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인권선언 노동권에 대한 조항
제23조 1. 모든 사람은 노동의 권리, 자유로운 직업 선택권, 공정하고 유리한 노동조건에 관한 권리 및 실업으로부터 보호받을 권리를 가진다.
2. 모든 사람은 어떠한 차별도 받지 않고 동등한 노동에 대하여 동등한 보수를 받을 권리를 가진다.
3. 모든 노동자는 자신과 가족에게 인간적 존엄에 합당한 생활을 보장하여 주며, 필요할 경우 다른 사회적 보호의 수단에 의하여 보완되는, 정당하고 유리한 보수를 받을 권리를 가진다.
4. 모든 사람은 자신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하여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가입할 권리를 가진다.
제24조 모든 사람은 노동시간의 합리적 제한과 정기적인 유급휴일을 포함한 휴식과 여가에 관한 권리를 가진다.
2. 모든 사람은 어떠한 차별도 받지 않고 동등한 노동에 대하여 동등한 보수를 받을 권리를 가진다.
3. 모든 노동자는 자신과 가족에게 인간적 존엄에 합당한 생활을 보장하여 주며, 필요할 경우 다른 사회적 보호의 수단에 의하여 보완되는, 정당하고 유리한 보수를 받을 권리를 가진다.
4. 모든 사람은 자신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하여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가입할 권리를 가진다.
제24조 모든 사람은 노동시간의 합리적 제한과 정기적인 유급휴일을 포함한 휴식과 여가에 관한 권리를 가진다.
세계인권선언의 23, 24조가 규정하고 있는 노동권을 잘게 나누어 보면 다음과 같은 9가지의 내용을 담고 있다.
① 일할 권리 ② 자유로운 직업 선택 ③ 공정하고 유리한 노동조건 ④ 실업에 대한 보호 ⑤ 차별 없이 동등한 노동에 대한 동등한 임금 ⑥ 자기 자신과 가족에게 유리한 보수(필요하다면 보충되는) ⑦ 자기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가입할 권리 ⑧ 여가시간과 합리적인 노동시간을 가질 권리 ⑨ 유급 휴가를 가질 권리
이 모든 권리의 바탕에 깔린 핵심적인 생각은 인간의 노동은 착취되거나 가능한 한 가장 싼 값에 살 수 있는 상품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 하나하나를 합의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들 권리를 실질적인 것으로 만들기 위한 노력과 소위 ‘물타기’를 하려는 시도는 계속 갈등했다.
<국가 의무의 실종>
일할 ‘권리’는 선언에 있는데 일할 ‘의무’는 없다. 사회주의 국가나 라틴아메리카 국가들 대부분이 “모든 사람은 사회적으로 유용한 노동에 종사할 권리와 의무가 있다”는 식으로 표현되는 ‘의무’ 조항을 갖고 있었으나 선언에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서구 선진국들은 그런 조항을 갖고 있지 않았고 노동의 의무가 특정 국가들에서 강제노동을 유발할 수 있다는 우려를 표했다.
하지만 일할 의무를 선언에 넣지 않은 진짜 뜻은 다른 데 있다. 일할 의무는 곧 일할 권리와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일할 의무는 결과적으로 국가가 고용을 보장할 의무와 연결된다. 일할 의무의 삭제를 주장한 이들이 염려한 것은 바로 이 점이었다. 당시 많은 국가들이 직면한 것은 세계 대전 직후의 높은 실업률이었다. 병사들이 전쟁터에서 국내 노동 시장으로 돌아왔고 일하기를 원하나 일자리는 없었고, 실업이 곧 극복될 수도 없는 체제였다. 따라서 기본적 권리인 일할 권리를 언급하되 그것을 이행할 수단은 찾아봐야 하는 것이었다.
왜 일할 권리를 가진 사람에 대한 국가의 의무가 선언에는 언급되지 않느냐는 지적은 계속됐다. 소련을 필두로 한 사회주의권 국가들의 비판은 거셌다. 자본주의 국가들의 특성상 완전고용을 보장할 수는 없다고 해도, “실업 방지를 위해 효과적인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정도의 의무는 명시돼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체코 대표는 실업을 방지할 국가의무에 대한 언급 없이 실업으로부터의 “보호”를 말하는 것은 노동자들에게 주어지는 일종의 자선이라고 비판했다. 또한 노조 대표자들도 ‘실업 그 자체를 방지하는 것과 실업의 결과를 경감시키는 조치는 다르다’는 것을 강조했다. 모든 권리에 대해서도 그렇지만, 특히 새롭게 등장한 경제·사회적 권리에 대해서는 모호함을 피하기 위해 국가의 명확한 의무를 언급하길 원했다.
