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곤계층과 연대를 통한 저항운동
지난 겨울 프랑스는 실업과 빈곤에 저항하는 실업자, 무주택자, 이민노동자, 임금노동자, 학생, 여성들의 "우리에게 직장을! 빈곤이 아니라 부를 나누자!"는 연대의 함성으로 가득찼다. 인구의 12.4%인 3백만명 이상이 실업상태에 처해 있는 나라, 프랑스. 그러나 실업자수가 2백만명(정부통계상)에 가까운 우리에게 그것은 이제 더 이상 먼 나라 이야기로만 들리지 않는다.
그 겨울 프랑스 전국 실업 보험청은 주요한 수당 중의 하나인 '연대 기금'의 적용대상을 축소시켰고, 이로 인해 매년 받아왔던 성탄 보너스를 받을 수 없게된 실업자들이 마르세이유의 실업사무소를 점거함으로써 실업자투쟁은 시작되었다. 하지만 그 투쟁의 밑바닥에는, 유럽 단일 통화의 조건인 재정적자 삭감을 위해 프랑스를 비롯한 각국 정부가 전개하고 있는 사회보장 축소 정책에 대한 근본적인 저항이 깔려 있다.
프랑스-사회보장 축소 정책 항의
따라서 실업자들 뿐 아니라 무주택자, 이민노동자, 임금노동자, 여성, 학생까지 이에 가세하였고, 그들의 요구도 성탄절 특별 수당을 넘어서, ▷모든 실업자를 위한 정규 수당 인상 ▷실질적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기 위한 노동시간 단축 ▷모든 배제에 대한 반대로 확장되었다.
이들의 행동 양식 또한 다양하게 이루어졌다. 무주택자들은 파리의 건물 점거를 시도하였고, 실업자들의 전기를 끊는 전력공사를 점거했으며, 게이, 레즈비언, 그리고 생태주의자등이 포함된 급진 그룹들은 파리의 고급식당 푸케와 꾸뽈을 점거하여 극단적인 빈부 격차에 대한 상징적인 투쟁을 전개하였다. 한편 시위대는 많은 국가 지도자들을 배출한 파리의 명문대학 파리고등사범학교를 점거, 지성인들의 자성을 촉구하며 연좌농성에 들어갔는데, 이에 이 대학의 학생, 교수들까지 참여했다.
이와 같이 한달 넘게 진행되었던 실업자 시위에 대한 한 여론 조사 결과는 응답자의 70%가 이들의 시위를 '정당한 행위'로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러한 응답 결과는, 95년 공공부문 노동자 파업 당시에도 57%의 국민들이 지지했던 경험을 상기해볼 때 그다지 의외는 아니다. 일반 시민들도 스스로를 언제든지 실업에 처할 수 있는 잠재적 실업자로 보고 있으며, 실업이 사회구조적 문제라고 보고 있기 때문에 실업자 시위에 대한 지지는 높다.
프랑스 국민 70% 지지
오랜 싸움에 대한 결과로, 그들은 결국 저소득계층을 위해 500억프랑(103조원)을 투입하는 소외방지법안과 35시간으로의 주당 법정노동시간 단축 등 완충장치를 국가로부터 얻어냈다. 그러나 그들이 얻은 진정한 성과는 모래알처럼 흩어져 있던 실업자들이 스스로를 하나의 사회적 집단으로 조직화해냈고, 단순한 구직자가 아니라 빈곤층으로 자신을 규정지으면서 이민노동자, 무주택자 등 같은 빈곤계층들과의 연대의 기초를 마련했다는 점이다.
그러나 한국에서 실업은 여전히 개인의 문제이고, '실업자 조직'은 불온시된다. 실업자 동맹에 대해 노조설립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노동부, 실업자의 조직화 움직임에 대해 실정법 위반여부 등을 면밀 검토하겠다는 의기양양한 검찰과 고개 숙인 실업자들의 모습만이 우리의 현실은 아닐 것이다. 임금노동자들과 실업자, 비정규노동자들의 실업과 빈곤에 저항하는 끈끈한 연대의 운동을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