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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고 박종철열사 8주기 추모 및 기념강연

안상수 변호사 강연 요지(발췌)

물고문을 당하다 욕조턱에 눌려 사망 부검을 하자마자 사인을 알아내

8년전인 97년 1월 15일 그 운명적인 날에는 저는 검사로서, 박군은 싸늘한 시신으로서 서로 비극적으로 만났습니다. 박군은 시신의 주검을 가지고 저에게 무엇인가 호소했고 당시 부검의인 황적준 박사는 어려운 조건에서도 최선을 다해 부검에 임하므로써 그가 몸으로 말하는 그 모든 것을 듣고 보았습니다.

우리는 부검을 마치고 나서 바로 박군이 물고문을 당하던 중 욕조턱에 목이 눌려 사망한 사실을 알 수 있었습니다. 부검을 하자마자 사인을 알아낸 것입니다.

저는 범인들에 대한 1차 수사를 마치고 조한경, 강진규 등 범인 2명에 대하여 기소까지 끝낸 다음 87년2월말경 조한경, 강진규로부터 범인 3명이 더 있다는 사실을 들어서 알게 되었습니다. 그때 제가 느꼈던 당혹감, 절망감은 아마 영원히 잊지 못할 것입니다. 그저 하늘이 무너지는 느낌이었습니다.


범인 3인의 추가기소는 재야민주세력의 폭로 덕분

추가로 확인된 범인 3명을 구속하기 위해 저희 수사팀이 겪은 고통과 좌절은 필설로 다할 수 없는 것이었고, 저간의 자세한 내용은 며칠 후 동아일보에서 출간될 {이제야 마침표를 찍는다}는 저의 저서에서 상세히 밝혀질 것입니다.

그런 위기상황에서 검찰을 구해준 것은 아니러니컬하게도 이부영, 김정남, 고영구 씨 및 함세웅, 김승훈 신부를 포함한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 등 이른바 민주재야세력이었습니다. 그들이 87년5월18일 경찰의 범인은닉 사실을 터뜨려 주지 않았다면 검찰은 그렇게 신속히 범인 3명을 추가로 구속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박종철군에 대한 기념사업 전개해야

정부는 박군 사건으로 촉발된 6월항쟁의 거룩한 이념을 계승한 정부라고 천명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군 등 민주인사들에게 명예를 부여하거나 기념사업을 전개하는데 너무나 소홀하므로 안타깝습니다.

더구나 김영삼 대통령은 당시 민추협의장 등으로 2.7추도회부터 6.29선언에 이르기까지 박군사건으로 축발된 6월항쟁을 주도했던 분임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무심할 수 있는지 이해가 잘 안됩니다.

따라서 저는 정의를 바로 세우기 위해서는 비장한 죽음을 통하여 오늘의 문민정부를 있게한 박군에 대한 기념사업부터 전개해 줄 것을 촉구합니다.

정부가 이 일을 하기 전이라도 뜻있는 사람들이 대학별로 또는 재야단체별로 모여서 모금운동을 벌여서라도 기념사업을 전개해야 할 것입니다. 언론사들도 당연히 그 정의로운 일에 협조를 아끼지 않아야 하리라 생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