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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원인 인터뷰

서로 연결하며 길을 내고 계속 밟아 큰 길을 만들어야

현정희 님을 만났어요

의대 증원에서 시작된 혼란이 이어지는 요즘, 병원 노동자이기도 한 현정희 님을 만났습니다. 의료를 얘기할 때도 의료만 얘기해서는 안 되는 것처럼, 노동운동을 말할 때도 노동만 얘기하면 안 된다는 그의 ‘선 굵은’ 고민을 함께 나눠요. 

 

 

안녕하세요.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지금은,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서울지부 서울대병원분회 정책위원장 현정희입니다.

 

공공운수노조 위원장 임기를 마치고 노동조합 활동을 시작한 서울대병원으로 다시 온 소감이 어떤가요?

고향에 온 것 같아요. 돌아오니 여기 동료들이 참 대단하고 소중한 사람이라는 걸 훨씬 많이 느껴요. 노동운동이라는 게 거창해보이지만 이 사업장, 현장, 거리에서 사람들이 어울려 살고 연대하면서 우리의 질서를 찾아가는 거거든요. 더 나은 세상을 향한 꿈을 꾸고 실천하는 게 여기서는 훨씬 더 구체적이예요.

 

그런데 마침 돌아온 곳이 윤석열 정부의 의대 증원 사태로 많이 혼란스러운 것 같네요.

서울대병원으로 돌아올 때 의사들의 집단 진료 거부 상황까지 예상하지는 못했어요. 병원 경영진이 비상경영을 선포하고 노동자들한테 무급휴가를 쓰라는 식으로 나오는데 이번이 세 번째이에요. 첫 번째는 IMF 구제금융 때였어요. 국내외 자본이나 정부가 모조리 노동자들에게 책임을 전가하면서 대대적인 구조조정과 임금 삭감을 했잖아요. 그때 서울대병원이 비상경영을 선포하고 임금 삭감을 일방적으로 발표했어요. 실제로 경영 분석을 해봤더니 병원은 적자가 아니라 엄청난 흑자였다는 걸 밝혀냈죠. 그 해 조합원들이 파업 투쟁을 해서 임금 인상을 했어요. 두번째는 박근혜 정권에서였어요. 공공기관이 굉장히 무능한 부패집단인 것처럼 국민들과 갈라놓으면서 성과연봉제를 도입시키려고 했죠. 당시 공공운수노조가 공공기관 총파업을 만들어내면서 투쟁했어요. 국민을 상대로 이윤을 낼 수 없다고 외치면서 성과연봉제를 폐기시켰어요. 그때 2015년에 두 번째 비상경영을 병원이 선포했고 이번이 세 번째네요. 우리 갈 길을 헷갈리지 않으면 헤쳐나갈 수 있다는 마음은 가지고 있어요.

 

이번 사태의 발단이 된 윤석열 정부의 ‘의료개혁’은 어떻게 보시나요?

저는 시민들이 기대하고 노동조합이나 보건의료운동을 하는 분들이 말해온 의료개혁의 방향에 맞추려고 2천 명 증원했다고 보지 않아요. 의사가 늘어나야 한다는 얘기는 사실 십수 년째 나오던 얘기예요. 작년 가을까지 구체적인 수치도 내지 않다가 총선 코앞에 두고, 2천 명이라는 누구도 납득할 수 없는 숫자를 들이밀고, 일방적으로 추진을 한 거잖아요. 그런데 윤석열 정부는 어느 정부보다 의료민영화의 종합세트를 추진하고 있어요. 지역의료 필수의료를 위한 의사 증원이라는 건 앞뒤가 맞지도 않고 오히려 의료민영화를 더 심화시키는 방향으로 훨씬 센 힘을 밀어붙이고 있어요. 증원된 의사조차도 의료민영화의 도구로 이용하려는 거 아닌가 싶어요.

 

시민들 입장에서는 당장 눈 앞에 펼쳐진 사태를 보면서 윤석열이 추진하는 정책이 문제라는 것까지 생각하기 쉽지 않은 듯해요.

환자나 보호자들, 시민들 입장에서는 응급실 뺑뺑이, 소아과 오픈런, 자기가 사는 지역에서 필수의료를 해결 못 하는 등의 문제를 겪을 때 의사가 없다는 얘기를 많이 듣기도 했으니 일단 의사 늘려주겠다는 거에 호응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의사만 늘린다고 해결이 안 되는 이유를 많이 이야기하니까 시민들도 생각이 달라지는 것 같아요. 지금 정부든 야당이든 사회운동이든 시민들도 다 ‘필수의료와 지역의료 살려야 한다’ 이구동성으로 얘기하잖아요. 그런데 어떻게 살릴 거냐. 이 얘기가 더 수면 위로 올라와야 해요. 윤석열 정부가 말하는 대로 하면 해결되냐, 절대로 안 된다, 의사들 말대로 하면 되냐, 그것도 안된다, 그러면 어떻게? 우리 목소리가 나와야 할 자리예요. 그걸 잘 얘기하려면, ‘왜 이렇게 됐는가’를 말해야 해요. 소아과 오픈런이나 응급실 뺑뺑이는 빙산에서 떠 있는 일부예요. 더 큰 문제가 수면 아래 있고 거기에서 많은 사람들이 제대로 의료서비스를 받지 못하고 병들거나 죽어가요. 왜 이렇게 됐는지, 어떻게 해야 되는지, 앞면과 뒷면 같은 이 얘기를 우리가 더 많이 해야 해요.

