였다. 진보정당 운동의 상징과도 같았던 명망가들이 바로 지금 이곳저곳으로 옮겨 다니며 야권과의 선거연대에 골몰하는 모습을 보일 수밖에 없는 게 결코 우연이 아닌 것이다.
조직된 대중의 힘에 대한 공격은 당연히 그 조직이 펼치고자 했던 운동을 공격한 것이기도 했다. 단적으로 2013년 5월 모임에서 통합진보당 당원들이 논의했던 한반도와 동아시아 평화를 위한 남북화해와 분단체제 극복을 위한 운동의 고민은 이제 내란음모-선동-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어렵지 않게 탄압할 수 있게 되었다. 일본의 군사 대국화, 중국의 부상, 한미일 군사동맹 강화, 체제 수호를 위한 북의 핵 개발 등으로 동아시아 정세는 그 어느 때보다 요동치고 있지만, 과거 활발했던 남북화해협력, 통일운동의 기운은 그 어느 때보다 사그라지고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동아시아 평화와 분단체제 극복을 위한 운동이 한국 사회운동의 중요한 과제이자 실천이 되기는커녕, 공안기관의 손쉬운 꽃놀이패가 되는 현실을 우리는 경험하고 있다.
잃어버린 목소리를 되찾아야 할 때
우리 안의 레드컴플렉스를 자극하며 이루어지는 공안탄압 카드는 언제나 정권이 위기상황 돌파용으로 꺼내 들어 왔다. 그럴 때 우리는 저들에 의해 지목된 사람/집단을 엄호하기보다는 구분 짓거나 침묵해 왔다. 이러한 잘못이 더는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 지난 시간 속에서 우리가 동조했던 것, 그리고 잃어버린 것은 무엇이었는지 철저한 반성과 고민이 필요하다. “아무도 우리 목소리를 듣지 않았다”는 절망적인 탄식이 또다시 누군가를 압도하는 일을 멈추기 위해, 지금도 내란음모 조작사건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싸우는 사람들의 옆에 함께 서는 것을 우리의 출발점으로 삼자. 불온한 목소리라고, 저들과 공조해 우리가 차단했던 목소리들, 거기에 귀 기울이는 것부터 시작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