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양심수를 위한 시와 노래의 밤’ 10주년 공연 포스터를 받아보았다.
아! 벌써 10년이구나하는 생각과 함께 아직도 창살 틈으로 조각난 하늘과 부서진 햇살을 바라볼 그들을 생각하니 가슴이 죄어온다. 문득 나의 왼쪽 발을 쳐다본다. 7년전 일년 남짓한 수배와 감옥생활로 인하여 심한 동상에 걸려 푸르스름한 색깔로 변했었던 나의 발. 조금만 치료가 늦었어도 잘렸을지 모를 나의 발가락.... 옥살이하는 딸 안스러워, 봄에는 꽃을 봐야 한다며 이름 모를 노란 꽃을 주머니 속에 몰래 감추고 접견실에 오셨던 어머니...
그곳 생각에 다시 머리속이 헝클어진다.
40년째 수감중인 우용각 할아버지, 권력앞에 양심을 게워낼 수 없어 준법서약을 거부한 강용주 씨와 아들 만날 날을 애타게 기다리는 칠순 노모, 출소 사실을 관내 경찰서에 신고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긴급체포되었던 김삼석, 이혜정 씨,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생명에게 가해진 주홍글씨(제7기 한총련 ‘이적단체’ 규정)....
정부는 다가오는 12월 10일 세계인권선언 50주년 기념일에 맞추어 ‘학생인권선언’을 제정 공포하고, 한창 공방중인 국가인권기구 탄생도 가급적 그때를 맞추고 싶어하는 눈치다. 과연 노벨평화상 후보에 수차례 오른 ‘인권’대통령다운 발상이다. 그러나 그것만이 급한 불은 아니다.
분단 반백년의 세월은 그리 간단치가 않다.
분단된 나라의 백성에게 주어진 형벌이 단지 동강난 땅 덩어리만이 아닌 것처럼 말이다.
분단국가의 반공이데올로기는 법률로서 표현된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국가보안법이다.
1948년 12월 1일 제정된 국가보안법은 1961년부터 반공법과 병존하다가 1980년 대외적 체면 때문에 반공법을 폐지·통합하면서 개악되었다. 반국가단체의 구성 및 간첩행위에 대한 처벌규정, 좌경사상에 대한 찬양·동조에 대한 처벌규정으로 대변되는 국가보안법은, 국가보안법 위반자가 유사한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위험성)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개인의 자유를 구속하는 보안관찰법과 함께 가끔은 그 애매모호함을 앞세워, 때로는 귀에 걸면 귀걸이식의 확대적용으로 무서운 칼날을 휘둘러왔다.
그 칼에 맞아 이미 저 세상 사람이 되어버린 희생자들과 그 고통을 지금까지 감내하고 있는 이들의 한과 슬픔을 어찌 다 헤아릴 수 있겠는가?
평화학자 요한 갈퉁은 일찌기 “평화란 단지 전쟁이 없는 상태뿐만이 아니라 폭력을 줄이고 폭력에 저항하는 힘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폭력이란 정신적·육체적 가능성의 실현을 방해하는 모든 것을 말한다”라고 정의하였다. 지난 반세기 동안 우리 사회 전반을 무소불위의 권력으로 지배해온 국가보안법은 ‘인간의 정신적, 육체적 가능성의 실현’을 원천적으로 봉쇄하여왔다.
미군이 한반도에 주둔한 이래 지금까지 가장 위력적으로 우리 민족의 삶을 족쇄채운 것은 ‘반공-반북-안보’이데올로기였다. 경제주권마저 내놓은 지금은 ‘경제 살리기’ 이데올로기까지 힘을 보태고 있다. ‘국가 안보, 경제 안보’ 앞에서는 모든 것이 일그러져도, 심지어 그것이 목숨을 위태롭게 하는 것일지라도 그건 그다지 중요한 일이 아니었다. 치욕의 분단 반세기는 말 그대로 반인권의 역사였다. 그러나 진짜 중요한 것은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지 않는 국가의 안보는 무용지물이라는 사실이다. 국가의 안보가 더욱 굳건해짐에 따라 그 나라 국민의 삶이 더욱 비인간적으로 전락한다면, 국가가 부르짖는 안보란 정권안보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법의 이름을 빌어 자행되는 국가권력의 비정상적인 감시와 통제는 인간의 존엄성을 파괴하는 폭력에 다름 아니다.
구제 금융시대를 맞아 나라 경제살리기 열풍에 밀려 다른 영역의 가치들은 제 목소리를 낼 수 없었다. 이제 다시 제2의 건국운동 바람이 불고 있다. 그러나 진정한 경제살리기가 금 모으는 것만이 아니었듯이 제2의 건국운동 역시 선언적 구호의 남발이나 공허하게 펄럭이는 플랜카드가 전부는 아닐 것이다. 제2의 건국운동은 과거 냉전시대, 집권자들의 권력 유지와 체제 안보 차원에서 만들어지고 악용되었던 제반 악법들의 철폐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국민의 눈과 입과 귀를 다 틀어막고 생산성과 고효율을 얘기하는 것은 허위일 수 밖에 없다. 반쪽의 경험만을 강요하는 체제는 결국 그 반쪽의 세상에 갇힐 수 밖에 없음을 우리는 이미 IMF를 통하여 경험하고 있지 않는가? 모든 사상과 사고가 획일화되고 흑백논리가 판을 치는 사회에서 올바른 역사발전을 이룬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국가보안법을 철폐 투쟁은 우리 사회 다양한 세포들의 잠을 깨우는 일이며, 사람이 사람답게 숨쉴 수 있는 신나는 세상을 만드는 일이다.
우리 함께 커다란 감옥을 깨뜨리자. 진정 평화로운 새날 맞을 때까지!
정유진(주한미군범죄근절운동본부 사무국장)
- 1256호
- 정유진
- 1998-11-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