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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교육, 날다] 쟁점토론을 통해 구체적 권리조항 만나기

인권교육 오르락내리락 고개넘기 기초2워크숍

사람이라면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위해 필요한 권리. 인권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할 때 가장 먼저 떠올리는 말이다. 그리고 이 인권의 보편성은 모두가 공감하는 말이기도 하다. 인권교육을 진행할 때도 이 지점에서 출발하는데 논의가 진행될수록 ‘그래도 그건 쫌...’, ‘아직 우리 사회 인식이 거기까지는...’을 거치면서 종국에는 ‘그래서 인권이 뭐야?’로 되돌이표를 찍기도 한다. 사람이 누려야 할 권리라고 하지만 그 권리를 누릴 수 있는 ‘사람’의 범주는 각기 다르게 나타난다. 그래서 나에게는 중요한 권리였던 내용이 어린이/청소년이나 이주민에게로 가면 위험한 것이 되기도 하고, 나와 다른 상황에 놓인 사람들의 처지에 대해 무관심함이 드러나기도 한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버스를 타고 학교나 일터에 가거나 좋아하는 사람과 연애를 하는 일이 누군가에게는 쟁취해야 할 권리라는 것을 미처 고려하지 못한다. 인권이 보편적으로 향유되기 위해서는 권리의 선언이 아니라 각각의 사람들이 처한 상황과 맥락 속에서 요구되는 권리들이 무엇인지 살피는 일이 중요한 이유이다.


날개달기 - 인권을 구성하고 있는 권리들

대개 우리가 권리를 이야기하는 때를 살펴보면 그 권리가 훼손되거나 침해된 경우이다. 어떤 사람들이 권리를 보장받고 있지 못한가? 그 사람들이 요구하고 회복하려고 하는 권리들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들일까?

인권을 구성하는 구체적인 권리들을 찾아보기 위해 몇 가지 키워드를 중심으로 접근해보기로 했다. 몸의 자유, 마음의 자유, 평화적 생존권, 사회경제적 존엄, 저항과 불복종. 모둠별로 원하는 키워드를 선택하도록 한 후, 각 주제에 관한 국제인권대회를 기획하도록 주문한다. 주제별 인권대회에 꼭 참석해야 할 사람들은 누구이며, 그들은 어떤 주장을 할까? 참석자들이 요구하는 내용이 무엇일지 생각해 본 다음 ‘~할 권리’의 형식으로 피켓을 만들어서 국제인권대회를 열어본다. 물론 전지에 각각의 권리주체와 그들의 구호를 적어 집회를 여는 것이다. 예를 들면 “몸의 자유, 국제인권대회”에는 체벌을 당하는 학생들이 ‘맞지 않을 권리’, ‘매를 붙잡을 권리’, ‘폭력으로부터 자유로울 권리’ 등의 피켓을 만들어 참여하지 않을까.

일단 모둠별 작업이 완료되면 전지를 옆 모둠으로 이동한다. 인권대회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들이나 그들의 주장에 대해 공감이나 반론을 제기할 수도 있고, 초대받지 못한 권리 주체들이 있다면 추가할 수도 있다. 이렇게 전체 참여자들의 의견을 거쳐 원래 모둠으로 돌아오면, 모둠 내에서 미처 생각하지 못한 권리의 주체나 내용은 무엇이었는지, 어떤 권리들이 좀 더 논의되고 확장될 필요가 있는지 살펴보고 쟁점이 되는 권리들은 전체가 함께 토론해 보기로 했다.

더불어 날개짓 - 앗, 뜨거운 권리들

각 모둠에서 찾은 권리들을 살펴보면 장애인 화장실을 성별에 따라 이용할 권리, 이주민들이 안정적으로 체류할 수 있는 권리, 공무원들의 정당가입과 같이 사회 구조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처해 있는 구성원들이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동등하게 권리를 보장할 것이 요구되기도 하고, 핵 없는 세상에서 살 권리, 무상의료나 무상교육과 같이 사회구성원 모두에게 필요한 권리도 있었다. 이러한 권리들은 애초에는 몸의 자유, 사회경제적 존엄과 같이 주어진 범주에서 접근하였지만, 아래의 결과들을 살펴보면 서로 교차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인권이 자유권, 사회권 등으로 분리되거나 개개의 항목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 연결되어 서로 지지하거나 강화함을 확인할 수 있었다.

