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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같이 이야기할 사람이 그리웠다”

고문피해자 이을호 씨 가족의 끝모를 고통


지난 7일, 전두환 정권 아래서 당한 고문의 후유증으로 장기간 고통을 받아왔던 이을호(45·전 민청련 상입집행위원) 씨가 다시 병원으로 후송돼 주변의 안타까움을 사고 있다. 13일 오후 이을호 씨의 부인 최정순 씨는 자신과 가족이 겪어야했던 아픔을 털어놨다.

"너무 외로웠다고 하더군요. 자신과 우리의 미래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은데 같이 이야기할 사람이 없다고요. 지난 45년 동안 30년은 미친 듯이, 15년은 살기 위해 살아왔는데 이젠 너무 지쳤다고요." 어렵게 말문을 연 최정순 씨는 남편의 심경을 전하면서 끝내 북받쳐오는 슬픔에 눈물을 보였다.

85년 민청련 사건으로 구속된 이을호 씨는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이근안 등에 의해 물고문 등 혹독한 고문 속에 조사를 받던 중 정신질환 증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가족들이 그의 석방을 호소했지만 그는 서울구치소로 이감되었으며 이듬해 6월에서야 정신분열증이란 진단을 받고 풀려날 수 있었다. 일단 귀가는 했지만 이씨의 증세는 좀체로 가라앉지 않았다.

지난 15년 동안 이 씨는 4차례나 정신병원에 입원했고 매년 12월이 되면 발작현상을 보였다. 그때마다 가족들은 불안으로 밤을 새웠고 아이들은 정신병자의 자식이란 손가락질을 감수해야했다. 마을 사람들의 반발에 이삿짐을 꾸리기도 수 차례. 어렵게 찾아간 병원의 의사들조차 정신분열증이란 대답만 되풀이 할 뿐, 고문후유증을 치료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못해 주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견디기 어려웠던 것은 "그 모든 것을 남편과 가족들이 감수해야한다는 철저한 고립감이었다"고 최 씨는 말한다.

"남편은 일을 하고 싶어했지만 보통사람들과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번번이 회사에서 해고당했고 친하던 사람들도 그를 잊기 시작했습니다. 갑작스럽게 그의 상태가 악화라도 된 때면 그를 병원으로 데리고 가야했지만 마땅히 부를 사람이 없었어요. 그저 속수무책으로 지켜만 보아야했죠. 옆에 한 사람만 있었더라도 이렇게 힘들지만은 않았을 거예요."

최 씨의 마지막 바램은 남편과 같은 고문피해자에게 국가 배상이 이루어지는 것, 그리고 남편과 자신이 기댈 수 있는 사람이 옆에 있어주는 것이다. "울지 않겠다고 다짐했는데 결국 울고 말았다"며 쓸쓸한 미소를 짓는 최정순 씨, 그 뒷모습엔 지난 시간에 대한 진한 아픔이 배어 나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