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인권법 기준미달인 국내법규 개혁계기
인권이사회, 손종규 씨 '통보' 허용
유엔 인권이사회(Human Right Committee)는 지난 3월 18일 국내 최초로 유엔인권침해구제 절차에 따라 제출한 '통보'(Communication)를 허용하는 결정을 내렸다. 이 사실은 제소자인 금호기업 전 노조위원장 손종규 씨의 의뢰로 이번 사건을 맡아온 조용환 변호사에게 도착한 5월 10일자 공문을 통해 밝혀졌다.
손종규 씨는 조 변호사를 통해 지난 92년 7월 7일 '통보'(No.518/1992)를 유엔 인권이사회에 제출하였고 인권이사회는 한국 정부의 의견과 이에 대한 손씨의 반대의견을 검토한 후 약 2년이 다된 이번 5월 손씨의 통보가 '시민적 및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ICCPR)선택의정서' 19조에 따라 허용된다(admissible)고 결정한 것이다.
이 결정에 따라 당사국인 한국정부는 본 사안에 대해 6개월 이내에 서면으로 설명하거나 진술하여야 하며 당사국으로서 취한 조처가 있으면 설명해야 한다. 그리고 한국정부가 제출한 설명이나 진술은 사무총장에 의해 당사자에게 전달되면 제소자는 다시 6주 내에 이에 대해 하고 싶은 의견을 표명할 수 있다. (절차규칙 93조 3항)
한국에서 처음, 관심과 주목
이번 통보는, 한국정부가 91년 '시민적 및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ICCPR,이하 B규약)'과 'B규약에 따른 선택의정서'에 가입한 이후 처음 제출된 통보이면서 동시에 처음으로 허용된 것이라는 점에서 많은 국내 인권단체와 국제인권법 관계자의 특별한 주목과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B규약 '표현의 자유' 위반
손씨는 91년 2월 대우조선파업 당시, 전국 대기업노조 연대회의에 참석하여 파업을 지지하고 정부의 경찰력 투입을 비난하는 성명서를 발표한 것이 문제되어 구속되었다. 손씨는 '3자 개입을 금지하는' 노동쟁의조정법 13조 2항과 집회와 시위에 대한 법률을 위반한 혐의로 기소되어 91년 8월 서울 형사지법에서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손씨는 항소와 상고를 하였으나 모두 기각되었다. 이에 손씨는 '자신이 유죄판결을 받은 것이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B규약 19조 2항을 위반하고 있다'며 유엔 인권이사회에 이 문제를 지난 92년 7월 제소하였다.
그러나 인권이사회로부터 해명을 요청 받은 정부는 93년 6월 9일 제출한 문서에서 국내의 법적 구제절차를 설명하면서 '헌법재판소가 표현의 자유라는 관점에서 위의 조항을 심의하지 않았으므로 이를 요청하지 않은 손씨는 국내의 모든 법적 구제조치를 다하지 않았고 따라서 손씨의 통보는 허용될 수 없다'는 논리로 손씨의 통보를 기각시키려고 하였다.
손씨는 이러한 정부의 주장에 대해, '헌법재판소가 문제가 되는 법률이 위헌이라는 결론에 이르는 모든 근거들을 심의할 재량을 가지고 있으며 실제로 헌법재판소가 그 법을 무효화할 수 있는 모든 가능한 근거들을 고려해야 하는 의무가 있으므로 같은 문제를 다시 헌법재판소에 가져가는 것은 무의미하다'며 이러한 의미에서 '90년 1월 15일 헌법재판소 결정 시 다수의견이 표현의 자유의 권리에 대해 비록 언급하고 있지 않지만 소수의견으로 2명의 동의와 한명의 반대의견이 있었고 따라서 헌법재판소가 표현의 자유에 대한 헌법적 권리의 침해를 포함한 노동쟁의조정법의 위헌 가능성에 대한 근거를 이미 고려했다'고 볼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양측의 주장을 B규약의 정신과 법에 따라 심의한 인권이사회는 '헌법재판소가 노동쟁의조정법 13조 2항을 표현의 자유라는 관점에서 심의하도록 요청하는 것이 B규약 선택의정서 5조 2항에서 규정하는 국내적 구제조처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또 인권이사회는 제소자가 체포, 기소 및 유죄판결 받은 것이 진행중인 파업을 물리적으로 지원한 것이 아니라 단지 구두로 지원 의사표현을 한 회의에 참가한 것 때문이었다는 사실에 주목하여 제소가 B규약 제 19조에 의거하여 허용되고 심의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표현의 자유침해' 결론 날 것
이 사건을 처음부터 담당해온 조용환 변호사는 '정부의 공식적인 답변을 검토한 후 향후의 대응방법을 모색할 계획인데 사안 자체가 너무도 명백한 것이어서 B규약의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 것이라는 최종판결을 얻을 수 있다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조 변호사는 또한 '말도 안되는 3자 개입금지 조항을 남용해온 검찰과 이것이 합헌적이라고 판결한 헌법재판소 등 많은 법원관계자들은 이번 유엔 인권이사회의 통보 과정과 결과에 따라 도의적인 책임을 져야할 것이다'고 강조하였다. 인권이사회가 손씨 사건이 B규약의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 것이라는 최종결정을 내릴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국제법 준수할 법적․정치적 의무
인권이사회의 견해는 B규약과 B규약 선택의정서를 비준한 우리 나라에 법적, 정치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B규약의 경우 인권이사회가 인권침해가 있는지를 판단할 권한이 부여되어 있고, 정부나 법원이 인권이사회의 견해에 따라 B규약의 조항들을 해석, 적용할 국제법적 의무가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또한 헌법 6조 규정상 비준․공포된 조약은 모든 국가기관이 준수할 의무를 지게 되며 국내법을 이유로 위반이 정당화되지 않는다는 점을 상기하면 더욱 그렇다.
이런 의미에서 이번 손종규 씨의 통보는 위헌적인 법률에 의한 인권침해가 만연되어 있는 국내현실과 국제인권법의 기준에 터무니없이 미달된 국내의 인권관련 제반 법규를 개혁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리라고 예상된다.
현재 손종규 씨 사건 이외에도 89년 전민련 결성식에서 결의문 등을 낭독, 배포한 혐의로 국가보안법 7조의 찬양․고무죄로 유죄를 선고받은 김근태씨 사건도 유엔 인권이사회에 제소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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