(↳ 는 다른 모둠을 거치면서 덧붙여진 권리들)

<몸의 자유>
-장애인: 장애인 화장실을 성별에 따라 이용할 권리, 리프트를 타지 않을 권리, 취향에 맞는 옷을 입을 권리,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울 권리, 사진 찍히지 않을 권리
-여성: 낳고 싶은 만큼 낳을 권리, 여성도 다리 벌리고 앉을 권리, 히잡을 벗어 던질 수 있는 권리
↳피임할 권리, 여성만 할 순 없다. 피임을 거부할 권리
-전쟁터, 가정폭력 피해여성, 학대받는 아동 등: 피난처를 구할 권리
-트랜스젠더: 성별 구분이 없는 화장실을 이용할 권리
↳ 성별을 택할 수 있는 권리
-아동, 청소년 : 함부로 만지지마
-이주민: 안정적으로 체류할 권리
-20대 남성: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 내 청춘을 구속하지마
-이주민, 난민 등: 어디든 갈 수 있는 권리
↳대중교통 맘 편히 탈 수 있는 권리
-이주민, 노동자 등: 감시당하지 않을 권리
↳공항 등에서 선별되어서 내 몸을 검열 받지 않을 권리
-청소년, 이주민, 장애인, 여성 등: 맞거나 이용당하지 않을 권리, 나만의 공간을 가질 권리

<마음의 자유>
-양심적 병역거부자: 총을 들지 않을 권리
-감정 노동자: 웃고 싶지 않을 때 안 웃을 권리
-텔레마케터: ‘솔’음을 내지 않을 권리, 강요된 멘트를 하지 않을 권리, 고객을 사랑하지 않을 권리, 진상고객을 대우하지 않을 권리
-촛불집회 참여자: 생각한대로 말할 수 있는 권리
↳혐오발언은 안돼요. 타인의 인권을 존중하는 선에서~
-성소수자: 성별과 상관없이 사랑할 권리
↳서로 사랑하는 LGBT커플: 거리에서 뽀뽀할 권리
-회사원, 단체활동가: 상명하달 같이 강요된 조직의 문화에 이의를 제기할 권리
-국가보안법으로 구속된 교사, 공무원, 대학생: 정치, 사상의 자유를 가질 권리
-공무원, 교사, 군인: 정당에 가입할 권리
-30대 여성: 결혼하고 싶을 때 할 권리(떠밀지마)
-종교수업을 하는 학교의 학생: 원치 않는 종교수업에 참여하지 않을 권리
-정치인 비판할 권리, 짭새를 짭새라 부를 권리, 애국심을 강요받지 않을 권리

<평화적 생존>
-핵 없는 세상에서 살 권리
-집시법 없는 세상에서 살 권리
-전쟁 없는 나라에서, 전쟁의 위협에서 벗어나 살 권리, 종교 분쟁 없는 나라에서 살 권리
-군대에 끌려가지 않을 권리, 군대 없는 세상에서 살 권리
-전쟁, 고문, 폭력 등 후유증에서 벗어나 치료를 받을 권리
-국가유공자: 정당한 보상을 받을 권리

<사회경제적 존엄>
-보상금 필요없다! 내 땅에서 농사지을 권리
↳돈이 아닌 가치 중심의 삶을 살 권리, 임금이 적은 일이라고 무시당하거나 불쌍하게 보지 마
-철거민의 주거권 인정하라. 생존권, 적절한 보상을 청구할 권리
-재개발 중단, 사유재산을 보호받을 권리
↳사유재산을 앞세워 인권을 침해하는 제도
-대형마트, 본사만 살찌우는 불공정거래법 OUT, 소규모 상권을 보장받을 권리, 프랜차이즈 기업 내 소규모 자영업자들의 이익을 추구할 권리
-장애인도 버스를 타고 싶다.
-청소년에게도 적합한 노동의 대가를 제공하라
-노인에게도 일자리를 제공하라
-원전의 위해, 핵위협에서 벗어나 살 권리
-무상의료권(필수의약품, 긴급치료부터), 사보험 없이도 불안하지 않은 세상
-원하는 교육 선택하고 무상으로 배울 권리(전체 시민 평생지원)
-기본소득 보장, 사회공공성 확보
-혐오시설로 인해 나의 재산을 침해받지 않을 권리

<저항과 불복종>
-국책사업에 따른 강제 토지수용을 거부할 권리(주인 ‘땅’을 마을 개념으로 확대해석)
-국적이나 법적 등록 없이도 살 권리
-소유권에 우선하는 점유할 권리
-저항권을 무력화시키는 벌금, 손해배상 폭탄을 폐기시킬 권리
-가정폭력에 저항할 권리: 매 맞는 아내, 남편 아동학대 금지
-대통령을 소환할 권리
-결혼한 여성에게 부당하게 요구되는 대우를 거부할 권리
↳주부도 파업할 권리, 육아, 가사노동 하루 8시간만 할 권리
-부당한 규칙을 위반할 권리
-착함, 순종에 저항할 권리
-대학거부, 입시거부, 일제고사 안 볼 권리
-단결의 자유, 교섭의 자유, 파업의 자유를 완전히 보장받을 권리
↳수업거부권, 학생도 파업이라고 해줘

참여자들 대부분이 각각의 권리에 공감하였지만 몇몇 권리들에 대해서는 다른 식의 접근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있었다. 어떤 지점에서 의견이 갈리는지 혹은 내용에는 동의하지만 이를 뒷받침할 논리를 찾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닌지 쟁점토론을 이어갔다. 여러 권리에 대한 이야기가 오고 갔는데 여기서는 몇 가지만 추려 소개한다.


