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5월 20일부터 안전대책 마련을 요구하며 파업을 시작한 울산 경동도시가스 안전점검원 여성노동자들이 회사와 합의했다. 위탁사인 경동도시가스와 사용자인 고객센터, 울산시의 지속적인 책임회피 속에서도 “가정방문 시 성폭력 등 위험에 노출되어 있고 이를 방지할 안전대책을 마련해 달라”며 파업과 농성을 이어온 결과다. 안전대책으로 가장 중요하게 제기되었던 가스안전점검 업무 2인1조는 ‘탄력적 2인1조’로 운영하기로 했고, 그 외에도 점검률 미달 시 임금을 삭감했던 건수 성과체계 폐지, 성범죄자 및 특별관리세대 정보 고지, 감정노동자 보호매뉴얼 마련, 예약점검 확대 시행 등이 이루어질 예정이라고 한다.
성폭력 안전대책을 내건 이번 파업의 쟁점은 여성노동자들이 처한 작업조건이자 노동환경으로서의 성적 위험, 특히 ‘고객’에 의한 성적 위험에 대한 인식이다. 파업의 시작 역시 지난 4월 한 안전점검원이 고객인 남성에 의해 감금되어 성추행을 당할 위험에 처한 사건이 알려지면서부터다. 하지만 ‘모든 고객을 잠재적 범죄자로 가정해 업무 체계를 재편하는 것이 불합리하다’는 회사와 ‘남성 고객의 계획적인 성범죄는 막을 방법이 없다’는 도시가스 업계는 노조의 요구가 과도하다고 비난한다. 관리감독의 책임이 있는 울산시와 정부부처는 ‘노사문제라 개입하기 어렵다’며 발을 빼려했다. 게다가 고객의 성희롱이나 갑질은 대면노동을 하는 서비스직이라면 ‘어느 정도는 감수할 수밖에 없다’는 이용자 중심의 사회인식까지 울산 안전점검원 여성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막아 왔다. 하지만 안전점검원들의 투쟁은 여성노동자의 ‘안전하게 일할 권리’가 어떤 위력(威力) 관계와 조건에 의해 가로막히고 있는지를 정확하게 드러냈다.
고객에 의한 성적 위협, 노동의 위협
일반적으로 일터는 한 사업장에 사업주, 상사, 동료와 같은 직장구성원이 함께 근무하는 형태만을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여성노동자 3명 중 1명이 제3자와의 대면업무를 주로 하는 판매직과 서비스직에 종사하고 있고, 이러한 직군 중 적지 않은 수가 전통적인 고용관계가 아니라 위탁․간접․특수고용의 형태다. 울산 도시가스 안전점검원을 비롯해서 전기 및 수도 검침원, 건강보험과 연금보험 방문상담원, 재가요양보호 및 방문간호 등 돌봄노동자, 정수기와 비데 방문관리사, 보험설계사와 통계조사관 등 이른바 ‘가구방문 노동자’의 대부분은 여성이면서 동시에 이러한 노동조건 속에서 일하고 있다.
이 여성노동자들의 공통점은 ‘작업장’이 바로 고객의 ‘집’이라는 폐쇄적 사적 공간이기도 하다는 점이다. 또한 고객과의 대면노동을 주로 하며, 다른 동료 없이 1인 작업을 한다는 점 또한 중요한 노동조건이다. 이는 여성노동자들이 성적 위협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도, 성적 위협문제를 외부에 가시화하기도 어려운 구조의 일부다. 울산 안전점검원 여성노동자들은 회사에 ‘성폭력 피해를 인정하라’고 요구했다. 이는 회사가 통제하는 노동조건이 ‘안전하게 일할 권리’를 가로막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책임지라는 것이다. 안전점검원들이 고객의 성희롱․성폭행 문제를 사용자의 역할과 책임의 문제로 제기한 이유는 고객의 잘못이 없다는 의미도, 고객의 잘못을 회사에서 떠맡으라는 것도 아니다. 일터에서 여성이 경험하는 성적 위협을 은폐하고 방관하는 사용자의 대응이 그 자체로 직장 내 성폭력을 유지시키는 강력한 원인이기 때문이다.