미국과 영국을 주축으로 이에 반대한 국가들은 “선언의 임무는 개인의 권리를 정하는 것이지 사회나 국가의 의무를 정하는 것이 아니”라는 입장을 유지했고, “노동의 권리에 노동을 제공할 의무가 암시된 것 아니냐, 그거면 됐다”는 반응을 보였다.
결국 양쪽 입장을 버무린 결과물은 “실업으로부터의 보호”로 표현된다. 여기에 노동권에 대한 국가의 의무는 명시적으로 나타나 있지 않다. 국가의 의무 부분은 노동의 권리 조항에서 언급하지 않기로 했다. 대신에 완전히 새로운 조항(22조)을 만들어서 의무를 언급했는데 구체적이 아닌 아주 일반적인 방식으로 표현됐다.
<자유로운>
원래는 “사람은 자신의 인격을 타인에게 양도할 수도 없고 타인에 대한 노예상태에 두어서도 안된다”는 제안이 있었으나 선언에는 들어가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노예상태에 해당하는 노동이건 아니건 그런 노동을 수락하는 건 그 사람의 맘이니까 괜찮다’는 취지는 전혀 아니었다. 선언의 다른 조항에서는 “그 누구도 노예나 예속상태에 놓여서는 안된다”고 했다. 이와 겹치기도 하거니와 상세한 규정은 국제조약을 만들 때 하자는 취지로 빠진 것이다. 결국 남은 것은 “자유로운”이라는 표현이며, 직업의 “자유로운” 선택에서 “자유로운”의 의미는 사람을 자기 인생의 창조자로 바라본 것이다.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가입할 권리>
선언의 다른 부분에는 이미 “결사의 자유”에 대한 권리를 다룬 조항(20조)이 있었다. 따라서 이 조항에서 노동조합 결사의 자유를 명시하는 것에 반대하는 의견이 있었다. 결사의 자유의 예를 일일이 열거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이유였다.
노동조합 결사권을 옹호한 편에서는 이런 주장을 펼쳤다. “다른 형태의 결사들은 오랫동안 인정받아 왔지만 노동조합은 많은 반대를 겪어 왔고 결사의 자유의 형태로서 받아들여지게 된 것은 극히 최근이다”, “노동조합 인정 투쟁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으므로 노동조합에 대해 구체적 언급이 돼야 한다”, “현대 경제생활에서 노동조합활동의 특별한 중요성 때문에 포함시키는 것이 현명하다”는 것 등이다.
이런 논쟁만으로 노동조합 결사권이 선언에 포함된 것은 아니었다. 세계의 노동조합들이 노동조합에 대한 권리를 세계인권선언에 넣자고 촉구하는 캠페인(“The Campaign for Trade Union Rights")을 강력히 펼친 후에야 가능한 일이었다. 세계노동조합연맹은 유엔 경제사회이사회에 전후 노조의 곤경을 분석·보고한 장문의 비망록을 보냈다. 경제사회이사회는 이 문제를 다루는 데 곤란을 느껴 국제노동기구(ILO)의 조언을 구했고, 국제노동기구는 세계인권선언에서 노동조합결사권을 다루는 것이 적절하다고 제안했다.
선언에서 노동조합결사권을 다루기로 하면서 또 논란이 된 것은 ‘클로즈드샵’이냐 ‘오픈샵’이냐의 문제였다(‘클로즈드샵’은 고용조건으로 그 회사와 단체협약권을 갖고 있는 노조에 가입할 것을 조건으로 하는 것으로, 그 조합에 가입을 거절하는 노동자는 고용되지 않을 수도 있고, 이미 고용돼 있다면 해고되거나 차별받을 수 있다. ‘오픈숍’은 앞에서 말한 조건을 이유로 인한 차별적 처우가 법으로 허용되지 않는 것이다). 결론은 노동조합 결사와 가입의 권리만을 인권으로 확인하는 것이었다. 클로즈드샵이냐 오픈샵이냐의 선택의 문제는 지역 상황에 따라 다른 것이고 노동자들이 결정하는 것을 따르는 것이 최상의 정책이라 보고 선언은 이 문제를 남겨두기로 했다.
마찬가지로 파업권에 대해서도 선언은 무간섭주의 접근을 택했다. 파업권을 지지한 국가들은 많았지만 이 문제를 일반적이고 추상적인 선언에서 다루기 어렵다는 이유로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 강력하게 파업권을 지지한 대표적인 국가는 스웨덴이었는데, 그 입장은 이랬다.
