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을 앞두고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이 두 보수 양당의 행보에 저절로 한숨이 나온다. 대선 최대 ‘캐스팅보터’로 떠오른 청년의 표심, 그중에서도 청년 남성의 표심을 붙들기 위해 ‘젠더갈등’ 프레임이 또다시 등장했다. 성차별적인 공약만 두고 본다면 두 당을 구분하기가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다. 차별 없고 성평등한 세상에 대한 정치가 실종된 암담한 상황에서 지금 우리는 무엇과 싸워나가야 할까.
민주당의 방패막이, “젠더갈등”
2018년 말 언론과 정치권은 20대 남성의 문재인 정권에 대한 지지율 하락을 주목했다. 곧바로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는 ‘20대 남성 지지율 하락요인 분석 및 대응 방안’ 현안보고서를 발간하고, 지지율의 성별 격차를 곧 젠더갈등으로 쟁점화했다. 보고서는 지지율 하락의 구체적인 기점을 불법촬영에 대한 편파수사를 규탄하는 혜화역 시위로 잡았다. 나아가 남성 중심 사회에서 여성이 겪는 폭력과 차별의 문제를 제기하는 이들을 이기적인 집단으로 규정하는 한편 정부 여당의 친여성정책이 20대 남성 역차별과 박탈감의 원인이 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20대 남성의 지지율이 하락할 때 20대 여성의 지지율도 동반 하락하였다는 점은 주목하지 않은 채, <20대 남성에게 듣는다>와 같은 간담회를 열어 ‘억울한’ 20대 남성 청년들의 문제 해결사를 자처하고 나섰다.
청년 남성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겠다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에 대한 청년 세대의 지지율은 성별과 무관하게 계속 하락했다. 그 정점은 오거돈, 박원순으로 이어진 지방자치단체장 성추행 사건을 거쳐 치른 재보궐 선거였다. 반복되는 권력형 성폭력에 책임있는 공당으로서 당내 성평등 인식 제고를 위한 고민과 실천을 했어야 할 시점이었다. 그런데 오히려 피해자를 두고 ‘피해호소인’이라 칭하며 성평등은커녕 남성 중심성을 강화하는 전략을 구사하며 표심잡기에 나선 것이다. 민주당이 자초한 재보궐선거라는 사실을 망각한 듯한 행보에 오히려 안티페미니즘을 내걸었던 국민의힘이 득세하며 20대 남성의 표심을 흡수했다. 여기에 그나마 남아있던 20대 여성의 표심마저 이탈하며 재보궐 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은 참패했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민주당의 선거 패인을 ‘여성주의 운동에만 올인한 결과’라 평한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의 분석을 그대로 받아안고 민주당은 또다시 선거 패배의 원인을 ‘페미니즘’에 돌렸다. 민주당의 반복된 ‘페미니즘 탓’은 국민의힘이 반페미니즘을 밑천 삼아 회생할 수 있는 정치적 활로를 열어주었다. 민주당 내에서 역차별당하는 청년 남성을 챙겨야 한다는 목소리는 더욱 커졌다. 정작 역차별 논란의 중심이 된 여성할당제의 실체가 무엇인지, 남성 청년들은 무엇을 답답하게 여기는지 실증적이고 근본적인 근거는 규명하지 않았다. 정치가 청년실업, 일자리 부족, 주택난, 빈곤 등 불안한 노동시장과 경제적 위기의 문제에 응답하지 않고, 그 불만을 오로지 젠더 문제로 치환한 것이다. 젠더 갈등 프레임은 어느새 현 정부가 필요할 때 적극적으로 차용할 수 있는 방패막이자 손쉬운 알리바이가 되었다. 그 결과 20대 청년 담론은 무엇을 주장해도 젠더갈등 구도 안에 갇히고 말았다.
