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마지막 광복절, 소문도 요란했던 ‘대사면’의 뚜껑을 열어본 우리의 심정은 착잡하기만 하다.
‘50년만에 정권교체를 이룬 국민의 정부’에 의하여 민주개혁이 주창되고 있는 오늘, 우리는 그 ‘대사면’이 단순히 정권의 시혜가 아니라 정치적 반대세력에 대한 과감한 관용을 통해 진정 민주사회를 지향할 동력을 얻기 위한 것이어야 한다고 믿는다. 그러나 우리는 정부가 이번 사면․복권의 전제로 삼은 준법서약서, 형기의 50% 복역, 미결수와 정치수배자의 원천적 배제 등의 조건이 정치적 반대세력에 대한 정권의 편협한 적개심을 그대로 반영하는 것임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우선 기결수에 대한 형기 50% 복역이라는 제멋대로의 기준 설정은 ‘한총련’으로 대표되는 학생운동을 거세하기 위한 저의를 띠고 있으며, 이런 불관용은 모든 국민이 기뻐해야 할 사면․복권의 취지에 크게 어긋난다. 미결수와 정치수배자 문제에 대해서도 우리는 “미결수 석방과 수배해제는 선례도 없으며 사면대상도 아니”라는 당국의 뻔뻔한 거짓말에 분노를 금할 수 없다.
우리는 노태우 정권 시절인 1988년 12월에 정치수배자 61명에 대한 수배해제와 구속수사 중이던 30명에 대한 구속취소, 그리고 재판 중이던 123명에 대한 구속취소라는 조치가 취해진 엄연한 사실을 알고 있다. 미결수를 원천적으로 배제하는 사면․복권방침은 구속자의 대부분이 미결수인 노동자를 노골적으로 적으로 인식하는 데서 비롯된 것이다.
양심수, 특히 노동자에 대한 불관용과는 대조적인 것은 김현철 씨에 대한 사면조치다. 확정된 형을 집행도 하기 전에 사면부터 먼저 베푸는 작태는 민주사회 지향과는 아무런 상관없는 구시대 ‘정실 정치’의 극치라고 해야 한다. 국민여론을 깡그리 무시한 이 파렴치범에 대한 아부는 김대중 정권의 일대 오점으로 역사에 남을 것이다. 우리는 양심수를 A급 파렴치범의 들러리 세우는 악한 관행에서 벗어나야 한다.
빠른 시일 안에 준법서약제도를 없애고 양심수와 정치수배자에 대한 과감한 관용조치를 취하지 않는 한 국민은 김대중 정부를 더 이상 ‘국민의 정부’라고 부를 아무런 이유를 느끼지 못할 것이다.
- 1433호
- 1999-08-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