서비스직 감정노동자가 감수해야 할 몫?
그런데 회사는 여성노동자들의 주장을 한국사회에 만연한 성희롱과 성폭력을 ‘근절’시키라는 요구로 착각한다. 당연한 말이지만 개별 회사에 그런 능력이 있지도 않을뿐더러 이를 ‘근절’시키는 것은 실현 불가능한 목표다. 고객의 성적 위협을 근절할 근본적인 대책은 사실상 없다는 사용자들의 볼멘소리는 사용자로서 책임회피일 뿐이다. 고객의 행위로 인해 조성된 노동 위험의 내용이 무엇인지, 어떠한 방식으로 안전하게 일할 권리를 침해하는지, 고객의 행위를 사측에 보고하거나 문제해결을 요구하기 망설여지는 직장 내 구조는 무엇인지에 대해 사용자로서 답하고 문제해결을 위해 노력할 책임 말이다.
고객에 의한 폭언이나 성적 위협의 문제는 이른바 ‘갑질’ 고객만의 문제로 볼 수 없다는 사실은 다양한 판매직․서비스직 여성노동자들의 투쟁을 통해 문제제기 되어 왔다. 이는 ‘모니터링’이나 ‘성과’라는 이름으로 이루어지는 노동통제 과정과도 직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미 오래전부터 고객과 문제가 발생했을 때 벌칙 규정을 두었던 콜센터를 포함, 대부분의 대면노동․감정노동 직군에서는 노동자들의 친절도를 평가하며 인사 및 성과측정에 반영한다. 톨게이트 수납노동자들에게 업무와 관련 없는 25가지 복장 점검항목을 둔 사례도 있었다. 울산 안전점검원들도 “한 달에 1,200건을 배정하고 97%를 수행하라고 닦달해 온 회사의 집요한 강요 때문에 위험한 상황이 발생해도 참고 점검을 계속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한다.
일터에서 성희롱 문제가 개선되지 않는 이유 중 하나는 ‘성희롱만’ 문제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남성고객은 자신의 행위를 쉽게 신고하지 못하는 여성노동자의 불안정한 지위를 이용해 성희롱을 하고, 여성노동자들은 일을 지속하기 위해 각자 나름의 선을 정해 놓고 작은 일은 적당히 넘긴다. 이러한 대응방법은 이제 업무 ‘노하우’를 넘어 생존전략일 수밖에 없다. ‘여성은 남성에 비해 친절하고 상냥하다’거나 ‘여성이 서비스 분야에 적합하다’는 성차별적 통념을 기반으로 회사는 여성답게 노동하기를 요구하면서 고객과 최대한 마찰을 줄이기를 강요하고 있는 것이다.
일의 세계에서 가려진 여성노동자의 세계
하지만 성차별적 노동환경을 만든 회사의 책임은 제도에 의해 쉽게 가려지거나 정당화된다. 지금까지 일터에서의 성적 위협은 주로 「남녀고용평등법」의 ‘직장 내 성희롱’ 개념을 통해 ‘적대적 업무 환경’으로 규정되어 왔다. 여성들의 경험은 언어적 성희롱, 원치 않는 신체접촉, 신체 및 성기노출, 강간 및 강간시도를 포괄한 다양한 성적 위험에 놓여 있지만 ‘성희롱’이라는 협소한 틀로만 이해되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성희롱에서조차 안전점검원과 같은 여성노동자들은 자신이 겪은 부당함을 이야기할 기회조차 갖지 못한다는 점이다. 고객이라는 제3자는 규제할 수 없고, 특정 고용형태의 여성들은 ‘근로자’로 인정되지 않는다. 사용자의 책임과 의무를 요구하기도 어려운 조건이 이미 제도에 새겨진 셈이다.
