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정확히 언제였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세월호 집회자리에서 노동조합 활동가가 발언하기 위해 무대 위에 올라왔다. 그때 옆에 있던 모르는 사람이 불만처럼 “왜 노조가 나와서 발언을 하느냐”며 중얼거리는 이야길 들었다. 정확한 의도를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아마도 세월호 참사와 같은 비극적인 사건에 노동조합이 자기 이야기를 끼워 넣으려고 한다는 인식이 깔렸지 않았을까 짐작만 할 수 있었다. 세월호 참사가 해운업계 노동이 외주화되는 과정과 무관하지 않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일터에서 어떤 조건에 놓여있는지와 무관하지 않다는 이야기가 이미 쏟아져 나왔음에도 말이다. 그때는 그저 당혹스러움으로 남아있던 장면인데 수년이 지난 지금 다시 그 장면을 떠올랐다. 지난 2월 9일 사랑방에서 함께하는 [다른 세계로 길을 내는 활동가 모임](이하 길내는모임)에서 주관하여 <노동자의 권리 조직화를 위한 노동조합과 사회운동의 과제>(이하 간담회)라는 이름의 간담회를 진행하면서였다.
“우리가 알던 모든 게 질문이야”
간담회는 노동자의 권리를 고민하는 활동가들이 모여서 지금 한국사회에서, 또 사회운동 안에서 노동조합의 위치는 어디쯤 놓여있는지, 그래서 다시 변혁 운동의 주체로서 노동조합운동은 어떤 가능성을 갖는지를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누어보자는 자리로 기획되었다. 노동조합에 소속되어 있는 활동가, 노동조합에는 속해있지 않지만 노동자의 권리를 고민하는 사회운동 단체 활동가와 변호사 등 함께 고민을 나누어주실 분들을 초청하여 길내는모임의 질문에서부터 논의를 시작했다.
길내는모임이 노동과 노동조합을 주목한 이유는 자본주의 체제에서 노동은 여전히 한 인간이 사회적 관계를 맺고 시민으로 인정받는 계기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이 맥락에서 노동자의 권리는 시민의 권리를 확장하기 위한 기획과 연결되어 있으며 이를 위해 역사적으로 꾸준히 노동자의 권리를 확장하기 위한 투쟁을 만들고 조직해왔던 공간으로서 노동조합 역시도 중요하다. 하지만 지금 한국 사회에서 노동조합은 여전히 그러한 공간인지 질문해보자는 것이 간담회 자리를 연 이유다. 지난 촛불 이후 지난 5년 한국의 노동조합 가입률은 유의미하게 성장했지만, 30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의 대부분은 여전히 노동조합에 가입하지 못하고 있다. 노동조합의 양적인 성장, 특히 공공부문에서 성장했지만 공정담론을 벗어나지 못한 채 비정규직 투쟁에서 사업장 노동조합을 벗어난 노조가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확인하기 어렵기도 하다. 이럴 때 우리는 어떤 질문이 필요한지 점검해보자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질문 세 가지를 준비했다. 먼저, 노동조합을 하기 어려운 노동자들이 많은 조건에서, 그래도 노동조합으로 조직하는 것의 의미가 있다면 무엇이고, 그걸 살리기 위한 사회운동의 과제는 무엇일까. 두 번째는 각자의 투쟁이 모두의 투쟁으로 확장되기 위한 요구를 어떻게 구성할 것인가. 마지막은 체제변혁을 위한 노동조합과 사회 단체의 공동활동을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였다. 이에 간담회에 참여했던 한 참여자는 길내는 모임의 문제의식이 “생각보다 노조는 소중한 거야. 그런데 이 주장 외에는 지금까지 우리가 알던 모든 게 질문이야 라고 이야기하”는 것으로 이해하면 되겠냐는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노동조합이라는 가능성
3시간 이상 진행된 간담회였지만 길게만 느껴지지 않은 이유는 많은 활동가가 현장에서 마주하는 고민을 꺼내어 나누는 시간이 좀처럼 드물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중에서도 중요하게 토론된 쟁점은 현재의 노동조합은 노동자의 권리 확장을 위해 어떤 가능성을 갖고 있는가였다.현재로서 노조는 노동자에게 법과 제도가 보장하는 유일한 권리 요구의 창구다. 그래서 노동조합이 변혁 운동의 가능성을 만들어내건 그렇지 못하건 상관없이 결국 온갖 노동운동의 요구가 모여도 노동조합으로 귀결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는 것이다. 