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렵지만 가야할 길, 지문날인 거부운동
지정된 날에 동사무소에 나가지 않는다. 동사무소에 나가되, 지문날인을 거부한다. 지문날인 거부선언을 공개적으로 한다.…원칙적으로 볼 때, 주민등록증이 없이도 아무문제 없이 생활할 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바라며, 주민등록증이 없다고 당당히 말하자!
사회진보를 위한 민주연대 등 6개 시민․인권단체로 구성된 지문날인 거부 운동본부(준)가 동참을 호소하고 있는 내용이다. 96년부터 추진된 전자주민카드 계획을 보류시켰던 운동이 99년 주민등록증 제도 자체에 문제를 제기하며 ‘지문날인 거부운동’을 전면에 내걸고 다시 등장했다. 우선, 지난 1일, 사회인사 151인이 ‘지문날인 거부 1차 선언’을 발표했고, 2․3차로 계속할 선언자를 모으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운동이 넘어야 할 산은 높기만 하다.
우선 주민등록제도 및 지문날인에 대한 국민들의 1차적인 반응은 ‘주민증 자체의 소지와 이용이 극히 자연스럽다’는 것이다. 즉, 은행이용․여행․투표 등 일상생활에서 ‘개인의 신분만 확인’하면 그뿐이므로 자신의 ‘개인적인 권리와 별 상관없다’는 의식과 맞닥뜨리게 된다. 특히 지문날인에 대해서는 범죄 문제를 해결하는 기초적인 단서라는 필요성에 대한 인식이 강하다.
여기서 진전된 태도는 주민증에 대한 정부당국의 오용과 남용의 가능성에 대한 관심이다. 가령, 수시로 행해지는 불심검문 같은 행태에 반발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숨길 것이 없는 떳떳한 사람이므로 괜찮다, 아무것도 거리낄 게 없다”는 반응도 만만치 않다.
문제는 주민증, 일련번호, 지문날인 제도 전반에 대한 국민의 ‘권리와 책임’을 어떻게 부각시키느냐이다. 강제적으로 집중 관리되는 정보의 위험성에 대한 경종, 그에 대한 감시 의무의 부각, 당연히 보장받아야 할 개인의 권리에 대한 교육 등이 관건이 될 것이다.
결코 만만치 않은 일이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지문날인 거부에 동참하는 일은 ‘주민등록증을 경신할 수 없는 조건’을 스스로 만드는 것이고, 기존 주민증을 사용할 수 없게 되는 2000년 6월 1일부터는 국가신분증이 없는 상태가 된다. 주민증 제도에 대한 거부는 정부가 당연히 제공해야 할 서비스의 제공 거절, 각종 형태의 차별 및 미소지자에 대한 면박과 모욕, 구체적으로는 과태료 부과 등으로 나타날 것이다.
예비범죄자 취급받아 열손가락 지문을 찍고, 물건처럼 일련번호를 부여받고, 정부 컴퓨터에 ‘나’를 입력해 놓는 일에서 벗어나는 일이 이처럼 결코 만만치 않은 것은 당연하다. 그만큼 정부는 우리 개개인을 죌 수 있는 장치를 갖고 있다는 말이 된다. 누가 이 장치를 해체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