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운동사랑방 후원하기

인권오름 > 인권교육, 날다

[인권교육, 날다] ‘내가 하고 싶은 일 하기’는 애매하다!

장애인생활시설의 인권실태조사를 위한 당사자 인권교육

요즘 장애인생활시설 인권교육은 그야말로 붐이다. ‘도가니’ 영화로 인한 대중의 폭풍분노를 의식한 복지부와 지자체들이 (진정성이 얼마나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장애인생활시설 내 인권교육을 의무화하려 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어느 정도 규모 있는 시설들도 ‘도가니’에 묶여 도매급으로 넘어가지 않기 위해(물론 그 이전부터 좋은 취지로 알게 모르게 시설 내에서 인권교육을 진행한 분들도 있으니 오해하지 말자!) 자체적으로 인권교육을 진행하는 움직임도 상당하다. 우리가 그이들을 만나게 된 건 이런 틈바구니에서다.

산 좋고, 물 좋은 곳

수십 개가 넘는 여러 종류의 복지시설을 운영 중인 모 재단이 인권교육을 통해 인권침해조사를 하고 싶다며 인권교육센터 '들'에 의뢰를 했다. 그 많은 복지시설 중 우리가 가게 된 곳은 장애인생활시설이다. 애초에 인권교육 참여자들은 장애를 갖고 있는 청소년이었으나, 기관에서 참여자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18세~31세의 15명 참여자들로 확정되었다. 교육시간은 1시간 30분, 참여자는 15명. 이제 시설로 들어간다.

시설의 입구. 시내에서 택시를 타고 10분이 넘게 걸려 도착한 그 시설은 마치 ‘장애인 타운’과 같다. 산 안자락에는 장애인생활시설을 비롯해 보호작업장, 특수학교, 영아원 등 온갖 장애인과 관련된 시설들이 모여 있다. 시설 입구에는 차단봉이 내려져 있었고, 경비실도 있다. 함께 있었던 재단 담당자의 이야기로는 이전에는 없었단다. 왜 생겼을까? 경비아저씨에게 무슨 일로 왔는지 설명하고 걸어서 올라간다. 거리가 제법 되고, 경사도 있어서 수동휠체어를 타거나 목발 같은 보조기기를 사용하면 내려오기 어렵겠다는 생각이 든다.

시설의 정문. 딱 봐도 관리자일 것 같은 남성 두 명이 문 앞에 서 있다. 재단의 담당자가 재빨리 인사를 하고 우리가 인권교육을 하러 왔음을 설명한다. 갑자기 분위기가 가라앉는다. 한 남성이 이야기를 시작한다. “이 교육은 왜 하는 것이냐? 의도가 정확하게 뭐냐? 재단이 우리를 감시하러 온 거냐? 불쾌하다. 그리고 어차피 우리도 1년에 4시간 이용인 교육해야 하는데 할 거면 이용인 전체 다 해야지 왜 몇 명만 하냐? 형평성에 어긋난다.” 어쩔 줄 몰라 하는 재단 담당자는 뭔가 소통에 착오가 있는 것 같다며 우선 오늘은 진행하자 하고 우리를 끌고 들어간다. 감시하러 온 것이 맞는데 뭔가 입장이 난해하다. -_-;

시설의 사무실. 정문으로 들어가자 바로 왼편에 사무실이 있다. 이 교육을 담당한 시설의 종사자가 우리를 사무실로 안내한다. 또 다른 여성 종사자가 방긋 웃으며 차를 권한다. 막힘없이 무슨 차가 있는지 줄줄 읊어주는 것이 왠지 서글프다. 교육담당 종사자가 잠시 자리를 비워 우린 멀뚱히 앉아 있었다. 그러다 벽에 붙여져 있는 ‘자원봉사자 에티켓’ 홍보물을 본다. 이런저런 내용이 있었지만, 요점은 장애인과 함께 있을 때 어떤 궁금한 사항이건 무슨 일이 발생하건 옆에 있는 장애인이 아니라 반드시 종사자에게 물어보라는 것이다. 왜 그래야 하는가?

