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식적이다’라는 말은 인권을 옹호할 때 쓰이기도 하지만 인권 침해를 정당화할 때도 쓰인다. 그만큼 ‘상식’이라는 말은 인권의 역동성, 역사성을 담아내기 어렵기 때문이다. 특정 시대에는 인권의 언어로 포착되기에 어렵다고 여겨지던 것들이 당사자들의 투쟁과 인권운동의 성장으로 인권의 언어로 요구되고 확보되기 때문이다. 인권이 처음 주창되던 근대에 여성은 스스로 판단할 능력이 없다며 참정권을 비롯한 인권의 주체에서 배제됐다. 그것을 지금 상식이라고 주창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자동차산업의 주야맞교대는 한국에서 오랜 상식이었다. 기계를 놀리면 안 되고 컨베이어벨트가 멈추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할 일이었다. 기계의 리듬에 노동자의 삶을 맞추는 것이 상식이었다. 이러한 낡은 상식을 깨는 두드림이 얼마 전 있었다. 바로 자동차 부품업체인 유성기업 노동자들이 ‘주간연속2교대제 도입’ 합의이행을 촉구하는 파업이다.
이 파업에 대해 주요 언론은 자동차 산업을 말아먹을 것이며, 유성기업 노조의 요구가 자동차산업에서 전혀 시행되고 있지 않은 무리한 것인 양 보도했다. 2010년 노사가 합의한 ‘주간연속2교대제 도입’ 시행을 위해 올해 특별교섭을 진행했지만 사측이 교섭에 불성실하게 임해 5월 13일 지방노동위원회의 조정 결정이 내려졌다. 이에 따라 5월 18일 파업 찬반투표을 했고 78%의 찬성으로 2시간 부분 파업을 벌였다. 노동법상의 쟁의행위 절차를 모두 따른 합법적인 파업이었지만 회사는 부분 파업이 끝난 저녁 8시에 직장 폐쇄를 하는 불법행위를 저질렀고, 그도 모자라는지 새벽에는 용역깡패들이 자동차로 조합원을 들이받았다. 13명의 노동자들이 머리가 깨지고 다리가 다치는 중경상을 입었다.
공권력이 투입되기 전인 5월 22일과 23일 언론에서는 이러한 사측의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고, 유성기업 파업으로 인해 부품(재고)이 없어 5만대 자동차 생산이 중단될 것이며 그로 인한 경제손실이 크다고 대서특필했다. 그에 덧붙여 ‘주간2교대제 도입’이라는 하청업체 노조의 요구는 완성차에서도 시행되지 않는 무리한 요구라고 했다. 심지어 유성기업 노동자들이 연봉 7천만 원이나 받는 사람들이라며 배부른 자의 이기적 요구라는 분위기를 유도했다. 물론 이러한 경제손실 운운의 보도는 언제나 그렇듯이 공권력 투입을 정당화하는 근거로 작동된다. 실제 정부는 경찰력을 동원하여 5월 24일 평화적인 파업을 진행하고 있던 노동자들 512명을 강제 연행하였다.
죽고 시름시름 앓는 노동자들이 원한 것 심야노동 폐지
완성차에서도 시행하지 않는다고 해서, 납품업체의 요구는 무리한 요구라고 단정할 수 있는가? 유성기업 노동자들이 왜 파업을 했는지, 왜 2010년 노사합의로 ‘주간연속2교대’를 요구하고 노사 합의를 이끌어냈는지를 보아야 한다. 유성기업은 최근 1년 6개월 사이 뇌출혈, 주야교대로 인한 장기이상, 출근시간 돌연사 등으로 노동자 5명이 사망하는 심각한 상황이었다. 그래서 야간노동을 더 이상 지속했다가는 더 많은 동료들과 나의 생명이 위협받을 것이라는 심각한 위기의식 속에서 ‘주간연속 2교대’를 노사합의로 이끌어낸 것이다.
이러한 야간노동의 폐해는 비단 유성기업 노동자들만 겪는 문제가 아니었기에 민주노총 산하 금속노조에서도 2011년 주요 활동으로 야간노동으로 인한 수면장애 실태조사 및 야간노동 금지입법을 선정하였고, 주요 요구안으로 “회사는 장시간노동과 심야노동 철폐를 위해 실노동시간 단축과 주간연속2교대제 전환을 추진한다.”는 내용을 포함시켰다. 그리고 금속노조 현대차 지부, 기아차 지부, 지엠대우 자동차 지부는 8+8 시간을 노동시간으로 하는 주간연속 2교대제 전환과 그에 필요한 설비 증설 등을 단체협약 요구안으로 확정했다. 이러한 흐름 때문에 현대자동차 본사가 유성기업 노동자들의 파업에 개입한 것이다. 유성기업에 상주하던 현대자동차 구매관리본부장의 차량에서 발견된 ‘유성기업(주) 쟁의행위 대응요령’이라는 문건은 이를 분명히 보여준다. 그 문건에는 “현대차/기아차 시행 전 선(先) 시행 노사합의 방지를 위해 실무TF 구성”, “현대차 시행 후 3개월 내 시행추진 등의 형태로 도입”이라는 구체적 지침까지 명시했고, 불법파업 유도, 직장폐쇄, 공권력 투입 등의 시나리오까지 들어있었다. 이런 점에서 유성기업 노동자들의 요구는 특정 노조의 특수하고 이기적인 요구가 아니라는 것은 분명하다.
