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그 지역 대공장의 작업복을 시장에 가면 쉽게 구입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 지역을 ‘먹여 살리는’ 상징인 대공장에서 일하는 사람이란 것을 고스란히 드러낼 수 있는 작업복은 그 자체로 신분의 표식이다. 같은 작업장에서 일하지만 정규직이냐 비정규직이냐에 따라 색과 디자인이 다른 작업복을 지급하며 논란이 일기도 했지만, 이러한 차별은 여전하고 이젠 뉴스조차 되지 않는다.
그때 들은 이야기가 다시 떠오른 시간이 찾아왔다. ‘다른 세계로 길을 내는 활동가모임’에 함께 하며 ‘노동’을 키워드로 함께 고민을 이어왔던 동료 활동가들과 세미나를 했던 책 <분절된 노동, 변형된 계급>의 저자 초청 강연회를 열었다. 작년 한 해 노동자의 권리를 조직하는 과제를 노동조합운동만의 몫으로만 미룰 게 아니라 사회운동이 함께 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나누어 왔다. 이 책은 ‘현대시(市)’ 동시에 노동운동의 ‘성지’로 불리는 울산에서, 대공장 노동자의 노동세계와 생활세계가 어떻게 시공간적으로 형성되고 변화해왔는가를 역사적이며 구조적인 관점 속에서, 그리고 생생한 노동자들의 구술기록을 바탕으로 정리한다. 노동계급 형성 그리고 계급연대 실패의 궤적을 체계적으로 분석해 살핀 이 책을 통해 노동계급 재형성의 단초를 찾길 바라며 저자를 모셨다.
노동의 분절과 계급의 변형, 어떤 궤적이었나
저자는 책으로 묶여 나온 이 연구를 시작한 배경으로 2006년 당시 상황에 대해 복기했다. 원하청 공동투쟁의 기치가 무색하게 대공장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투쟁이 외면당하며 고립되고, 신자유주의 정책 기조 하에서 비정규직 ‘보호’라는 기만적인 말로 노무현 정권이 추진해온 기간제법이 결국 제정됐다. 하지만 기업별 노조에서 산별 노조로의 전환이 본격화되고 한편으론 ‘진보정당운동’의 힘이 분출되고 있는 시기이기도 했다. 이런 배경 속에서 울산 대공장 노조운동의 행방을 짚어보고자 시작한 연구라고 한다.
울산이 제1공업도시로 만들어지기까지 이미 일제강점기에 구상이 있었고 권위주의 국가의 개발정책에 따라 본격화된다. 1970년대 현대가 울산으로의 투자를 집중한다. 현대 계열 기업의 공간 집중이 이루어지면서 그곳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주거지 또한 지리적 밀집이 이루어졌다. 87년 이전 전국 각지에서 돈을 벌기 위해 이곳 울산으로 모여든 사람들의 노동조건과 작업환경은 ‘북한 강제수용소’에 빗댈 만큼 억압적 노동통제와 비인격적 대우가 만연했다.
87년 6월 민주화항쟁으로 열린 국면이지만, 앞서 회사의 부당한 대우를 비판하고 ‘불만’을 조직하며 준비해온 흐름 속에서 곧바로 노조를 결성한 현대엔진을 시작으로 노동조합을 만드는 흐름이 급속도로 전파됐다. 하지만 다른 지역과 달리 울산은 지역운동으로 교차하며 확장하지 못하고 현대 산하 기업들의 노조 중심으로 노동운동이 자리 잡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연대조직을 건설하는 시도가 좌절되는 시기, 한편에서 현대는 노동자대투쟁 이후 대노조 전략을 수립한다. 계급 연대를 추구하는 전투적 노조에는 강압적 배제를, 기업 내부의 노사협조 노선을 추구하는 타협적 노조에 대해서는 용인하는 이중적인 모습으로 노무관리를 본격화한다. 그리고 90년대 고도성장기였던 시기적 조건과 맞물려 회사에 고용안정성과 고임금을 주요 축으로 한 노동조합의 요구는 어렵지 않게 수용됐고, 이는 노조를 안정적으로 관리해가고자 하는 자본의 이해와도 맞닿았다. 이렇게 노조의 요구와 기업의 이해가 서로 맞물리며 내부노동시장을 안정적으로 유지, 발전시키는 과정은 한편으로 외부노동시장에 열악한 조건을 전가하는 것이기도 했다. 그리고 산업단지가 형성된 초기 이곳으로 유입됐던 노동자들이 시간이 흘러 가족을 꾸리고 부양해야 하는 시기가 되면서 주거문제, 교육비와 의료비로 기업복지에 대한 요구가 확대된다. 이러한 ‘사적 복지국가’의 ‘시민권’은 내부노동시장에 속한 내부자에게만 주어지고, 외부의 노동자에겐 미치지 않는다.