잠시 후 담당자가 들어온다. 아까 입구에서 만났던 남성에게 무슨 이야기를 들었는지 시설의 입장에서 이런저런 곤란한 상황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교육할 때 제가 왜 들어가면 안 돼요? 애들이 워낙 중증이라 다들 약도 먹고 있는데, 교육하다 발작 같은 걸 할 수도 있어요. 애들이 중증이라 처음 본 사람들은 의사소통이 안 될 텐데 저는 눈빛만 보면 알거든요.” 난감해진다. 인권침해를 조사하는 교육에 장애인을 ‘애들’이라고 부르는, ‘애들의’ 눈빛만 보면 아는 종사자가 들어오겠다니…. 설득을 시도했지만 실패한다. 결국, 교육 시작하고 30분 후에 교육장 뒤편에 있기로 합의한다. “그리고 저희 선생님이 이따 사진 찍으러 들어가실 거예요.” 참여자들이 불편해하지 않겠느냐는 완곡한 거부에 “괜찮아요.”라고 답한다. 그럼 참여자들에게 물어본 후에 결정하자는 말에 “제가 물어볼게요.”라고 답하는 종사자, 여기선 강해져야 한다. 아니라고 우리가 물어보겠고 30분 뒤에 들어오시라고 이야기한다. 어렵게 교육 시작!

내 이름은요.

시설에 거주하는 장애인들을 만나는 첫 순간은 늘 긴장된다. 내가 이야기를 하러 온 사람이 아니라 같이 이야기를 할 사람이라는 걸 어떻게 전할 수 있을지도 그 이유 중의 하나이다. 그래서 시설인권교육 시간이 늘 짧지만 모두 자기소개를 하려고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대부분의 참여자가 지체장애가 있는데, 발가락으로 글씨를 쓰는 이, 휠체어에 붙여져 있는 글자판을 가리키는 이, 눈 깜박임으로 이야기하는 이, 글씨를 쓰는 이 등 각자의 방법으로 세 글자 밖에 안 되는 자신의 이름과 별명을 이야기해주려 몇 번이고 똑같은 말을 쓰기도, 말하기도, 깜박이기도 한다. 인사가 끝나고 사진에 대해 물어본다. 역시나 얼굴을 찍히기 싫다는 이들이 있다. 잠시 후 들어 온 종사자에게 얼굴이 찍히기 싫다고 말한 이들을 일러주었고, 종사자는 이에 맞게 사진을 찍고 나간다.
참여자들에게 질문을 던진다. 지난달에 손님들 많이 왔죠? “네! 어떻게 알았어요?” 헤헤~ 오면 같이 사진 찍고 그래야 해요? “네!” 그럼 기분 어때요? “사진 찍히는 거 싫어요.” “기분 나빠요.” 절대 우리가 의도하지 않았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30분 뒤에 들어온다던 담당종사자는 일이 많은지 교육 끝 무렵까지 들어오지 않는다.

좋은 것, 나쁜 것, 애매한 것!

짧은 시간 안에 나와 우리에게 어떤 권리가 있는지 확인하고, 그런 권리를 주장하는 게 맞기는 한 건지, 그럼에도 불편했던 장면들이 무엇이었는지 기억을 되살리기는 쉽지 않다. 그것도 누군지 신원이 확실하지 않은(?) 이들과 그런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쉽겠는가? 그래서 약간은 거친 방법으로 다른 사람 얘기하듯 시작해본다.
세계인권선언의 권리조항들을 그림과 몇 개의 단어들로 만든 권리그림카드를 한 장씩 같이 보면서 좋은 것, 나쁜 것, 애매한 것들을 참여자들과 구분해보는 프로그램으로 시작한다. 이번에 사용한 그림카드는 시설 내 예상되는 인권침해를 중심으로 만들어 봤다. 양쪽으로 OX가 표시되어 있는 판때기(?)도 함께 준비했다. 언어장애가 있는 이들이 있다는 정보에 준비했는데 꽤 유용하다.

‘내가 하고 싶은 일 하기’
프로그램을 이어가던 중 막혔던 권리는 ‘내가 하고 싶은 일 하기’. 역시 참여자들은 예리하다. 당초 이 권리는 ‘사생활 보호, 표현의 자유, 사상의 자유, 행복 추구권’ 등 여러 가지를 포함해야겠다고 생각했던 권리였다. 수십 가지 권리를 모두 훑을 수는 없으니 말이다. 하지만 애매하다. “하고 싶은 것만 하면 안 돼요.” 내가 하고 싶은 것이라니…. 약점을 찔렸다. 애매한 것이 애매하지 않다고 이런저런 좋은 말로 설명하기보단 이후 이들의 경험과 함께 다시 정리하기로 한다.