젠더갈등 정치가 평등의 감각을 무너뜨린다
2018년 미투 운동이 문화예술, 정치, 교육, 스포츠, 종교계 등 사회 각 분야로 퍼져나가며 일상에서 겪는 성폭력에 대한 고발이 이어졌다. 불법 촬영물 편파 수사를 규탄하는 시위가 열렸고 여성들은 정치적인 주체로 결집했다. 그 분노의 자리에 여성가족부 장관도 참여하며 성차별이 없는 날이 올 때까지 정부도 더 노력하겠다는 의지를 밝혔고 경찰청장은 여성폭력에 대한 국가의 책임 있는 대응을 약속했다. 이후 n번방 성착취 사건과 세계 최대 아동성착취사이트 웰컴투비디오에 이르기까지 디지털 성범죄에 관한 사회적 공분 속에서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일부 개정되었다. 오랜 요구였던 낙태죄 폐지와 스토킹 처벌법 제정은 다시는 차별과 억압의 세계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대중의 힘이 만들어낸 장면이었다. 여성에 대한 차별과 폭력을 용인하는 남성중심적인 사회구조 응답하게 하고, 성평등에 대한 감각을 키워왔다.
하지만 지금 민주당의 ‘젠더 갈등’ 운운은 이 감각을 완전히 후퇴시키고 있다. 더이상 이를 방관해서는 안 된다. ‘남성 경찰에 대한 차별을 바로잡겠다.', '공기업 승진에 군 경력을 반영하고 군 가산점 재도입을 추진하겠다.', ’여가부를 개혁하겠다‘, ‘여성이 차별받지 않아야 하는 것처럼 남성도 차별받지 않아야 한다.’ 민주당은 갈등 해결을 위한 조정자를 자처한다. 민주당의 ‘남혐여혐둘다싫어위원회’가 대표적이다. 성차별을 시정하기 위해 노력하고, 더욱 평등한 세상을 위한 공론을 주도해야 할 정치가 현실 세계의 성별 권력 관계를 은폐하며 여성과 남성의 갈등으로 둔갑시킨다. 차별과 혐오를 선동하는 주장을 정치가 귀담아들어야 할 유의미한 ‘의견’으로 대우받도록 만드는 것이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두 정당이 대선 승리를 위해 중요하게 참조하는 정치인이 오랜 시간 여혐논란을 불러일으킨 홍준표 의원이라는 점에서 적대적이지만 공생하는 정치 관계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민주당은 페미니즘을 정치적 수사로 활용했던 과거와 거리를 두기 위해 여념이 없고, 국민의힘은 마치 우리가 진짜 안티 페미 정당이라는 인상을 심어주려 안간힘을 쏟는다. 민주당이 짠 ‘젠더갈등’의 판에 국민의 힘이 함께 뛰어들면서 정작 살펴야 하는 청년의 삶도, 개혁되어야 할 정치의 장도 모두 집어 삼켜지고 있다. 정치가 차별에 맞서며 평등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차별과 혐오의 논리로 평등을 적극적으로 막아서며 페미니즘이 벼려온 평등의 감각마저 무너뜨리고 있다.
차별의 정치를 끝내야 한다
우울하게도 당장은 이 젠더갈등 구도가 해체되기보다는 더욱 견고해지고 이를 밑천 삼은 보수 양당체제도 유지될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구도야말로 지금 우리가 맞닥뜨린 정치 현실이자 깨뜨려야하는 과제임이 분명하다. 지금 우리에겐 평등한 관계를 조직하며, 차별에 단호히 맞서 싸우는 정치가 필요하다. 페미니즘을 문제로 진단하는 정치세력이 아니라 페미니즘을 다양한 정체성과 삶을 드러내는 도구로, 억압과 폭력을 가능하게 하는 지배적인 구조를 밝히는 운동으로 받아들이는 정치가 필요하다. 그럴 때 우리는 무엇이 우리를 억압하고 차별하는지, 무엇에 맞서 싸워야 하는지를 분명히 알 수 있다.
이제 누군가의 존재와 목소리는 지우고, 기득권은 유지하는 정치는 폐기되어야 한다. 그 변화를 위해서 젠더갈등 프레임을 만들고 동시에 갈등의 해결자를 자처하는 모순을 깨뜨려야 한다. 모든 사람이 차별과 억압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는 성평등의 가치가 구현되기 위해서 이 변화의 주체되기는 여성들만의 몫도 아니고, 페미니즘을 주창하는 여성운동의 몫도 아니다. 이 차별의 정치를 끝장내고자 하는 ‘우리’ 모두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