한국의 밤샘노동 현실과 건강권 침해
한국의 노동시간은 OECD(경제협력개발기구)가 발표한 ‘2010 통계연보’(2008년 기준)에서도 1위(연간 2,256시간, OECD 평균 1,764시간의 5배)일 정도로 길다. 야간노동을 실시하고 있는 사업장 중 일주일 단위 맞교대가 40%라고 한다. 더 정확히 말하면 밤샘 노동이다. 주야 맞교대 근무가 아닌 일반 노동자들의 근무시간은 8시간을 기본으로 하고 있지만, 주야 맞교대는 하루 10시간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주야맞교대 노동자들의 노동시간이 일반 노동자들보다 2시간이나 길다.
보통 주간일 때는 아침 8시 출근하여 저녁 6시 50분에 마친다. 이렇게 1주일 하고 나면 그 다음 주에는 야간조가 되어 저녁 9시 부터 작업을 시작하여 아침 8시에 퇴근한다. 게다가 주말에 하루 정도는 철야근무를 하기도 한다. 일급제이거나 시급제여서 철야근무나 연장근무를 노동자 스스로 거부하지 못하는 현실이다. 이러한 생활을 일주일 단위로 반복한다면 건강이 좋을 리 없다. 그렇게 장시간 심야 노동을 해서 받는 임금이니 액면가가 높을 수 있는데 이를 단순 비교할 수는 없다. 임금의 약 40%가 사실상 연장·휴일·심야할증 수당이기 때문이다.
한국 자동차공장은 대부분 24시간 기계를 돌리려는 자본의 이해 때문에 노동자들은 주야 맞교대로 일한다. 교대제의 문제는 수면과 일의 주기가 밤낮의 주기로부터 정반대가 되었을 경우 생체리듬이 교란되고 파괴된다는 점이다.
심야 노동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은 한국의 연구결과에도 드러난다. 2004년 손미아가 발표한「한 자동차공장에서 연속 12시간 주야2교대 근무노동자들의 노동시간 및 노동강도와 수면장해의 연관성」에 따르면 ‘근무 직후의 심한 졸림’으로 측정된 수면장해를 야간근무노동자들이 주간 고정근무노동자들보다 5배 이상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고 주간근무시기에 비해 야간근무시기에 4배 이상인 상태에 있다고 한다. 그리고 교대근무형태를 달리했을 때 심한 졸림이 줄어드는 등 수면의 질과 양이 나아졌다. 2010년 대한산업의학회지에 발표한 연구「교대근무가 자가평가건강 수준에 미치는 영향」에 따르면, 교대근무를 11년 이상 한 근무자에서 위험성이 가장 증가하는 양상이 나타난다고 하였다. 이는 장기근무자들이 증상 발현기에 도달했기 때문으로 해석했다. 이전 연구에도 13년 이상인 교대근무자가 비교대근무자보다 심혈관계 질환과 위장 장애 등 소화기계 질환의 유병률이 높다는 결과가 있었다. 2007년 유엔 산하 국제암연구소(IARC)가 야간노동을 ‘2급 발암물질’로 규정할 정도로 야간노동은 위험한 것이다. 또한 이러한 신체적 건강위험 외에도 사회적으로 가족, 친구 등과의 관계를 이어나갈 적당한 시간을 갖지 못해 사회관계에도 문제가 발생한다. 이 때문에 이미 유럽ㆍ미국ㆍ일본 등 대부분의 자동차 회사들은 주간2교대제 근무를 시행해 심야 노동을 하지 않고 있다고 한다.