 

우리가 함께 고민해야 할 의료개혁 방향은 어떤 걸까요?

의료는 자본주의 경제학에서도 예외로 보는 부분이에요. 그런데 우리 사회는 자본이 오히려 빠른 속도로 의료를 장악했어요. 의료가 완전히 시장화되니 여러 문제가 생겨요. 의료서비스 격차도 심해지고 과잉진료, 민간보험 등의 문제가 지역의료 필수의료 이런 부분과 다 연결이 돼 있어요. 당장의 묘책은 없어요. 옛날얘기처럼 들리더라도 일차 의료를 강화하고 동네 의원들이 최소한의 주치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하고 그 위에 의료 체계를 만들어서 지역 병상을 확보하고 권역별 공공병원을 만들어야 해요. 그리고 거기서 일할 의사와 노동자를 공무원으로 키워내야 해요. 공공의, 필수적인 노동을 하는 노동자들이 자신의 노동에서 소외되지 않을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야 해요.

 


작년 공공운수노조와 사회단체들이 함께 주최한 공공성 페스타 무대의 현정희 님

 

그런 변화를 만드는 중요한 조직이 노동조합이기도 한데, 우리 사회는 노동조합이 이기적이라는 인식도 강한 편이예요. 어떻게 느끼시나요?

외부에서 그렇게 보는 시선에는 이유가 있다고 생각해요.하지만 헌법이 보장하는 노동3권도 누리기 어려운 현실에서 노동조합에 너무 많은 책임을 부여하는 측면도 있다고 생각해요. 노동조합, 그리고 조직률은 그 사회가 노동자를 어떻게 대하는지 보게 하는 바로미터예요. 현재만이 아니라 과거와 미래까지. 노동조합을 냉소하는 사람들이 전체적으로 같이 보면 좋겠다는 바람은 있어요. 노동조합 이상으로 중요한 운동이 정치운동이라고 생각해요. 사회 전체를 통해서 한 사람의 의식이 만들어지는데, 노동조합 교육은 1년에 몇 시간 안 돼요. 364일을 주류 이데올로기에 쌓여있는 거예요. 노동조합은 자본주의 질서를 어지럽히지 않는 선에서 허락되는 것이기도 하지만 노동자들은 그걸 넘어설 변혁의 기운과 힘을 가지고 있어요.노동조합은 그래서 중요한 장소인데, 노동조합에 가입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경계를 어떻게 허무느냐가 또한 중요해요.

 

다시 그런 정치의 조건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건 뭘까요?

어떻게 하면 서로 녹아들게 할 거냐. 노동조합에서 노동만 얘기해선 안 돼요. 동시에 정치에서도 노동을 연결해야 해요. 그렇게 서로 스며들어야 해요. 노동이냐 젠더냐, 노동이냐 기후냐 이런 이분법이 서로 녹아들지 못하게 하는 게 문제예요. 노동하는 사람은 천차만별이에요. 노동 전체를 보면서 이런 사람들을 어떻게 연결해낼 건지가 중요해요. 의료를 얘기할 때도 의료만 얘기해서는 왜 지역의료와 필수의료가 사라졌는지 설명이 안 돼요. 사회 전체와 엮어서 얘기해야 해요. 그런 걸 이야기든 이론이든 형상화해내는 게 사회운동 역량이라고 생각해요. 윤석열 퇴진만 목표로 하는 건 부족해요. 우리는 우리 사회를 어떤 방향으로 어떻게 만들어갈 거냐, 이게 중요해요.

 

공공운수 노조 위원장 출마하면서 “각자 현장과 지역에서 고군분투하고 있지만, 서로를 연결하는 기획이 없다”며 ‘선 굵은’ 투쟁을 만들어야 한다고 하셨어요. 이런 과제는 운동 전체의 과제인 듯도 합니다.

촛불 이후에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가 중요한 흐름이었어요. 촛불의 기세도 있었고 대통령이 직접 언급하기도 했는데 현실에서는 무기계약직이나 자회사로 바꾸니 실망이 컸어요. 어떻게 투쟁해야 하나 온갖 목소리들이 섞여 나오던 때 제가 위원장으로 당선됐어요. 저는 노동운동이 전망을 제시하면서 흐름을 만들어갈 동력을 모아내는 게 부족하다고 봤어요. 개인이든 조직이든 전망이 있으면 힘든 과정도 덜 힘들게 넘어갈 수 있거든요.

