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에 넘쳐나는 ‘인권’이라는 말 속에서 우리는 무엇에 주목하고 어떤 이야기를 이어가야 할까요. 함께 생각하고 나누기 위해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들이 매주 하나의 주제에 대해서 논의하고 [인권으로 읽는 세상]을 씁니다. 기사 제휴를 통해 프레시안과 비마이너에서도 읽으실 수 있습니다.
더 많이 검사하면 방역에 성공할 수 있을까? (4월 1일자)
"누구나 코로나19 무증상 감염자일 수 있습니다." 귀에 익은 안내방송. 그런데 열심히 검사를 받다보면 코로나19를 막을 수 있을까요? 검사를 받아야 할 때 받을 수 있는 조건을 만들지 않고 검사 수만 늘리는 것은 방역과 상관이 없습니다. 코로나19 방역을 위해 무작정 검사만 늘리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 필요할지 고민이 필요한 때입니다.
주택, 자산시장 소용돌이의 한 가운데에서 (4월 8일자)
'부동산 시장' 선거가 끝났습니다. 그런데 대책이라곤 여야 없이 아파트 공급해서 시장가격 안정시키겠다는 대책밖에 없습니다. 수도권 주택보급률이 99%는 이미 넘는 상황에서 비싸고 좋은 아파트 지어서 팔겠다는 이야기만 나옵니다. 그러니 주택이 사는 곳이 아니라 투자상품이 될 수밖에 없지 않을까요. 우리에게 필요한 건 공정한 부동산 시장이 아니라 주거권입니다.
청년, ‘세대’가 아니라 삶의 조건을 살피자 (4월 15일자)
서울 시장 보궐선거를 마치고 청년 세대의 지지를 두고 말들이 많습니다. 이념이 아니라 실리를 따지는 ‘개인’중심의 세대가 등장했다고도 하고, 공정성, 페미니즘에 유독 민감하게 반응한다고도 합니다. 가만히 듣다 보면 청년은 같은 사회를 살고 있지 않은 것처럼 느껴질 지경인데요. 세대론만 반복하지 말고 청년과 함께 살고 있는 우리의 삶의 조건부터 살펴봐야 하지 않을까요.
가산점 쥐어 주는 차별의 정치를 넘어 (4월 21일자)
여성과 소수자의 권리를 보장하라는 요구도, 능력에 따라 동등하게 보상하라는 말도 모두 차별을 거부한다는 측면에서 평등의 감각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문제는 어떻게 연결시킬 것인가입니다. 하지만 지금껏 정치권은 차별을 거부하는 이야기를 모아내기는커녕 더 공정하게 개인을 줄 세우고 일부에게 할당하는 정치만을 펼쳐왔습니다. 능력있는 개인만 보상하겠다는 정치는 이제 손절해야하지 않을까요. 평등을 감각하는 반차별의 정치가 필요한 때입니다.
'자신들만의 정의'에서 여성노동자의 정의로 (4월 29일자)
위력에 의한 성폭력 사건에서 주목해야 하는 것은 가해자가 어떤 사람인지가 아니라 성폭력이 발생한 구조입니다. 여성 노동자가 놓여있는 조건을 살피기는커녕 가해자가 ‘그렇게 몹쓸 사람’이었는지 주목한 민주당이 오세훈 서울 시장의 사과를 의미 있게 만들어준 것입니다. 여성 노동자의 일터를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을지는 제대로 응답하지 못하는 그 사과를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