남들 잘 때 잘 수 있는‘주간연속2교대’, 건강권과 노동권
해외의 사례에서 보이듯 ‘주간연속 2교대’는 불가능한 요구가 아니다. 현재 금속노조가 요구하고 있는 주간연속 2교대를 실시하고 있는 사업장도 있다. 안산에 있는 두원정공에서는 작년 9월부터 월급제와 주간연속 2교대제를 시행하고 있다. 주간에는 오전 8시부터 오후 4시까지 근무하고, 야간에는 오후 4시부터 밤12시까지 일하고, 일체의 잔업을 없앴다. 주간연속 2교대는 주야맞교대가 불러오는 장시간 노동을 막는 노동시간 단축의 효과가 있다. 물론 이러한 노동시간 단축효과를 위해서는 현재 대부분의 자동차사업장에서 시행하고 있는 시급제나 일급제를 월급제로 바꾸어야 한다. 좀 더 돈을 벌려고 구조적으로 잔업ㆍ특근을 강요하는 임금형태를 바꾸는 것이 병행되어야 한다. 이렇듯 주간연속 2교대는 단순히 근무형태만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임금, 노동시간, 노동강도 등이 함께 바뀌는 것이다. 물론 이를 현실화하려면 기업이 물량(생산량)을 확보하기 위해 노동자들을 더 고용해야하고 설비를 더 확보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자동차업계의 저항이 클 것은 분명하다.
건강권은 안전한 노동조건이 만들어지지 않으면 보장될 수 없다. 사회권규약 건강권 조항인 12조의 ‘(b) 위생적인 자연 및 직장환경에 대한 권리’는 좀 더 적극적으로 해석되어야 한다. 그래서 사회권 일반논평 14 건강권(2000년 발표)의 15항에서 산업위생은 노동환경에 내재된 건강위해의 원인을 합리적으로 가능한 범위까지 최소화하는 것을 의미하며, 적절한 주거 및 안전하고 위생적인 노동조건을 포함한다고 하였다. 노동권 관련 조항인 7조에서도 ‘안전하고 건강한 근로조건’, ‘휴식, 여가 및 근로시간의 합리적 제한’을 포함하고 있다. 모든 권리가 그러하듯 노동권과 건강권은 떨어질 수 없다. 노동자의 근무형태 등 노동조건에 대한 권리가 제대로 보장되지 않는다면 건강권도 보장될 수 없다. 또한 이러한 노동조건의 재구성은 노동에 대한 권리를 재편할 수 있는 가능성을 포함하고 있다. 그동안 노동에 대한 권리가 일할 권리를 중심으로 구성된 것이라면. 심야노동을 하지 않을 권리를 중심으로 이제 일하지 않을 권리를 드러낼 수 있다.
노동시간 단축에서 기대하는 것, 노동중심에서 벗어나기
근대산업혁명이후 노동중심의 가치관이 지배적이었고, 이에 따라 노동하지 않거나 못하는 사람에 대한 차별, 배제가 이어졌다. 인간의 활동이 노동으로만 치환되어 노동하지 않고 휴식하거나 즐거움을 추구하는 것은 부끄럽게 여기게 됐으며, 실업은 무능력과 무가치와 동일시되고, 자본주의 노동에 적합하지 않은 장애인들을 배제하였다. 이렇듯 노동중심적 가치관의 밑바탕에는 생산성의 논리가 깔려있고, 노동은 생산성-이윤논리에 한정된 개념으로 있었다. 이 점에서 근대 노동의 신화는 어찌 보면 자본의 든든한 축이 되기도 했다. 이러한 생산성 논리에 한정된 노동 개념을 변화시켜야 한다.
노동할 권리에는 비인간적인 노동을 거부할 권리가 포함되어 있다. 아직까지 노동을 하지 않을 권리는 비인간적인 노동이냐, 아니냐에 종속되어 있다. 노동시간 단축운동이 노동하지 않을 권리를 고민할 수 있는 틈을 만들어내길 기대한다. 노동에 대한 권리가 생명을 갉아먹는 심야노동을 하지 않을 권리로부터 시작하여, 노동이 자본의 이윤 논리 확산 기여에만 머물지 않는 다른 가치평가 기준을 갖는 개념으로 재구성되어야 한다. 많은 돈을 벌기 위해 노동시간을 연장하기보다 내 시간과 내 삶을 재기획할 수 있는 선택의 가능성을 주어야 한다. 노동자들 개개인이 경험한 노동시간 단축과 그로 인한 ‘시간의 창출’은 가능성의 공간이다. 그런 점에서 노동시간단축은 노동권을 재구성하는 동력일 수 있다. 물론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사회보장권이 더 나아져야 한다. 생활임금이 보장되지 않아서 노동시간은 단축됐지만 투잡(two job)을 뛰어야하는 상황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또한 자본에 훈육된 시간을 다른 이들의 삶에 귀 기울일 수 있는 시간으로 바꿀 수 있다. 여기서 연대의 지점이 포착될 수 있다. 노동시간 단축으로 일자리 마련이라는 방식의 연대를 넘어서는 실질적인 연대의 가능성을 고민하고 기획할 수 있는 틈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덧붙임
명숙 님은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