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인권선언 제4조
어느 누구도 노예나 예속상태에 놓이지 아니한다. 모든 형태의 노예제도 및 노예 매매는 금지된다.
많은 사람들에게 ‘노예제’의 이미지는 지금까지 말한 18세기와 19세기의 노예무역이고 흑인노예이다. 노예제를 과거의 일로 여기기 때문에 오늘날에도 인간을 노예화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 사람은 드물다. 현대의 노예제는 아동노동, 채무노동, 농노, 노예혼, 트래피킹(특히 여성과 아동에 대한), 가사노동과 이주노동에 대한 착취를 포괄한다. 현대판 노예제의 은밀한 성격 때문에 정확한 숫자와 자료를 만드는 것은 어렵다. 하지만 유사 노예제 관행이 거대하고 광범위하다는 증거는 늘어가고 있다.
동산 노예제(Chattel Slavery)
동산 노예제는 현대판 노예제 형태에서 가장 드물다. 법적으로 거의 모든 나라에서 노예제가 철폐됐음에도 특정 지역에서는 동산 노예가 노동, 성, 양육을 위해 이용되며 낙타, 트럭, 총, 돈으로 교환된다. 동산노예의 자녀는 그들 주인의 재산으로 남아있다. 자유 노예 중에서조차 흔히 이전 주인에게 공물을 지불하며, 이전 주인은 자유 노예의 재산에 대해 상속권을 유지하는 관행이 남아있다. 내전 지역에서는 무장 세력이 마을을 습격하여 남자들을 죽이고 개인 재산으로서 여자와 아이들을 노예삼거나 경매와 판매를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채무노예(Bonded labor or debt bondage)
가장 현저한 것은 남아시아로 알려져 있다. 물론 법률은 노예제를 금지하고 있지만, 채무노동은 카스트 제도나 유사한 형태의 사회계층화 속에서 지역에 뿌리박혀있다. 채무 노동은 또한 선진국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들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채무 노동자는 얼마나 일을 해야 언제쯤 빚이 청산되는지도 모른 채 노예처럼 일한다. 보통 채무 노동자의 자녀는 부모의 채무를 물려받아 일하게 된다.
‘현대판 노예제에 대한 유엔 워킹그룹’은 약 2천만의 사람들이 여전히 채무 노동에 묶여 있다고 본다. 하지만 실제 숫자에 대해서는 계속 논란이다. 해당 정부의 추정치는 턱없이 적고, 인권단체들의 추정치와 10배 혹은 20배 차이가 나곤 한다.
아동노동
국제사회는 약 2억이 넘는 5~14세 아동이 노동하고 있다고 본다. 지역적으로 아시아-태평양의 아동 노동자 수가 가장 크지만 발생률은 사하라 남부 아프리카에서 제일 높다. 5~14세의 노동은 아프리카 모든 아동의 거의 30%에 육박한다.
아동노동에 대한 요구는 엄청나다. 쌀 뿐만 아니라 성인보다 다루기가 더 쉽기 때문이고 겁먹어서 항의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아동의 작고 빠른 손가락은 특정 종류의 노동에 더 적합하다는 이유로 동원되고 있다.
가사 노동자와 이주 노동자
이주노동자는 자신이 국민이 아닌 국가에서 임금 활동에 종사하는 사람이다. 현 세계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자기 나라가 아닌 곳에서 살려고 이동하고 있다. 일부는 더 나은 삶의 기회, 교육, 직업을 찾아가는 자발적인 이동이지만, 더 많은 경우에 이주는 강요된다. 사람들은 가난과 내전과 전쟁을 피해서 오로지 살아남기 위해 살던 곳을 벗어나야만 한다.
ILO는 “방법이 무엇이건, 임금기간이 무엇이건 간에 사적 가정에서 임금을 버는 노동, 이 일로부터 금전상의 이익을 전혀 얻지 않은 한 명 또는 몇 명의 고용주에게 고용될 수 있다”고 가사 노동자를 정의한다. 가사 노동은 대개 가정부, 유모, 요리사, 운전사, 정원사 및 기타 개인적 하인으로 종사한다. 일부 가사 노동자와 이주노동자는 유사노예의 조건에서 일한다.