“파업권은 노동조합이 노동자의 이익 보호를 위해 가져야 할 도구이다. 모든 사람은 기존의 또는 제공되는 경제 조건으로는 일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여길 때 노동을 그만둘 권리를 갖는다. 기존의 또는 제공되는 경제 조건에서 일해선 안된다고 느낄 때 개별 노동자가 일하는 것을 그만 둘 자유에 의해 완성될 때에야만 결사의 자유는 시민의 자유로서 중요하다. 노동조합의 권리가 정당한 보수와 노동시간의 권리를 이행하기 위한 수단이라면 파업권은 노동조합의 권리를 이행하는 수단이다. 파업권 없이는 노동조합의 권리가 무의미하다. 나치 독일과 파시스트 이탈리아에서 노동조합은 계속 존재를 허용 받았지만 파업권이 없었다. 파업권 없이는 노동조합의 자유는 환각이었다.”
ILO가 정교화시킬 문제이며 선언에서 다루기는 어렵다는 반대에 이 제안은 철회됐고, 선언의 파업권 논의는 거기서 멈췄다.
<노동조건>
노동조건에 대해 다룬 23조 3항은 원래 “인간 노동은 상품이 아니다”라는 문구로 시작됐다. 이 문구는 비록 삭제됐지만 지금 있는 조항이 전하는 메시지는 마찬가지이다.
주목해야 할 점은 이 조항에서 처음으로 “모든 사람”이 아닌 “모든 노동자는”이란 표현이 등장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다른 조항(25조)에 있는 ‘사회보장의 권리’는 자신의 통제할 수 없는 이유들(질병, 장애, 노령 등)로 일할 수 없는 사람들의 권리를 다루는 반면, 이 조항에서는 이미 고용된 사람들에 대한 정당한 보상의 문제를 다루기 때문이다. “노동자 자신과 가족에게 인간적 존엄에 합당한 생활을 보장하여 주며”, “필요하다면 다른 사회적 보호의 수단에 의해 보완되는” “정당하고 우호적인 보수”가 노동조건의 내용이다. 이 내용에 대한 반대표는 단 두 표였는데, 미국과 영국의 표였다. 미국의 반대 근거는 ‘임금은 노동자의 필요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행해진 노동을 판단하여 정해진다’는 것이었다. 노동조건에 대한 이 조항은 이후 노동권 전체에 대한 부결로까지 이어지는 수난을 겪은 후에야 살아남게 된다.
<노동 시간의 합리적인 제한, 휴식과 여가의 권리>
‘노동시간의 합리적인 제한’을 다룬 독립적인 조항에 대한 삭제 요망이 강력했다. 그 이유는 ‘노동시간이란 계약에 의한 것인데, 사법적 가치가 없는 선언에서 그걸 제한한다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것’이었다. 선언의 가치 자체를 휴지처럼 만드는 이런 주장에 대한 반발은 물론 거셌다. 하지만 이 조항은 결국 삭제됐다가 나중에 별도의 조항이 아닌 “휴식과 여가의 권리” 조항이 만들어지면서 그 첫 문장에 붙이는 식으로 살아남게 됐다.
노동자의 휴식과 여가의 권리가 어떤 방식으로 이행되느냐에 대한 다양한 의견이 있었다. 선언에서 이를 모두 포함시킬 수는 없었기에 “휴식과 여가에 관한 권리”라는 말만 남게 된다. 하지만 단 하나의 조건, “유급”이라는 것은 반드시 포함돼야 했다. 임금 없는 휴식의 권리는 아무 의미가 없다는 의미였다. 선언에 쓰여 있지는 않지만 그 배경에서 논해진 휴식에 대한 도덕적 요구는 자본의 ‘강탈’에 의해 왜곡되지 않는 휴식, 외국인이나 사회취약계층을 배제하지 않는 휴식, 휴식이 요구될 때 사회의 불충분하거나 잘못된 여건으로 인해 왜곡되지 않는 휴식이다.
세계인권선언에 노동권 조항이 만들어질 당시에 노동자들이 유엔에 제출했다는 비망록에는 노동조합의 기반을 파괴하려는 시도들에 대한 성토가 가득 담겼다고 한다. ‘노조의 모임 장소를 대여할 수 없게 한다’, ‘단체협약을 맺는 것이 불가능하다’, ‘노동자에게 강요된 불의를 고칠 수단이 없다’ 등, 정말 어디서 많이 듣던 소리 아닌가? 세계인권선언의 노동권 조항은 노동자들 손아귀에 잡힐 때를 아직도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