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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언론자유 침해에 대한 저항정신 아쉬워

지난 해 10월 8명의 지역신문 편집자 및 기자들과 함께 수도 워싱턴의 흑인거주 지역에서 발행되는 주간 신문인 [Washington Informer]를 방문했다. 빈민가 상가지하에 위치한 이 신문사의 사무실은 그곳 바로 전에 방문했던 [Freedom Forum]의 호화스러운 응접실과는 전혀 딴판이었다. 우리 일행이 앉을 공간도 없어 기자들 책상 사이에 선 채로 대화를 나누어야 했다. 그러나 [워싱턴포스트]지와 같은 큰 신문이 외면하는 가난한 흑인들의 건강한 삶을 보도한다는 자부심을 그들의 표정에서 읽을 수 있었다.

[Washington Informer]의 좁은 사무실에서 특히 눈에 뜨인 것은 남아공의 흑인지도자 넬슨 만델라의 사진 밑에 걸려있는 "Freedom is not free"라는 구절이었다. 60년대 인종평등을 외치며 싸웠던 민권운동가들이 동료 흑인들에게 참여를 권유하며 사용한 구호였다. 워싱턴 다음에 도착한 버지니아 주 산악지대 타즈웰 카운티의 리치랜드라는 작은 도시의 한 신문사에서도 우리는 똑같은 구호가 걸려있는 것을 보았다. 영어가 서투른 일행 중 한 명이 정확히 이해를 하지 못한 듯 그 뜻을 확인하기 위해 필자에게 물었다. "자유는 공짜가 아니라는 뜻이죠. 자유는 싸워서 얻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라고 설명했다. 자유란 얻기 위해 그리고 지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인식이 인종에 관계없이 모든 미국인들에게 깊이 뿌리박혀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구호였다.


자유는 싸워서 얻는 것

우리 현대사에도 언론의 자유를 위한 투쟁의 발자취가 많이 있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우리 언론계에서는 자유를 위해 싸워야 한다는 의지가 실종되고, 현재 누리고 있는 자유를 당연시하는 경향이 팽배해졌다. 그렇다고 언론자유에 대한 위협이 사라진 것도 아니다. 단지 군사독재 시절의 노골적이고 직접적인 탄압이 사라졌을 뿐 언론의 진실보도를 방해하려는 시도는 끊이지 않고 있다. 최근 들어 "무인정찰기 부대 창설"과 관련된 보도에 대한 기무사의 [조선일보]와 [중앙일보] 기자에 대한 수사, "분유 발암물질" 보도와 관련한 SBS 기자의 수사, 그리고 밀가루 제공설과 관련한 [시사저널] 기자에 대한 수사 등은 새삼 우리가 현재 누리는 언론의 자유가 얼마나 허약한 것인지 증명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언론인들은 언론의 자유를 자사의 이익을 위해서 이용하는 데에만 적극적일 뿐 자신들이 직접적으로 관련되지 않는 한 매우 소극적으로 대처하고 있다. 최근의 언론보도와 관련한 검찰수사에 대해 대부분의 신문과 방송은 최소한의 사실보도에만 그치고 적극적인 논평을 삼갔다. [시사저널] 기자의 불구속 결정 직후 비교적 적극적인 논평과 해설이 게재되었지만 사법부의 판결에 대해 장단을 맞추는 정도에 불과했다.

군사독재가 사라진 마당에 모든 언론에 동시적으로 재갈을 물리려는 시도는 흔치 않을 것이다. 대신 언론 통제는 각개전투의 양상을 띤다. 가장 허약한 상대를 표본으로 골라 본때를 보여주는 것이다. 특정 언론에 대한 위협은 특정 언론인을 처벌하기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진실보도를 두려워하는 분위기를 만들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그 피해자는 특정 언론인이나 언론사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알권리가 제약을 받는 모든 국민이 궁극적인 피해자인 것이다. 국민의 알권리를 충족시킬 의무가 있는 언론은 정확하고 공정하게 보도해야 할 임무만큼이나 국민의 알권리가 위협당할 때 앞장서 싸워야할 의무가 있다. 언론의 자유가 침해당할 때 침묵하고 외면하는 언론은 그 자유를 누릴 자격이 없는 것이다.


침묵하는 언론 만들기 작전

언론자유의 침해에 대해 여태껏 우리 언론이 소극적으로 대응해 왔기 때문에 최근 들어 언론자유에 대한 침해사례가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개별 언론사에 대한 억압과 규제를 언론자유의 원칙에 대한 도전으로 인정하지 않고 우리 회사가 아니니까 상관없다는 식으로 외면해왔다. 당사자들도 나만 살면 된다는 식으로 적당히 타협하고 무마해왔다. 언론자유의 영역이 확장되기는커녕 점점 줄어들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인권수호를 위한 연대의 중요성은 2차대전중 나치수용소에서 사망한 한 목사의 싯귀절 속에 잘 담겨 있다.


먼저 그들이 유태인을 잡으러왔을 때/나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나는 유태인이 아니기 때문이었다//그들이 공산주의자들을 잡으러 왔을 때에도/나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니기 때문이었다//그들이 노조원을 잡으러왔을 때에도/나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나는 노조원이 아니기 때문이었다//결국 그들이 나를 잡으러왔을 때에는/아무도 나를 위해 말해줄 사람이 없었다

이제 우리 언론계도 "Freedom is not free"라는 각오를 다지며 진정 국민의 알권리를 수호하기 위해 그리고 독재정권에 저항하여 희생당한 선배들의 정신을 이어받기 위해 상호 연대하고 협조하여 언론자유를 제도화하는 법정투쟁을 벌여나가야 할 것이다.

장호순(언론학 박사, 한국언론연구원 언론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