‘먹을 것 대신 결정하기’
여러분 대부분 약을 먹는다면서요? 무슨 약인지 설명 들어봤어요? 라는 질문에 듣지 못했다는 이들이 곳곳에 있다. 사실 어떤 설명을 들었는지도 중요했으나 시간을 핑계로 다음 질문으로 넘어간다.
혹시 약을 먹기 싫을 때 있어요? 그럼 어떻게 해요? 쭈뼛쭈뼛 이야기한다. “먹어야 해요.” 이들이 먹는 약은 경기를 완화하거나 근육을 이완시키는 약일 것으로 추측된다. 그런데 이런 약들은 대부분 몸이 쳐지고 무기력해지는 효과가 있다. 자기 몸의 결정권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약의 복용과 관련된 정보를 충분히 알리고 본인이 결정하도록 하는 것은 당연하지 않은가?
그러던 중 누군가 격하게 쿵쿵 소리를 낸다. 발로 대화하는 이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 급하게 글씨를 쓰니 알아보기가 어렵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고 그녀가 쓴 문장은 “밥 먹기 싫은데 막 먹여요. 먹기 싫어요.” 화가 난 건지, 억울한 건지 눈물도 그렁그렁하다.
시설 밖의 이들이 생각하는 인권침해는 성폭력처럼 눈에 띄고, 확인이 가능한 그런 것이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폭력보다 훨씬 넓고 깊은, 그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은 폭력이 당사자들에게는 매일매일 발생한다. ‘애들의’ 안전을 위해 ‘애들이’ 무엇을 먹을지도 스스로 정하지 못하게 하는 그런 폭력 말이다.

‘연애하기’
좋아하는 사람 있어요? ‘수군수군~, 피식피식~’ 이때 알게 되었는데 함께 있었던 참여자 중 서로 연애를 하는 이들이 두 커플이나 있었다. 데이트는 어디서 해요? “……” 데이트를 할 수 있는 곳이 없다. 둘이서 따로 시내로 나가는 것은 물론 안 되고, 건물 밖이라도 종사자의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 갈 수는 없다. 아니 그럼 도대체 뽀뽀는 어디서 해야 돼요? “아~ 못해요!” 내 말이 너무 민망하고 어이가 없다는 듯 다들 깔깔깔 웃는다. 시설은 플라토닉 러브만 존재해야 하나? 연애하지 않는 이들 중 누군가를 사랑하고 싶어 하는 이도 있다. 왜 못하냐고 차마 묻지 못한다. 짧게는 수년, 길게는 수십 년, 한 공간에서 거의 비슷한 사람들을 만날 테고, 이 공간에서 장애가 있는 이들 간의 ‘발칙한’ 연애는 차단될 테니 말이다. 또한, 시설에서 비장애인과의 관계는 ‘선생님’인 종사자와 자원봉사자가 대부분인데, 이들에게 연정을 품을 수는 있을지언정 고백하기는 어려울 테니 말이다.

‘나의 집’ ‘나만의 시간 갖기’
더 나가본다. 그럼 내 집이 있으면 좋을 것 같지 않아요? 다른 사람 눈치 안 보고 애인이랑 사랑도 나누고, 그리고 누구나 혼자 있고 싶을 때 있잖아요. “맞아요. 그럼 좋죠.” “연애도 하고~!” 이 지점에서 우린 드디어 하나가 됐다. 독립하고 싶다고 이야기해본 적 있어요? “아니요.” “못해요.” 세상물정 모르는 내가 또 뻘타를 날린 모양이다. 누구한테 이야기할 수 있을까? 용기를 내야 한다고 쉽게 말을 할 수는 있지만, 봉사만 받던 이들에게, 애들이라고 불리는 이들에게 같이 용기를 내자고 손을 건넨 사람이 얼마나 있었을까?
여기까지 왔을 때 참여자들과 ‘내가 하고 싶은 일 하기’를 다시 이야기를 나눠본다. 나가고 싶은 것, 나가고 싶다고 이야기하는 것, 연애하는 것 이런 것들이 이곳에서 하기 어렵지만 하고 싶은 것일 수도 있겠다는 이야기들…. 그래서 이 권리는 ‘좋은 것’이면서 ‘나쁜 것’이 되었다.

상황극 속으로!

마음이 바쁘다. 시간이 빠르게 지나간다. 미루어 짐작되는 시설 내 인권침해 사례들 몇 가지를 상황극으로 진행한다. 준비한 사례는 다음과 같다. ▲외출을 통제하는 상황 ▲무서운 사람이 있나? ▲술, 담배 그리고 연애의 자유로움에 대하여 ▲여성 자원봉사자가 목욕을 시켜주는 장애남성. 공동 진행자와 함께 위의 사례들을 재현한다.