지난 10여년, 외국인 이주 가사 노동자에 대한 착취의 증가가 ‘선진국’ 또는 ‘1세계’에서 현대판 노예제로 조명 받게 됐다. 외국인 가사 노동자들은 가장 침해받고 취약한 이주 노동자다. 노예로 산 것은 아닐지라도, 이주자의 기본적 인권은 쉽게 침해되거나 무시된다. 착취는 임금과 시간에 대한 침해로부터 신체적 및 성적 침해에까지 뻗친다. 문서화된 많은 사례들에서 고용주들은 이주 노동자의 법적 문서를 보관함으로써 이들의 이동을 제한한다. ‘노동자’로 간주되지 않기에 가사 노동자들은 노동보호입법으로 포괄되지 않으며, 착취의 손쉬운 대상이 되며, 언어와 여타 문화적 장벽 때문에 취약한 조건이다.
노예 혼인
어린 소녀나 여성이 혼인관계에 들어갈 것을 거부할 권리가 전혀 없을 때의 혼인은 ‘노예 혼인’으로 추정될 수 있다. 이런 결혼의 성사에서 어린 여성은 흔히 돈이나 다른 것으로 지불받으며 교환된다. 때로는 그 남편이 죽으면 다른 사람이 상속하거나 다른 누군가에게 팔린다. 일부 경우에는 어린 소녀와 여성이 부자인 나이든 남성과 결혼할 것을 강요받아 성적 노예 및 가사 노예가 된다. 노예혼은 유엔 협약에서 “노예제와 유사한 관행”에 포함돼 있고, 노예제 보충협약 1조는 이를 금지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노예혼이란 “(i) 거부할 권리가 없는 여성이 돈이나 어떤 종류의 지불에 근거한 혼인을 약속받는 것, (ii) 어떤 여성의 남편, 그의 가족, 또는 친척이 보상을 받고 그녀를 양도할 권리를 갖는 것, (iii) 남편의 사망시에 다른 사람에게 여성이 상속될 수 있는 것”이다.
트래피킹(Trafficking in Persons)
‘트래피킹’은 다양한 국제기관이 사용하는 용어로서 성매매를 포함한 착취적 목적을 위해 폭력의 위협 하에서 이뤄지는 사람의 이동(자발적인 것에서부터 강제적인 것까지 포괄된)을 말한다. ‘인신매매’라고 번역할 수도 있으나 트래피킹의 본래 의미를 다 담을 수는 없다고 보고 그냥 트래피킹이라 쓰고 있다.
1980년대부터 여성에 대한 트래피킹이 주목받았다. 유엔의 추정에 따르면 연간 7십만 명에서 2백만 명의 사람이 국경을 넘어 트래피킹되며 이들은 대개 여성이다. 2000년 유엔 트래피킹 의정서에 따르면 트래피킹이란 ‘위협 또는 폭력의 사용 또는 기타 형태의 강제, 유괴, 사기 또는 속임수의 수단으로 “착취를 목적으로” 사람을 모집, 운송, 이전, 은신 또는 수령하는 것’을 일컫는다. 여기서 착취에는 최소한으로 “타인의 성매매 또는 기타 형태의 성착취, 강제노동 또는 서비스, 노예제와 유사관행, 노역 또는 장기 제거”가 포함된다.
성적 착취를 위한 트래피킹 문제를 현대판 노예제로 분류하는 것이 적절하냐는 문제는 국제인권 무대에서 열띤 논쟁을 낳았다. 한편에서는 모든 형태의 성매매가 본질적으로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 격하시키며 착취하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성 노동을 여성이 자유롭게 선택하는 정당한 직업으로 방어하며 자기결정권의 중요성을 옹호한다. 논쟁의 핵심은 성인의 성매매가 자발적이고 강요에 의한 것이 아닐 때 정당한 노동형태로 수용돼야 하느냐는 것이다. 논쟁은 2000년 유엔이 트래피킹에 대한 의정서를 만들 때 극에 달했다.
