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8일(수요일) 오후 1시 30분을 전후해서 93범민족대회 남측추진본부 일본대책위원회 책임간사를 지냈던 김삼석 씨(30세)와 그의 누이동생 김은주 씨(26세)가 정체를 알 수 없는 기관원들에 의해 연행 당했다.
김삼석 씨의 부인 윤미향(29세,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간사)씨에 의하면 저녁에 퇴근을 하여 집에 와보니 컴퓨터, 디스켓, 책 등을 포함하여 심지어는 결혼식을 촬영한 비디오 테이프까지 없어져 있다고 한다. 김씨가 사는 동네의 주민들에 의하면 오후 1시 30분경에 봉고차 두 대와 검은색 승용차를 동원한 신원미상의 사람들이 김씨를 연행하였다는 것이다.
또한 이날 저녁 김은주 씨의 집에는 "치안본부에서 나왔다"(치안본부는 경찰청으로 바뀜)고 하는 6명의 괴한들이 찾아와 압수수색영장도 제시하지 않은 채 김은주 씨의 책, 사진 등을 가져갔다.
그리고 이날 밤에는 김씨 남매로부터 가족에게 각각 전화가 걸려와 매우 힘든 목소리로 어디에 있다는 말도 하지 못하고 "2, 3일 후에 갈 테니 걱정마라"는 말만 남겼다.
9월 8일 밤을 뜬눈으로 지새운 김삼석 씨의 부인과 김씨 남매의 부모들은 하루종일 각 경찰 및 정보기관을 찾아다니며 두 사람의 행방을 수소문했지만 어느 곳에서도 "모른다", 또는 "없다"는 대답뿐이었다. 김씨 남매는 어디에 있는가.
우리는 김씨 남매에 대한 연행과 그 이후 지금 이 시각까지 진행되고 있는 모든 과정이 3, 4, 5, 6 공화국 정보기관원들의 그 폭력적이고 음습한 인권침해를 그대로 재현하고 있는데 대해 전율하지 않을 수 없다.
압수수색영장도 없이 집안에 침입해서 물건을 가져가는 문민경찰이 어디 있다는 말인가. 가족들에게 행방조차도 알려주지 않고 뜬눈으로 애태우게 하는 수사가 과거와 다른 점이 무엇이란 말인가. 김삼석 씨의 부인 윤미향 씨는 현재 임신 8개월의 무거운 몸을 이끌고 정대협의 바쁜 업무도 거의 보지 못한 채 남편의 행방을 애타게 찾고 있다. 현재까지의 정황으로 보아서는 이 불법무도한 기관원들이 김씨 남매를 연행하는 과정에서도 합법적인 과정을 거쳤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김삼석 씨는 최근까지 사단법인 태평양전쟁희생자유족회의 사무장, 그리고 93범민족대회 남측추진본부 산하의 일본문제대책위원회의 책임간사로 일하면서 태평양전쟁 당시의 조선인 피해문제에 대한 완전한 전후처리와 일본의 정치군사대국화 저지를 위해서 심혈을 기울여 활동해온 사람이다. 김은주 씨도 그간 천주교 청년단체 활동을 통해 민주화운동을 해오면서 국제세계에 대한 보다 넓은 시각을 얻기 위해서 일본유학을 준비하면서 공부를 해온 사람이다.
이 김씨 남매는 우리 민족의 시대적 과업, 특히 일본과의 민족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젊음을 바쳐오고 있는 훌륭한 젊은이들이다.
이번과 같은 불법연행은 지난 시기 좌경과 국가보안법의 굴레를 씌워 갖은 방법으로 탄압해온 과거 군사독재정권의 망령이 또다시 이 김삼석 씨 남매에 드리워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감출 수 없다.
현재 온 국민의 관심 속에 진행되고 있는 부분적인 과거청산 작업 속에서도 공안 수구세력이, 두 젊은이가 일본과의 민족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일본을 몇 차례 왕래하는 과정에서 생긴 작은 문제를 꼬투리 삼아 새로운 공안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한 음모를 꾸미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을 강하게 가진다.
우리는 김씨 남매를 연행하고 가택을 수색하는 과정에서 불법을 저지른 관계기관이 즉시 김씨 남매를 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내고 혹시라도 조사할 것이 있다면 변호사의 접견이 허용된 자유로운 공간에서 공정한 법 절차를 지키면서 조사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
우리의 요구
1. 정부는 불법연행 당한 김삼석 씨와 김은주 씨 남매를 즉각 석방하라.
2. 정부는 불법적으로 강탈해간 김씨 남매의 소지품을 즉각 반환하라.
3. 정부는 김씨 남매의 불법강제연행을 책임지고 관계기관의 책임자와 가담자들을 즉각 파면하고 구속수사 하라.
4. 공안 수구세력은 반민족악법인 국가보안법을 이용해서 다시 공안사건을 조작하려는 의도가 있다면 이를 즉시 철회하라.
1993년 9월 9일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인권위원회/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 인권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