준비한 사례에 대부분의 참여자들이 반응한다.
누구나 외출을 하고 싶다. 하지만 시설입구를 벗어날 수는 없다. 갑자기 궁금해진다. 외부와는 어떻게 소통하나? 그럼 핸드폰 있는 분 있어요? 서너 명이 손을 든다. “돈이 없어요.” “나도 핸드폰 갖고 싶어요.” 그럼 전화는 어떻게 해요? “1층에 모두 쓸 수 있는 전화기가 있어요.” 그나마 다행이다 싶던 찰나에 다시 뒤통수를 맞는다. 그럼 그 전화기 사용해본 적 있는 분? “…전화할 곳이 없어요.” 뭐라고 할 말이 없다. PPT가 띄워져 있는 스크린에 내 전화번호와 메일주소를 적는다. 뭐 이야기 나누고 싶은데 말할 사람 없을 때 전화주세요. 혹시 이메일 사용하실 줄 아는 분 있으시면 메일 보내도 돼요. “나는 핸드폰 있으니까 내가 적어놓을게요. 내가 알려줄게요.” 할 말이 없다.
기분에 따라 고함을 지르는 종사자가 무섭다는 이야기, 술을 한번 먹어 보고 싶은데 아직 먹어보지 못했다는 이야기, 남성 참여자 대부분 여성 자원봉사자가 목욕시켜줄 때 부끄럽고 창피하단 이야기, 그런데 무섭다고, 하고 싶다고, 싫다고 말하지는 못했다는 이야기 그런 이야기를 우리에게 해준다.
정리를 해야 하는 시간, 무슨 이야기를 하면 좋을까? 석암 베데스다 요양원 이야기를 한다. 이곳과 같은 곳에서 우리와 같은 사람들이 시설을 나가야겠다고 마음먹은 이야기, 도와달라 같이 싸우자 이야기를 건넨 이들이 기꺼이 함께 해준 이야기, 시청 앞과 마로니에 공원에서의 노숙이야기, 그리고 그들의 현재 삶에 대한 이야기…. 이런 이야기를 그이들에게 전한다. 그리고 자신을 삶을 밖에서 꾸리고 싶을 때 꼭 연락을 달라고, 우리 꼭 다시 만나자고 말하며 교육을 마친다.

장애인시설 내 실태조사와 인권교육을 한 흐름으로 가져가려 한 시도는 긍정적이었다. 반면 적은 시간(4시간도 짧다)이라는 한계와 함께 인권침해로 드러난 지점들을 해결하는 방안을 이용인들이 제시하기 어렵다는 점, 이용인들이 시설을 나가는 것을 상상하는 것 자체가 차단되어 있다는 점들이 실태조사와 인권교육을 그저 진행하는 것에 그치게 할 수 있다.
그래서 우선 이용인의 인권교육 시간과 회차를 대폭 확대해야 하며, 인권교육의 장소를 굳이 시설이 아닌 외부 기관에서 진행하는 것을 시도해볼 수 있겠다. 그리고 인권교육에서 확인된 시설 내 인권침해 사실이 자료화되고, 인권실태조사에 해당 자료들이 제공되는 것이 필요하다. 더불어 이용인에게 인권교육과 함께 탈시설을 한, 또는 탈시설이 아니더라도 자립을 하고 있는 장애인들을 만나고, 실제 생활하는 것을 볼 수 있는 연수 제공도 의무화해야 한다.

우리가 갔던 시설은 ‘좋은’ 복지시설이었다. 건물도 좋고, 건물도 좋고. 건물도 좋고…. 사실 건물만 좋았다. 그곳에서 일하는 이에게 들은 이야기다. 작년 여름 시설에서 뻔히 보이는 재단 소유의 산에 송전탑이 생겼는데, 시설 이용인과 종사자들에게 송전탑 건설과 관련된 동의를 받지 않은 채 재단은 땅을 빌려주는 대가로 수억 원을 받았단다. 물론 그걸 결정하신 분들은 그 동네 근처에도 살지 않는다. 그 시설의 특수학교는 제대로 된 교실이 없어 해가 들지 않아 곰팡이가 피는 지하에서 수업을 하거나, 시설 생활방에서 수업을 했었는데 외부에서 학생들이 들어오면서 겨우겨우 학교건물 신축에 대한 이야기들이 오고 간단다. 좋은 시설과 나쁜 시설을 구분하는 것은 우리가 할 일이 아니다. 시설은 시설일 뿐이다. 시설엔 장애인도 살고, 아동도 살고, 여성도 살고, 노인도 산다. 대부분 비슷하게 살고 있다. 그리고 아직 바뀐 것은 별로 없다. 이제 슬슬 바뀔 때가 되지 않았나? ^^
덧붙임

윤경 님은 인권교육센터 '들' 활동회원입니다.