트래피킹을 둘러싼 논쟁
반 트래피킹 운동 진영은 성매매를 위한 모든 형태의 징발과 이송을 동의여부와 상관없이 트래피킹에 포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여성의 ‘선택’이란 말에 문제가 있다고 본다. ‘선택’이란 사회경제적·문화적 맥락 속에서 이뤄지는 것이며, 이 맥락 속에서 여성의 권리와 지위에 대한 구조적 불평등을 봐야 한다는 것. 이런 구조 속에서 여성에게 선택은 제한될 수밖에 없다. 국가 정책과 실천은 여성의 가치와 지위를 향상시킬 수 있는 더 나은 교육과 고용 기회를 제공해야 하며 그럼으로써 여성에게 더 많은 선택의 여지를 줘야 한다.
반 트래피킹 운동 진영은 성산업을 인정하게 되면 성 불평등이 깊어질 것이며, 여성의 지위를 불명예스럽게 할 것이라 우려한다. 성매매에서 여성이 노동자로 여겨지면 포주는 사업가로 변신하며 구매자는 소비자가 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정부는 여성이 이용할 수 있는 존엄하고 지속가능한 고용을 만들 책임을 빠져나갈 것이다. 성매매 여성을 범죄자 처벌 대상에서 제외시키고, 여성과 아동을 사는 남성과 성적 착취를 도모하려는 사람은 누구든지 처벌해야 한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반면 성노동 옹호 진영은 성매매가 노동이며 트래피킹의 정의에서 ‘폭력적 강제’가 중요하다고 본다. 성산업의 대다수를 형성하는 것은 강요받은 순진무구한 사람들이 아니라 성 노동자라는 것이 조사결과이다. 여성은 상업적 성행위에 종사하는 것에 대해 고지에 입각한 스스로의 선택을 할 수 있다. 성노동 옹호 진영은 여성을 구제 또는 구조 받아야 할 존재가 아니라 자기결정권, 자기표현의 권리, 노동권을 가진 주체로 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성매매 철폐주의자들이 여성의 성매매에 동의할 능력을 부인하며, ‘강요된’ 성매매를 비난하는 데 몰두하느라 정작 자발적인 성노동자의 권리에는 아무것도 제공하지 않는다고 비판한다. 결국 성 노동자의 노동조건에 대한 어떤 기준도, 위생이나 공중보건, 안전에 관한 조항도 없고, 공식적으로 직업이 없는 존재가 되어버리는 것. 억압적이고 강제적인 트래피킹의 전설을 지우고 성 산업에 노동권과 여성권의 요소를 주입할 새로운 틀을 짤 사람은 바로 성 노동자들 자신이며, 이 새로운 틀은 억압받는 여성과 억압하는 남성이라는 틀을 넘어서야 한다는 것이 성노동 옹호 진영의 주장이다.
이처럼 트래피킹에 대한 최상의 전략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이 있지만 일부 조치들에 대해서는 합의가 있다. 트래피킹 피해자 또는 성노동자(입장에 따라 뭐라 칭하건)에 대한 주거·재정 및 법적 원조, 트래피킹된 사람을 수용한 국가의 사회적 서비스와 주거에 대한 권리 보장, 트래피킹 범죄자를 다루는 형사절차 과정에서의 여성 보호, 성을 파는 사람과 트래피킹 당한 사람을 범죄처벌대상에서 제외하기, 이들의 조직화 권리를 인정하기 등이다.
강제 노동(Forced Labor)
흔히 강제노동에 대한 오해가 있다. ‘히틀러의 강제수용소’처럼 전체주의 체제의 노동관행으로만 여기는 것이다. 반면에 다소 느슨하게 개념을 사용하여 저임금을 포함한 빈곤하고 건강에 좋지 못한 노동조건을 일컫는 경우도 있다. 일부 국가 입법에서는 임금의 체불, 법정최저임금 아래의 보수를 강제노동상황의 한 요소로 다루고 있다. 그렇지만 강제노동은 저임금 또는 열악한 노동조건과 단순히 동일시될 수 없다.