여성노동자들이 일의 세계에서 ‘여성’으로서도 ‘노동자’로서도 안전하게 일할 권리를 외칠 수 있는 자리가 요원한 이유는 기본적으로 노동권이 전통적인 노동자로서 남성만을 전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근로기준법」이나 「산업안전보건법」과 같이 노동자의 기본적인 고용, 노동환경, 작업조건에 관한 권리 규정을 포괄하는 법제도 역시 남성 혹은 남성들이 집중된 특정한 직군을 중심으로 유지되고 있다. 여성의 노동권은 임신 중인 여성을 대상으로 한 모성보호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 산업재해보상과 관련해서 성희롱은 위험요인으로 인정되기도 하지만, 노동세계 전반에 걸쳐 여성들이 공통적으로 놓여 있는 성적 위험과 불평등은 놓일 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노동을 통해 자신의 생계와 세계를 유지할 권리, 이를 지속할 수 있는 조건을 요구할 권리, 안전한 일터에 대한 권리는 여성들에게 더욱 멀게 느껴진다. 이는 남성에 비해 부차적인 노동으로 취급되어온 차별적 관행, 노동환경에 내재한 여성들의 안전 문제를 과소평가 해 온 역사와 맞닿아 있다. 안전점검원들이 투쟁은 성희롱과 같은 성적 위협이 노동환경과 산업안전의 문제로 다루어질 수 있어야 한다는 점과 그에 대한 사용자의 책임을 요구한다. 나아가 더 근본적인 문제의식을 던진다. 여성노동자가 자신의 권리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일할 권리와 함께 일의 세계가 여성의 노동 경험과 현실에 기초해 확장되고 재구성 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변화의 시작은 다시 여성노동자들로부터
피해자인 여성노동자를 아무도 보호해주지 않을 때 위험이 도사리는 일의 세계로부터 우리를 지켜낼 방법은 어디에서 시작될 수 있을까. 울산 시청본관 앞 농성장에 나타나 ‘국회에 가서 이 문제를 크게 키우라’고 한 경동도시가스 나윤호 사장의 본심은 고객에 의한 성적 위협을 사회적 문제로 의제화 하는 게 아니라 실사용자인 자신의 책임을 최대한 감추는 것이었다. 하지만 안전점검원들의 투쟁은 다른 자신들의 둘러싼 노동환경에 대해 실사용자의 책임을 이끌어냈고, 이는 다양한 일터, 다양한 노동환경에서 일하는 여성들의 ‘노동현실’ 또한 다르게 볼 수 있는 힘을 주었다.
가구방문 노동자와 같은 여성노동자들이 겪는 성적 위험은 주로 ‘제도적 사각지대’로 이야기되었지만, 그 사각지대는 저절로 발견되지도 저절로 개선되지도 않는다.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며 사회적 대안과 제도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등장하고, 다른 여성들을 통해 자신의 경험을 새롭게 명명하는 여성노동자들이 등장해야 한다. 여성노동자가 경험하는 성적 위험은 기존 틀에서 ‘노동현실’로 인식될 수 없었다는 사회적 성찰 없이는 사각지대는 인식조차 될 수 없다.
현대자동차 하청 여성노동자의 목소리는 성희롱을 직장 내 폭력의 문제이자 산업재해의 문제로 인식하게끔 했다. 콜센터 여성노동자들의 투쟁은 ‘통화거부권’과 같은 작업중지권이 왜 노동자에게 필요한지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공론화시키기도 했다. 안희정 성폭력 사건에서 성별 권력관계와 위력의 의미가 ‘다시 노동자이고 싶은’ 김지은 씨의 용기를 통해 확장된 것은 말할 필요도 없는 투쟁의 역사다. 그리고 이 일련의 경험들은 변화의 시작이 어디로부터 시작될 수 있는지를 안내한다. 성적 위협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노동환경, 노동자로서 안전하게 일할 권리를 보장하는 제도는 노동의 세계에서 홀로 존재하거나 사라지지 않기 위해 분투하는 다양한 여성들의 목소리를 이제 한국사회가 어떻게 ‘사회문제화’ 할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