<몸의 자유>로 주장된 낙태와 관련하여 태아의 생명권과 여성의 권리가 모두 중요하기에 얼핏 두 권리가 충돌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이는 그 이전에 적극적으로 보장받아야 할 권리가 박탈되면서 소극적이 되거나 양비론으로 접근하게 된다는 의견이 이어졌다. 또한, 낙태가 ‘태아를 떨어뜨린다’는 용어로 반인권적인 측면만 강조되면서 그 일이 행해지는 몸의 주체인 여성은 사라지는 점을 고려할 때 원치 않는 임신으로부터 자유로울 권리와 같이 바꾸어서 생각해보는 시도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시되었다. 아동을 대상으로 한 성폭력범 등에 대한 전자발찌나 화학적 거세 등 처벌이 강화되고 있는 문제도 쟁점이 되었다. 피해자 지원은 없이 가해자 처벌에만 무게를 두는 것은 나아가 잠정적 가해자, 즉 모든 이의 인신을 구속할 위험이 있다는 우려가 있었다. 또한, 성범죄에 대해 한 개인의 성욕이 제어되면 해결될 수 있다는 식으로 접근하면서 범죄를 개인에게서 찾는 방식에 대한 문제 제기가 우선해야 함을 짚었다.

<사회경제적 존엄>의 경우 ‘사유재산을 침해받지 않을 권리’가 가장 쟁점이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권리를 주장하는 배경에는 사유재산이 단지 한 개인의 재산권 보호가 아니라 ‘내가 살고 있는 터전을 빼앗길 수 없다’는 다른 의미가 내재되어 있었다. 사람들이 살아온 공간에서 평화롭게 살아갈 권리라고 할 때 이것은 분명 보장되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가 찾은 많은 권리들이 현실에서는 철거민의 경우나 집회시위에서 손해배상이 청구되는 경우와 같이 사유재산에 막혀 침해되는 경우가 많아 우리가 어떻게 ‘사유재산’을 이야기할 수 있을지, 사회민주적 경제를 위해 어떻게 사유재산을 통제할 것인지에 대한 더 많은 고민이 요구된다는 것에 의견이 모아졌다.

한편, 사회경제적 존엄을 위한 기본소득이나 철거민에 대한 적절한 보상 등 화폐를 중심으로 권리들이 이야기되는 것에 대한 문제 제기도 이어졌다. 현재 철거민이나 주거와 관련하여 권리를 보장하는 방식이 화폐로 되어 있어서 우리도 그 안에서만 이야기하게 되는 측면이 있는데, 주거권의 보장이라고 할 때 어떤 환경과 조건을 갖추어야 하는가가 우선되어야 한다는 지적에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청소년 노동도 여러 면에서 쟁점이 되었다. 청소년에게 기본소득을 보장할 것인가에서부터 청소년들이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받으면서 일할 권리를 주장할 것인가 아니면 노동을 하지 않아도 되는 권리를 이야기할 것인가 등등. 노동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당연히 정당한 대가를 줘야 하고 아닐 경우 보호할 수 있는 장치도 갖추어야 한다는 의견이었다. 그렇다면 이 보호는 노동을 못하게 하는 것인가 아니면 위험에 노출되지 않는 안전한 일을 하게 하는 것인가. 논의가 이어지면서 노동할 권리와 노동하지 않을 권리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두 가지가 같이 보장되어야 일하는 사람의 존엄을 보장할 수 있다는 것이 드러났다. 기본소득이 보장된다면 구린 직장을 그만둘 수 있지 않겠는가.

머리를 맞대어

이처럼 자명해 보이는 권리들이 현실에서는 그렇지 못할 때가 있다. 자유냐 안전이냐, 평화냐 방어적 생존권(파병 같은)이냐, 발전이냐 생태냐 같이 대개는 두 개의 인권이 충돌하는 것처럼 보일 때. 생각처럼 그 프레임을 뛰어넘어 사고하거나 권리를 옹호할 수 있는 논리들을 찾아가기가 쉽지 않기도 했다. 이 시간은 바로 그 지점을 참여자들과 함께 머리를 맞대고 파헤쳐보는 시간이었다. 참여자들의 다양한 경험과 의견, 새로운 관점에서의 질문과 접근으로 우리의 권리들을 좀 더 탄탄히 할 수 있었다. 또한, 우리를 멈추게 했던 ‘현실론’을 뚫고, 권력이 만들어놓은 프레임을 뛰어넘어 가려져 있던 권리에 다가설 수 있었다. 이것은 참여자들이 가진 가능성이고 힘이었다. 인권교육을 통해 그리고 우리의 생활 속에서도 두려움 없이 함께 의견을 나누고 찾아가는 시도들이 언제나 이어질 수 있기를!
덧붙임

묘랑 님은 인권교육센터 ‘들’ 상임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