강제노동상황은 한 사람과 고용주 간의 ‘관계의 성격’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지 수행되는 활동유형(아무리 혹독하고 노동조건이 위험할지라도)에 의해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수행되는 노동이 불법이냐 적법이냐로 결정되는 것도 아니다. 예를 들어 ‘강제로’ 성매매를 하게 된 여성이 강제노동상황에 있는 것은 그 일의 비자발적 성격과 그녀가 위협 하에서 일한다는 것이지 성매매가 적법이냐 불법이냐와는 무관하다. 또한 그 활동이 잠재적으로 ‘강제노동’의 범위 내에 올 때는 공식적으로 ‘경제적 활동’으로 인정될 필요도 없다. 예를 들어 강제 하의 아동이나 성인의 구걸 행위는 강제노동으로 간주될 것이다.
ILO의 강제노동에 대한 정의는 두 가지 기본요소로 구성된다. 첫째, 동의 없이 비자발적으로 수행되는 활동이며, 둘째, 불응하면 벌을 가하겠다는 협박 하에서 강요된 노동이나 서비스이다. 예를 들어 물리적 납치, 빚을 지도록 유도하는 행위(통장 위조, 과장된 물가, 노동을 통해 생산된 재화나 서비스의 저가치평가, 과도한 이자 부과 등), 노동의 유형과 기간에 대한 사기 또는 거짓 약속, 임금의 보류 및 미지불, 신분 서류 또는 기타 가치 있는 개인의 소지품 압류, 성폭력, 노동자 자신 또는 가족, 가까운 사람에 대한 신체적 가해, 당국(경찰, 이주당국 등)에 대한 고발과 추방, 더 열악한 노동조건으로의 이전, 식량·주거 및 기타 필수물의 박탈 등의 위협이다.
강제노동은 또한 아동노동의 최악의 형태 중 하나이다. 1999년 ILO의 ‘최악 형태의 아동노동조약(제182호 조약)’은 권리를 가진 개인으로서의 아동이 제3자에 의해 벌 받을 위협 하에서 노동을 강요받을 때, 또는 가족 전체가 제공해야 하는 강제노동 내에 아동노동이 포함될 때 아동노동을 강제노동에 해당된다고 본다.
ILO는 현대판 강제노동의 현저한 특징을 다음과 같이 꼽고 있다. △국가가 직접 하기보다는 사적 에이전트가 수행한다. △빚을 지게 되는 것이 강제의 핵심요소이고, 폭력의 위협이나 노동자와 그 가족에 대한 제재로 뒷받침 된다. △‘미등록’ 또는 ‘불법’이라는 이주자의 불확실한 법적 지위로 인해 강제에 취약하게 만든다. 이들은 아주 착취적인 노동조건을 수락하느냐 추방의 위험을 무릅쓰느냐의 어려운 선택에 직면한다. △강제노동의 피해자들이 타국으로 트래피킹 되기 때문에 법의 사각지대에 있고, 감춰지고 은밀한 형태의 강제를 추적하기가 어렵다.
강제노동을 범죄로 처벌해야 하지만 강제노동이 상세히 규정되지 않아서 법집행기관이 위반자를 찾아내고 기소하기 어렵다. 따라서 강제노동을 단순히 법적으로 금지하고 범죄화하는 것 말고 국가가 해야 할 일이 있다. 강제노동의 덫에 빠질 위험을 줄이는 방식으로 노동시장정책 또는 이주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 강제노동의 뿌리인 차별, 박탈, 빈곤을 파고들어야 한다는 지적에 귀 기울여야 할 것이다.
덧붙임
류은숙 님은 인권연구소 '창'(http://khrrc.org) 연구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