공공운수노조는 조합원이 23만 명이 좀 넘는데 정말 다양해요. 덩치 큰 산별노조지만 유기적이지는 못했는데, 이걸 힘 있는 덩어리가 되게 하자는 게 고민이었죠. 그렇게 나온 게 ‘동네방네 공공성 구석구석 노동권’이었어요. 물론 쉽지는 않아요. 공공운수노조는 공공기관 정규직부터 라이더까지 고용형태도 너무 다르고 연봉도 차이가 커요. 철도, 의료, 보육, 건강보험, 지하철 다 다르니까 우리 안에서도 다른 부문을 잘 몰라요. 이걸 크게 묶어내야 자기 의제를 벗어나는 게 가능해져요. 2022년에는 ‘국민안전파업’을 했어요. 화물노동자들이 도로의 안전을 말하면서 싸우고 철도의 안전, 학교에서 아이들의 안전, 이게 노동자의 권리이자 우리 모두의 권리라는 걸 알리면서요. 단위 노조에서도 노력해야 하는 게 있는데 산별 차원에서도 세밀하고 치밀하게 모아가는 과정이 필요해요.

작년에는 사회단체들과 함께하려고 제가 직접 만나러 다니면서 같이 하자 제안했어요. 노동자가 파업하니 ‘지지해주세요’가 아니라 ‘함께 만들어갑시다’ 이렇게요. (사랑방은 안 오셨는데요?) (누가 “거기는 위원장님까지 안 가도 알아서 같이 할 겁니다” 그래서 안 갔어요) 중요한 건, 포기하거나 중단하지 않는 것. 포기하면 아예 안 되는 거고, 중단하면 확 뒤로 밀리는 거거든요. 더 나은 사회로 가는 길을 내고 계속 밟아서 진짜 많은 사람들이 갈 수 있는 큰길을 만들어야 해요. 이제 막 시도를 한 것은 성과인데 그런 길이 만들어졌냐 하면 그건 아직 아닌 것 같아요.

  


차별금지법 제정 운동에도 열심히 함께한 공공운수노조

 

노동조합이 뭘 하면 ‘지지’하는 관계를 넘어야 한다는 고민은 사회단체들에도 많아요. 그런데 쉽지는 않네요.

쉬울 거라는 생각은 안 했어요. 우리가 수십 년 동안 그런 걸 별로 해본 적이 없어요. 민주노총이나 산별노조들은 일상적인 연대활동이 약해지고 있어요. ‘우리가 싸우니까 오세요’ 이런 식이죠. 이유가 있다고 생각해요. 하나는, 우리가 운동에 대한 공동의 전망을 잘 못 만드는 거, 다른 하나는 그렇게 해온 관성. 그러면 어느 순간, 민주당이 정권을 잡을 때마다 운동하던 사람을 잃고 운동의 방향에 혼선을 겪는 것처럼, 자기 전망을 잃게 돼요. 정치권으로 간 사람들 비판한다고 해서 운동이 발전하는 게 아녜요. 우리가 더 명확하게 전망을 제시하고, 좀 험해도 이 길로 가자, 그러면서 사람들을 더 늘리고, 이걸 노조와 사회단체들이 같이 길을 내야 된다고 생각을 해요. 단체들이 지향하는 것과 노조가 지향하는 것의 공통점을 찾고 따로 또 같이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내는 과정이, 파업 투쟁 시기에 반짝하는 게 아니라 일상적으로 되어가기를 기대하는 거죠. 당장 달라지지 않더라도 ‘그래 난 저 사람이 무슨 얘기 하는지 알겠어’ 이런 경험들이 쌓이면 길이 넓어지는 거죠.

 

마지막으로 인권운동사랑방에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들려주세요.

내가 노조 간부들한테 인권운동사랑방 아냐 물어봤어요. 들어본 건 같은데 뭐 하는 데냐고 해요. 인권운동 하는 데지, 그랬는데 나도 그 다음 말을 못 찾겠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조합원이 물었을 때 ‘이런 거 하는 데야, 그리고 우리 이걸 같이 생각해야 돼’ 대답할 수 있는 걸 같이 만들자. 인권운동사랑방이 노동조합으로 더 연결될 방법을 찾으면 좋겠어요. 우리가 밥 먹고 숨 쉬고 물 마시는 것처럼 인권을 어떻게 생각하고 살아가면 좋을지 잘 보여주면 좋겠어요. 인권이 다 연결할 수 있는 다리가 되기도 하잖아요. 저는 평등을 최고의 가치로 생각하는데 평등을 위해서도 인권을 더 많이 교육하고 그걸 통해서 더 많이 연결돼야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