한편 노동자 밀집 주거지로 집단적 정체성을 확인할 수 있었던 도시에 신규 아파트가 들어서고 새로 인구가 유입되면서 노동자 도시로서의 특징은 흐려진다. 주택과 자동차 자가보유율이 다른 지역보다 월등히 높았던 울산의 ‘풍요로운 노동자’가 일하는 현실은 장시간 노동, 주야간 교대근무, 단순반복적인 노동과정, 거칠고 힘든 육체노동, 승진기회의 제한으로 굴러가는 공장의 세계다. 여기에 ‘중산층’으로 높은 소비구조를 감당하려면 더 많은 임금을 벌어야 하고, 임금의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성과배분에 따른 것이다.
일의 세계를 버텨내어 받는 보상에서 금전적인 것이 최우선시될 수밖에 없는 상황, 이러한 조합원의 자연스러운 욕구가 분명한 상황에서 노동조합이 평등주의적 원칙을 지향하거나 견지해가기 어려운 구조적인 조건이 있다. 물론 사내하청 노동자 투쟁에 원청 노동자가 함께 해온 역사가 있고, 지금도 연대의 흐름은 이어진다. 하지만 그 투쟁의 성격은 산업화 시기부터 지금까지 반백년의 시간 동안 임금인상과 고용안정으로 구축되어온 ‘내부’의 질서에 변화를 요구하며 경계를 허무는 것이다. 이러한 역사적, 구조적 조건을 볼 때 그간 좌절의 사례들이 불가피한 측면이 있고, 여전히 원하청 노동자 공동투쟁의 중요성이 강조되지만 원론적 차원에 그칠 뿐 현실이 되긴 쉽지 않다. 헌신적이며 투철한 수많은 노동조합 활동가들이 있지만 ‘내부’에 매몰될 수밖에 없는 조건이라는 점을 상기하며, 이들과 서로 영향을 주고받을 수 있도록 사회운동이 고민하면 좋겠다는 바람과 제안이 나누어졌다.
노동계급의 재형성, 그 가능성을 놓지 않고 다시
이어진 질문과 토론 시간, 역사적인 관점과 함께 구조적인 분석을 들으면서 그동안 노동조합운동을 규범적으로 봤을 뿐 사회운동이 이를 실현하기 위한 고민을 함께 하지 못했던 것 같아 반성이 든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한편으론 구조적 제약이 강조되면서 그간의 궤적이 행위자들의 끊임없는 선택들로 만들어져 온 것인데 주체의 문제가 간과되는 것에 대한 우려의 의견이 제기되기도 했다. 또, 자동차 판매 대리점에서 일하는 한 특수고용노동자는 정규직노동자들을 자신들만의 성과급 잔치에만 여념 없는 이들로 봤는데, 강연을 들으며 ‘입체적으로’ 보게 된 것 같다는 소감을 나누어주기도 했다.
내게 있어 울산 대공장 노동자의 표상은 87년 노동자대투쟁의 서막을 열었다는 ‘전설’처럼 여겨져 오다가 2000년대 ‘밥.꽃.양’ 영화를 둘러싼 소식과 함께 IMF 이후 정리해고에 맞선 현대차 노동자들의 파업에서 함께 싸워온 식당노동자가 ‘거래’된 이야기로 자리해왔다. 상반된 표상이지만, 둘다 복잡한 이면이 있고 그래서 하나의 가닥으로 이야기할 수 없는 분투를 간단하게 정리하며 대상화하는 데 그쳐왔음을 생각해보게 됐다. 지난 문재인 정권의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 정책 추진과정에서 반복된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대립과 갈등 속에서 이해당사자들의 문제로 왜곡하는 것에 사회운동이 운동사회가 제대로 선을 긋고 대응하지 못한 것도 겹쳐졌다.
이러한 좌절과 실패의 경험을 각자의 운동을 넘어 공동의 문제이자 과제로 같이 나누고 이야기하는 데에서부터 다른 가능성 찾기가 시작되는 것 같다. 이번 강연회를 추진하며 그렸던 ‘노동계급 재형성’이라는 과제가 어느 날 완성되는 목표가 아니라, 매 순간 만들고 쌓아가는 경험의 연속 그 자체일 수밖에 없다는 점도 분명해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