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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인권시평> 인권을 무색하게 만드는 말들

절대권력은 절대적으로 부패한다는 서양학자의 말을 입증이라도 하듯이 김영삼 정권은 철저히 부패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나라의 현행 헌법을 비롯한 여러 법률상 대통령이 갖는 그 막강한 권한을 견제할 장치가 아주 미미하다. 거기에 유교적 정서가 덧붙여져 대통령을 임금님 모시듯 한다. 대통령이라는 용어도 문제다. 통치권, 통치행위 등의 용어도 마찬가지다. 이러한 용어들이 민주주의라는 용어와 어울리기나 하는가. 국민이 주인이라면서 누가 누구를 다스리고 지배하고 군림한다는 말인가. 대권은 무엇이고 구룡(아홉 마리용, 대통령경선후보예상자)이 웬말인가. 그러다 보니 박정희 부활론이 활개를 친다.


박정희 군사독재 18년의 향수

박정희 군사독재 18년에 사회 각 분야에서 멍들지 않은 곳이 없을진대 어느덧 다 잊고 그 때가 그립단다. 자신이 빨갱이로 몰렸던 아픔을 아랑곳 않고 반공을 국시로 내세워 수많은 인재를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게 한 박정희를 잊어서는 안된다. 인혁당사건, 민청학련사건, 긴급조치남발 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인권유린사건을 양산해 낸 박정희를 좋아하는 자들은 어떤 심성을 지닌 자들일까? '총칼로 잡은 정권 총칼로 망한다'는 명제가 실증되었는데도 정신 못 차리고 '박정희 내 사랑 쿠데타 내 사랑'을 외치는 무리들을 경계해야 한다.

박정희의 치적으로 경제성장을, 장점으로 청렴과 친인척관리를 들고 있다. 그러나 사상누각적 경계성장의 폐해를 지금 겪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치적으로 내세운다면 그들도 공범이다. 그때 이룬 경제성장은 지금 공해문제해결에 절반의 가치도 없지 않은가? 청렴문제도 보자. 크게 보도가 되지 않아서 그렇지 대선자금이나 스위스은행의 비밀계좌설은 그냥 설이겠는가. 그 이후의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보다 상대적으로 청렴했다는 평가는 가능할런지 몰라도 추앙할만큼 청렴한 것은 아니다. 친인척관리문제도 그렇다. 중고등학교 수학교사 출신이(육인수 씨, 박정희의 처남) 어느 날 국회 문공위원장을 하게된 것은 그리고 30대에 농수산부장관을 하게된 것은(장덕진 씨, 박정희의 처조카사위) 모두 본인들의 뛰어난 능력만이었을까?

역사를 뒷걸음질치게 하는 무리들은 어느 시대에나 존재하지만 요즘의 분위기는 너무 황당하다. 물론 김영삼 정권의 부정부패와 무능이 이러한 복고풍을 더욱 조장했겠지만 그렇다하더라도 퇴영적 자세는 금물이다. 특히 지식인 그룹인 대학교수들이나 변호사들이 박정희 향수에 젖어 있는 꼴은 아직도 넘어야 할 시대의 어둠이다.

5.18광주민중항쟁이 국가에서 인정하는 법정기념일로 평가되기까지 17년이 걸렸다. 그러나 5.18민중항쟁이 아니라 5.18민주화운동이라는 이름의 기념일이다. 캠페인성 운동이 아니었는데도 운동으로 격하․희석시킨 정부의 의도가 한심하다. 아직도 군부독재와 연결된 고리가 튼튼하다는 것을 입증하고 있다. 현재 국방부장관이 그 당시 진압군 책임자였다는 사실이 모든 것을 대변하는 셈이다. 전 세계 언론인들이 분노한 5.18민중항쟁을 우리 언론은 모르쇠로 넘어가 버렸다. 그리고 지금도 광주․전남지역 언론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언론이 무관심일변도이다. 광주라는 지역적 한계에 갇혀버린 5.18을 전국화․세계화 할 일이 과제다. 몇 명이 희생 당하였는가라는 수치에 연연할 것이 아니라 얼마나 잔인하게 죽임을 당하였는가라는 인권유린차원에서 5.18은 재조명․재해석되어야 한다.

5월은 노동절, 법의 날을 시작으로 화해와 평화를 연상시키는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 석가탄신일, 성년의 날 등이 연이어 우리의 정신을 맑게 해준다. 그러한 5월에 갈등과 전쟁을 드리운 치욕의 현대사가 덧씌워졌다. 5.16과 5.17이라는 두 번의 군부쿠데타가 우리의 현재를 만들었다. 민주공화국이라면서 민주는 아직도 실종된 듯한 지금의 상황은 민주국가로 가는 과도상태이다. 이러한 상황은 5.18로 승화되지 않고는 벗어날 수 없다. 두 번의 쿠데타를 극복하는 길은 즉, 5.16․5.17을 뛰어넘어 저 평등의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은 5.18민중항쟁을 분명하게 정립하는 것이다.


국민의 가슴에 못박아서야

민주주의를 그렇게 입버릇처럼 되뇌면서도 정신의 다른 한편에는 나랏님에 대한 절대충성과 복종을 지당한 것으로 믿고 사는 우리의 정치적 사고의 이중성이 민주화에 최대의 걸림돌이다. 인권부재의 살육현장을 외면하고 이제 그만하면 되었으니 전두환, 노태우를 사면하자는 주장은 진정한 화해가 아니다. 스스로 잘못을 인정하거나 뉘우친 적이 없는 인간이기를 거부한 존재들에게 대통령을 지냈다는 이유로 사면해야된다는 억지논리는 다시 한번 국민의 가슴에 못을 박겠다는 주장이나 마찬가지다.

대통령, 나랏님, 임금, 왕에 대한 말들부터 가려 써야한다. 민주와 인권, 화해와 평화와는 너무도 거리가 먼 전제군주시대의 개념을 여전히 즐겨 쓰면서 민주주의를 외치는 언론은 이율배반적 작태를 그만 두어야 한다. 대통령의 말한마디에 전전긍긍하는 사회가 어떻게 민주사회일 수 있겠는가. 대통령아들의 구속이 세계적 뉴스거리인가. 부패가 극에 달했다는 점에서는 부끄러운 세계적 뉴스일지 몰라도 대통령아들이라는데 초점이 맞춰지는 것은 분명 잘못된 것이다. 대통령아들은 직함이 아니다. 더더욱 특별히 취급될 일도 아니다. 부화뇌동한 권력해바라기들은 이번 기회에 사회 일선에서 스스로 물러나야 한다.

김동한(법과 인권연구소장, 광주여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