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운동사랑방 후원하기

인권하루소식

<세계노동자공개포럼 참관기> '시애틀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다'


지난 해 11월 전 세계에서 모인 사회운동가들의 세계무역기구(WTO) 반대행동으로 미국에서 열린 시애틀 WTO 뉴라운드 각료회담이 결렬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진 이후, 각 나라에서는 그 어느 때보다도 신자유주의에 저항하는 새로운 움직임이 싹트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움직임을 반영한 국제회의가 2월 11일부터 15일까지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렸다. 전 세계 70여 개 국가 500명의 노동운동가, 사회운동가들이 한 자리에 모여 채택한 의제는 '노동조합의 자주성과 민주적 권리를 지키기 위한 세계노동자공개포럼(OpenWorldConference of workers)'이었으며, 이는 노동자들만이 관심을 가져야 하는 문제가 아니라는 인식의 공유 속에서 포럼은 시작되었다.


노조의 자주성과 민주적 권리

각 나라 참가자들은 자국의 사회현실, 빈곤과 차별의 문제, 노동운동의 현황 등을 발표하였다. 아시아, 아프리카, 유럽, 북미의 참가자들은 이구동성으로 신자유주의로 인해 점점 황폐해지는 민중의 현실을 지적하며 신자유주의의 강화가 노동자의 생존권뿐만 아니라 민주적 권리와 인간다운 삶의 질마저도 후퇴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국제연대를 강조하였다.

각 나라의 대표 발표내용 중 참가자들에게 가장 큰 관심을 끈 것은 역시 미국의 상황이었다. 단지 회의가 미국에서 열린 때문은 아니다. 미국이 WTO를 주도하며 시장개방정책을 주장하고 있고, 이를 반대하는 전 세계의 운동가들의 거센 반발과 저항을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 미국은 어느 때보다도 경제호황을 누리고 있다. 그렇다면, 다수의 서민들은 경제호황의 샴페인을 터뜨리며 젖과 꿀이 흐르는 미래에 대해 희망을 가져야 한다. 그런데 참석한 미국 노동자들의 상황을 들어보면 뭔가 이상하다.

경제호황 아래에서 노동자들을 비롯한 미국의 민중들은 행복할까? 대답은 한 마디로 No이다.


미국 노동자에게 호황은 없다

멕시코, 브라질, 아시아, 유럽의 참가자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한 △고용 불안정의 심화 △의료와 교육 등 공공서비스의 후퇴 △단체협상권, 파업권 등 노동자의 권리 후퇴 △실질임금의 하락 문제 등은 미국의 노동자들의 삶을 위협하고 있는 공통의 문제로 지적되었다.

미국 경제가 역사상 가장 긴 호황을 누리고 있음에도 노동자들의 허탈감과 박탈감이 하나의 목소리로 터져 나온 배경에 대해 미국 노동당(Labour Party)의 샌프란시스코 지부장, 데이비드 월터스(43)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경제호황은 사실이다. 그러나 현재 노동계급이 호황인 것은 아니다. 지난 25년 동안 미국 경제성장률에 비해 오히려 실질임금은 15%가량 떨어졌고 고용 불안정도 심화됐다. 뿐만 아니라 날로 점점 증가되고 있는 임시직, 계약직 노동자들의 권리에 대한 법적 보장력은 상당히 약하다. 특히 미국이 주도한 나프타 협정 이후 미국 내에 중남미에서 흘러 들어온 수많은 외국인 노동자들이 있지만 이들의 노동인권상황은 개발도상국가보다도 열악한 실정이다. 경제호황으로 덕을 보는 것은 우리가 아니라 IMF와 미국 월스트리트를 움직이는 사람들이다. '80;20의 사회'의 대표적인 나라는 바로 미국이다."


인권·여성 등 다양한 의제 결의

이번 세계노동자공개포럼에서는 미국의 노동자들이 국제연대를 호소할 때마다 즉각적인 행동연대를 결의하였고, 미국정부에 보내는 항의서한, 지지서한을 채택하였다. 특히, 이번 포럼의 공식의제가 '노동조합의 자주성과 민주적 권리'였지만, 노동자들이 주동적으로 인권·여성·환경·평화 등 다양한 의제를 국제연대의 주요 사안으로 결의한 점은 이번 회의의 가장 주목할 만한 성과라 할 수 있다.

이번 회의의 성과를 이후 국제연대 활동으로 이끌어가기 위해 각 참가자들은 △세계무역기구 해체 △국제노동기구(ILO)가 제시한 국제노동기준 준수 및 강화 △자주적인 노조건설 △여성차별, 인종차별, 전쟁반대 등을 핵심으로 하는 결의선언문을 채택하였다. 그리고 이를 위해 국제연락기구(ILC)가 국제연대활동을 촉진할 수 있도록 지원할 것을 함께 결의하였다.


'늘 처음처럼'

이번 포럼에 참가한 국내외 운동가들 중에는 이런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그래서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그리고 무엇을 해야 하는가? 단 한번의 회의로 무엇이 바뀌겠는가? "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오늘과 내일이 당장에 달라져야 할 것 같은 초조감을 털어버리는 일이다, 이미 우리의 현실이 그 명백한 답을 제시하고 있다. '80:20의 사회'의 불안감 속에서도 '다수가 행복할 수 있는 미래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소중한 결의가 전 세계 곳곳에서 물결처럼 흐른다면 그것이야말로 바로 희망의 상징이다.

새벽부터 한밤중까지 샌프란시코에서 마주친 수많은 거리의 부랑아, 실업자들... 먹구름으로 흐린 하늘이 답답한 세계화의 현실이라면 한국에서 함께 참석한 활동가들이 눈과 마음으로 다진 '늘 처음처럼'의 각오는 우리를 짓누르던 무거운 주제와 현실에 대한 답답함을 거두어준 무지개였다.


차미경(인권과 평화를 위한 국제민주연대 사무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