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운동사랑방 후원하기

인권하루소식

<인권시평> 생태적 권리의 향기


3년 전, 아직 눈 덮인 덕유산 자락에 간 일이 있다. 겨울이 채 끝나지 않은 북향 산기슭에 닿으니 구름이 낮게 깔린 데다가 어스름이 깃들기 시작한 풍경이 감동적이었다. 일행과 풍광을 즐기는 어느 순간, 산바람에 섞여 예사롭지 않은 냄새가 풍긴다.

이 냄새를 어디서 맡았더라? 허파를 어루만지듯 파고드는 풋풋한 향기는 분명 낯익은 것이었는데, 어디서 맡아본 것인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제법 시간이 지난 후에야 어렸을 적 고향에서 맡곤 했던 냄새였음을 깨닫게 되었다. 옛날에는 겨울 야산에서 쉽게 맡을 수 있는 냄새였는데 근년에 들어와서 맡은 적이 없어 잊어버리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갔던 곳은 전북 무주의 안성이라는 곳으로 여름밤이면 아직도 반딪불이가 날아다닌다. 반딪불이가 있다는 것은 생태계가 잘 보존되어 있다는 의미인데, 내가 그 향긋한 냄새를 맡을 수 있었던 것도 그곳이 청정지역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1년 후 다시 바로 그 산자락을 찾았을 때 그 향기는 온데 간데 없었다. 눈도 여전히 쌓여 있고 시간도 비슷한 오후였지만 내 허파를 휘돌아 기억의 한 자락을 들춰내던 그 냄새는 사라지고 만 듯했다.

냄새를 맡는 후각은 인간이 가진 감각 중에 가장 원시적인 층위에 속한단다. 시각이 인류가 직립 생활을 하게 된 후에 발달했다면, 후각은 코를 땅에 가까이 두고 생활하고 있을 때 발달한 것이라 가장 동물적이고 본능적이라는 것이다. 어떤 냄새를 맡고 못 맡게 된다는 것은 그렇다면 인간 감각의 가장 근원적 차원의 변동을 의미한다. 가슴속을 후미고 들어왔던 그 냄새가 사라진 것도 어떤 근원적 감각의 상실을 말해줌이 분명하다. 여기서 인권과 관련이 되어 있기는 하지만 인권으로만 환원되지는 않는 생태권 혹은 자연권의 문제를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건강한 환경 속에 사는 것은 인간이 사회적으로 누려야 할 기본적 권리에 속한다. 이 환경이 자연생태계의 건강성에서 나와야 하는 경우, 인권은 인간의 권리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생명을 가진 자연의 권리도 동시에 전제해야만 할 것 같다. 내가 어렸을 때 맡았던 야산의 그 풋풋한 냄새, 3년 전 반할 만큼 향긋하게 느꼈던 그 냄새가 사라진 것도 이런 생태적 권리, 자연적 권리를 외면한 후유증이다.

인권을 주장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지만 이 인권을 구성하는 자연권, 생명권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생태계가 파괴되어 자연이 주는 향기로움이 사라지면 내가 누릴 인권도 그 만큼 향긋함이 없어질 테니까.

강내희 (중앙대 영문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