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해자의 인권?
동네 비디오 대여점에 갔더니 어떤 남자 손님이 주인에게 '왜 이 집은 B양 비디오를 갔다놓지 않느냐'고 호통치고 있었다. 대다수 남성들은 자신의 섹슈얼리티 문제에 관한 한, 합법과 불법, 도덕과 수치, 대상의 경계...이런 개념이 없는 듯 하다. 우리사회에서 성폭력, 가정폭력, 성매매와 같은 여성에 대한 폭력이 법적 제재의 대상이 된 것은 아주 최근의 일이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행위에 국가가 개입, 처벌한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 그 동안 여성에 대한 폭력은 당연한 일상 문화이거나, 가족주의적 전통, '남녀상열지사', 혹은 여성에 대한 범죄가 아니라 남성들간의 범죄였다. 피해 여성을 소유한 가족, 국가에 대한 공격으로서, 남성의 '재산권' 침해를 의미했다. 여성의 몸이 남성의 소유라는 인식 때문에 여성 폭력은 범죄로 인식되기 어려운 것이다.
최근 여성에 대한 폭력(gender violence, 성폭력) 가해자를 처벌하는 과정에서 가해자의 '인권'에 대한 주장이 끊이질 않고 있다. 고소당한 가정폭력 가해자들은 '아내를 때리지 못하게 하는 현행법이 가정을 파괴하고 남편의 권리('인권')를 무시한다'고 주장한다. 이 문제라면 청소년 성매매 범죄자 신상 공개만큼 논쟁을 불러일으킨 것도 없을 것이다. 다른 범죄에 대해서는 범인으로 확정되지 않은 용의자의 이름이 언론에 공개돼도 그런 말을 하지 않다가, 유독 성폭력 가해자의 인권을 중요시하는 이유는 뭘까? 혹시 여성에게 해를 입히는 행위가 너무 당연하기 때문은 아닐까? 우리보다 인권 의식 높은 몇몇 국가에서는 가해자의 집, 차량 번호까지 공개하고 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성매매 가해자들이 '필요 이상?'의 처벌, 망신을 당하는 것은 가부장제의 부메랑이다. 당연하게 허용되어 왔기에 '재수 없어 걸린' 사람만 바보 취급을 받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가부장제가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억압해 온 두 가지 기제, 즉 성 보수주의와 성의 이중 윤리 때문이다. 성 보수주의 측면에서는 남성도 피해자가 될 수 있다. 다른 범죄에 비해 성범죄를 더욱 수치스럽게 인식하는 것이다. 성범죄는 법적 범죄가 아니라 도덕적, 인격적 수치로 간주된다. 흥미로운 사실은 강간이나 성추행, 원조 교제 행위가 안 걸리면 놀이요 재미가 되지만, 드러났을 경우는 곧바로 망신이 된다는 점이다. 정말 남성들의 평소 주장대로, 이 문제가 범죄가 아니라 남성의 당연한 권리라면 그토록 창피해야 할 이유도 없다.
성범죄 가해자의 인권은 피해자의 피해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고려해야 할 문제이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의 섹슈얼리티 피해는 시민권, 인간의 존재성, 그 자체의 훼손이기 때문이다. 물론 여성폭력 가해자들에게도 인권은 있다. 그러나 그것은 수사, 재판 과정에서 고문을 당하지 않을 권리, 수감 중 재소자로서의 인권에 한정된다.
(정희진은 한국여성의전화연합 전문위원, 『저는 오늘 꽃을 받았어요:가정폭력과 여성인권』의 저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