이는 문재인 정부 들어서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 요구를 받아 민주노총, 한국노총과 같은 노조에서 노동조합 가입률이 늘어나서만이 아니다. 노동자 지위를 온전히 인정받지 못하는 라이더도 유니온을 만들고, 자신을 드러내고 권리를 요구하기 어려운 노동자들이 모일 수 있도록 온라인 노조를 시도한다.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 플랫폼 노동자, 특수고용 노동자가 권리 실현을 위한 방안은 다를지언정 노동조합으로 모이고 뭉치는 경로를 우회할 수 없다면 노동자의 권리 확장의 공간은 노동조합이 핵심적인 경로임을 먼저 확인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었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노동조합이라는 공간이 노동을 변혁 운동의 핵심처럼 여기고 다른 영역의 고민과 활동을 부차화시켜온 역사 속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평가도 함께 있었다. 성차별적이지 않은 사업장을 만들기 위해 노동조합은 어떤 싸움을 만들고 있는지, 산업 전환에 대응하는 것이 아니라 기후위기에 맞서기 위해 어떤 투쟁을 벼릴 수 있는지와 같은 질문에 답해나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지금 제도가 보장하는 노동조합의 영역은 오로지 임금과 노동조건 개선에만 국한되는 상황에서 노조가 자기 이익을 실현하는 방향으로만 움직여선 변혁운동의 계기가 만들어지기 어렵다는 사실도 인정해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조합원의 이익을 넘어서는 노동조합을 그리자
이번 간담회를 준비하면서 노동조합 활동가를 먼저 만나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그 활동가는 노동자가 노동조합에 가입하거나 만들기 위한 고민을 시작할 때 노조는 여전히 노동자에게 이전과는 다른 경험의 계기를 만들어내고 있고 노조 활동가는 그 과정에서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이야기를 했다. 노동자가 모이고 말할 권리를 요구하고 주장하기 시작하면 이전으로 돌아가기 어려운 경험이 만들어지고 그 과정에 활동가의 역할과 고민은 결코 작지 않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다른 세계로 길을 내보자는 모임에서는 결코 이 경로를 우회할 수 없다는 사실에서부터 출발해야 하지 않을까. 노동조합의 가능성을 한 발짝 떨어져서 평가하는 위치에 서기보다는 더 많은 가능성을 만들기 위한 사회운동의 고민이 함께 필요하다는 사실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
이런 문제의식이 간담회에서도 나누어졌다. “노조는 당연히 조합원의 이익을 위한 조직이라는 인식은 하나의 이데올로기”라는 이야기를 했던 한 활동가는 노조가 조합원의 이익만을 따를 때 사회적으로 할 수 있는 역할이 없어진다며, 노조의 역할이 그 이상이어야 함을 어떻게 만들어 낼 것인가를 함께 고민하기 위한 출발이 이번 간담회가 아니겠냐라고 말했다. 이를 위해 비록 첫술에 배부를 수 없겠지만 언젠가부터 단절되기 시작한 노동운동을 포함한 사회운동의 영역 간의 만남과 교류가 사라지다시피한 관계를 복원하기 시작해보자는 것이 간담회의 취지이기도 했다. 노동조합운동만 고민해서 노동자의 권리가 확장되지 않고, 다른 영역에서 외침이 노동을 우회할 수 없다면 더 자주 만나고 교류하며 노동자의 권리이자 시민의 권리를 확장하기 위한 계기를 만들어나가기 위한 자리와 계기가 더욱 펼쳐져야 한다. 그럴 때 앞서 말했던 세월호 집회와 같은 자리에 노조가 왜 나오는지 설명할 수 있고, 역으로 비정규 투쟁에 다른 영역의 운동이 그저 지지나 응원이 아니라 함께 싸우는 자리로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이번 간담회 이후 여전히 막연하지만 노동자의 권리를 확장하기 위해 다양한 고민을 펼쳐두고 다양한 영역의 활동가들이 만나기 시작하며 펼쳐놓은 고민을 하나씩 정리하고 모아가는 활동이 길내는 모임의 과제로 남아있다. 그 고민 앞으로 사랑방도 놓치지 않고 이어 나가보려고 한다. 그러다 보면 나에게도 노조가 왜 나오냐는 이야기에 조금은 어색해도 당황하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말 한마디라도 걸어볼 용기가 생겨나지 않을까 상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