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운동사랑방 후원하기

인권하루소식

범민족대회 대회장인 문익환 목사가 대통령에게 보낸 서한(일부 게재)


김영삼 대통령 귀하

우리는 범민족대회가 남 북 해외 7천만 동포들이 모여 분단의 고통을 하루속히 종식하고 통일의 길을 열고자 하는 민간차원의 순수한 염원의 의지의 결집장인 만큼, 이번 대회를 준비함에 있어 그간 군사정권 하에서와는 달리 민과 관이 합당한 대화와 협의 하에 성공적으로 치루어 질 수 있기를 기대하였습니다.

이러한 기대는 "어떤 동맹국도 민족보다 소중할 수 없고 어떤 사상이나 이념도 민족보다 더 큰 행복을 가져다줄 수 없다"고 문민정부의 출범과 함께 대통령 자신이 취임사에서 밝힌 확신에 찬 민족애에 기인하였습니다. (중략) 그리고 대전엑스포 개막식에서 대통령께서 신한국 창조의 희망찬 내일을 선언한 것과 마찬가지로 범민족대회 개막식에 참석하여 분단된 남쪽의 대통령으로서가 아니라 새로운 통일의 시대를 여는 통일대통령으로 우뚝서 주시기를 소망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8월 4일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전국 각 지역에서 국토순례대행진를 비롯한 다양한 행사를 합법적이고 일체의 폭력을 배제한 평화적 방법으로 시민들의 통일의지와 함께 어우러지는 분위기 속에서 진행시켜 왔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7월 24일 치안관계장관회의를 통해 범민족대회의 불허방침을 발표하고 8월 4일에는 3자 실무회담 불허, 8월 11일 관계장관회의를 통해 대회장소를 원천 봉쇄하는 방침을 정하였습니다.(중략)

우리는 교착된 남북관계에 민간차원에서라도 작음 활로를 열기 위해 소모적인 정부와의 마찰과 대립을 피하고자 끝까지 노력해왔습니다. 이에 따라 정부가 3자 실무회담을 불허한 상황에서 불행한 충돌을 피하기 위해 8월 9일 대표자회의를 통해 범민족적인 단결의 취지를 분명히 하면서도 범민족대회의 동시 분산개최를 선언한 바 있습니다. 범민족적인 화해와 단결을 지향하는 우리로서는 뼈를 깎는 아픔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오늘 대회장소로 예정된 연세대학교를 전투경찰로 완전 봉쇄하고 있는 불행한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중략)

대통령의 통일의지에 반하는 일부 공안세력의 구시대적 발상과 행동에 대해 대통령께서는 이를 반드시 바로잡아야 할 것입니다.

이에 우리는 13일로 예정된 범민족대회 개막식을 14일로 연기하면서라도 원만한 대회진행을 위한 대통령의 결단을 기다리겠습니다.

1993년 8월 1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