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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인권영화 ⑧ “송가황조”(宋家皇朝)

감독:장완정/ 주연:장만옥, 양자경, 오군매


역사는 그녀들에게 무엇이었나.

한 집안의 가족사를 종횡으로 거슬러 오르다 보면 사상과 권력이 휘두른 역사의 완력에 떠밀려 찢기고 흩어져 버린 가문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어떤 형태로든 완력의 주체 쪽에 서느라 사분 오열되는 가문도 있다. 그러나 동일한 시기에 비슷한 노정을 거쳐 같은 결과에 이르게 되었다 해도 두 경우를 같은 범주로 묶을 수 없다. 칼자루를 휘두른 자와 그 끝을 피해 움직이는 자들의 역정은 엄연히 다르기 때문이다. “송가황조”는 칼자루를 쥔 자들의 기록이다.

한 나라의 역사를 주도한 최고 권력의 반려였던 여인 둘, 그리고 양 대에 걸쳐 그 나라 경제를 지배하는 금권의 권좌를 놓지 않았던 한 여인. 이 세 사람이 한 가정에서 난 친 자매라는 것은 마치 야망과 복수가 뒤얽히는 시드니셀던 류의 드라마를 이끌어 나가기 위한 지나치게 작위적인 설정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세 자매의 인생은 거대한 한 나라의 역사와 궤적을 같이 하는 실화이다.

혁명가인 손문을 도와 신중국을 일으키고자 했던 북경의 부호 송사리는 자신의 세 딸을 새로운 중국의 역사를 이끌어갈 신여성으로 키우기 위해 일찍부터 미국에 유학시킨다. 송가의 세 딸은 아버지의 기대대로 최고의 서양교육을 받은 신여성들로 성장하지만 그들이 선택한 삶은 판이하게 달랐다. 첫째 애령은 중국 최고의 부호와 결혼하여 국가의 금권을 거머쥐었고, 둘째 경령은 아버지의 친구이자 동지인 손문을 선택해 혁명가의 길을 걷고, 셋째인 미령은 차세대 주자로 떠오른 청년 장교 장개석의 권력에 동승한다. 이들은 각자 자신의 가치관과 세계관에 의해 남편을 선택한 것이지만, 그 선택은 중국 역사의 양대 지류를 이끄는 양극의 선봉에 서는 것이었으며, 각기 다른 미래와 종말을 선택하는 것이기도 했다. 사상적 토대와 정치적 입장의 차이로 반목과 질시를 거듭하던 이들은 끝내 세 조각난 국토에 흩어진 채 생을 마감하지만, 그들의 인생은 가족사에 머물지 않았다. 이들 송가 자매의 행적에 의해 대중국의 근대사 그리고 세계 역사의 흐름이 직조되었던 것이다.

근대 동양사의 대부분을 차지할 만큼 방대한 중국 근대사의 흐름을 세 자매의 인생 역정과 함께 이끌어 나가는 것은 벅찬 작업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감독은 세세한 정치적 흐름을 쫓기보다는 세 여성의 각기 다른 성격과 그것이 빚어낸 역사와 가족사의 전환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카메라는 세 사람 모두에게 엇비슷한 비중으로 렌즈를 열지만 감독의 시선은 끝까지 본토와 인민을 지킨 경령에게 훨씬 따뜻하게 다가선 것으로 느껴진다.

세계 자본의 집결지인 홍콩이 본토 반환을 앞두고 혼란을 겪고 있다고는 하지만 어느 땅에 자신의 뿌리를 둘 것인가를, 그리고 앞으로의 세계사가 무엇의 힘으로 굴러갈 것인가를 그들은 알고 있는 것 같다. 새삼 느리고 끈질긴 그들의 저력이 무섭게 다가온다.


김경실(민주언론운동협의회 영화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